2018년 7월 24일,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목사
열왕기하 4장 8~37절 "겸손한 섬김으로부터"
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9 여인이 그
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10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11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에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 누웠더니 12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여인을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13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니 여인이 이르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 하니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하니 15 이르되 다시 부르라 하여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16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17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18 그 아이가 자라매 하루는 추수꾼들에게 나가서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렀더니 19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사환에게 말하여 그의 어머니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20 곧 어머니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죽은지라 21 그의 어머니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 22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사환 한 명과 나귀 한 마리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하니 23 그 남편이 이르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거늘 그대가 오늘 어찌하여 그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냐 하는지라 여인이 이르되 평안을 비나이다 하니라 24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고 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위하여 달려가기를 멈추지 말라 하고 25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그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26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27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그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가만 두라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 28 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 29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하는지라 30 아이의 어머니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따라가니라 31 게하시가 그들보다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하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그에게 말하여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32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36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하니라 37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어제 함께 읽은 열왕기하 4장 1~7절 말씀은 모압과의 전쟁 이후 피폐한 상황 속에서 죽은 제자의 아내와 그녀의 아들들을 살리기 위해 기름이 멈추지 않고 그릇을 채우는 엘리사의 이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장면을 통해 새삼 분명히 확인하게 되는 것은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의 사역과 같은 흐름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엘리사 역시 엘리야가 세운 예언자 학교를 통해 제자들을 길러내고, 또 제자들의 가족들도 돌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본문 말씀은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와 아들에게 베풀었던 것과 비슷한 또 다른 신비로운 이적이 엘리사에게도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엘리사가 “수넴”이라는 이름의 마을을 지나가는 데 한 여인이 그를 자신의 집으로 간곡히 초청해서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8절을 보면 그녀를 가리켜 “귀한 여인”이라고 묘사하는 데 여기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단어를 직역하면 “위대한 여자”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굉장한 부와 명예를 가진 여인으로 이해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단지 그날 하루 엘리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사가 수넴 지방을 자주 지나다니는 것을 알고, 그가 더욱 최선을 다해 주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따로 방을 만들어 마음 편히 쉬어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그렇게 얻게 된 방에 누워 쉬며 자신이 받은 귀한 은혜를 보답할 방법을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을 돕는 게하시를 통해 그녀의 남편이 나이가 많음에도 아직 아들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성경에서 “아들 낳음”에 대한 여러 긴장과 갈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대 서아시아에서 “아들”은 신이 허락한 가장 분명한 복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때 아들이 없다는 것이 주는 모멸감과 수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엘리사는 그렇게 참담한 절망에 시달렸던 수넴 여인에게 그녀가 내년에 아들을 안을 거라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놀랍게도 소중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아버지가 일하는 들판에 나가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놀란 아버지는 서둘러 아내에게로 아들을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수넴 여인은 차분히 감정을 추스르며 엘리사가 머무는 방 침대에 죽은 아들을 눕혔습니다. 그리고 갈멜산에 있는 엘리사에게로 서둘러 달려가 그의 발을 안고 엎드려서 끝내 참았던 슬픔을 토로하였습니다. 28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28 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
모두 쉽게 공감하시듯이, 아무리 좋은 것도 차라리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낫지, 있었다가 갑자기 잃을 때 상실감과 고통은 몹시 큽니다. 게다가 그 대상이 어렵게 겨우 얻은 어린 아들이라면 그 슬픔은 감히 상상조차 못할 일일 겁니다.
가슴 아픈 사실을 알게 된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황급히 명령을 내렸습니다. 허리를 묶고 엘리사의 지팡이를 들고 전력으로 달려가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 위에 올려놓으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게하시가 명령을 따라 모든 조치를 다 취했음에도 엘리사가 뒤이어 도착할 때까지 아이의 숨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문을 닫고 주님께 기도를 드린 후, 예전에 그의 스승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에게 그러했듯이 수넴 여인의 아들 위에 몸을 포개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아기는 다시 살아나 어머니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은 불임이었던 여인의 기적적인 출산, 그리고 그 사랑스런 아들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극적인 사건들을 긴 분량을 통해 묘사하였습니다. 하지만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성경에 기록된 이적을 마주할 때 화려함에 눈길을 뺏기지 말고 사건의 본질을 주목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의 경우 수넴 여인의 아름다운 섬김입니다. 아무리 부자라 한들 손님을 위해 방을 따로 마련하여 숙식을 제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런 귀한 섬김을 제공하면서도 그녀는 결코 으스대지 않고 오히려 한결같이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렇게 엘리사를 섬긴 이유입니다. 열왕기하 4장 9절 제가 읽겠습니다.
9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도운 까닭은 그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녀의 섬김은 엘리야라는 특정한 한 사람을 숭배한 것이 아니라 그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삶의 고통을 뛰어 넘는 생명의 이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본문과 관련해서 떠오른 제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해서 서울로 가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아무런 연고도, 친척도 없었기 때문에서 제 고향교회 담임목사님의 아버님께서 원로 목사로 계신 교회에 반 강제로 등록해서 청년부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부 간사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교회 집사님 한 분이 지방에서 온 신학생 한 명이 등록한 것을 알고 저를 도와주고 싶어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계좌번호를 적어가셨고 다음 달부터 일정 금액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2학년 때부터 여러 사정으로 갑자기 다시 대전 고향교회에 교육전도사 사역을 했기 때문에 후원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후원 금액이 어마어마하게 크지도 않았고 기간이 길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섬김입니다. 그 때 일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저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습니다. 신학 공부도 좋았고 장신대 생활도 무척 행복하긴 했지만 한편으로 서울 살이가 외롭고 힘들기에 매월 저에게 다가온 그 따뜻한 섬김을 통해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참 많이 부족하나마 제가 목사로서의 소임을 나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의 상당 부분은 그 집사님 덕분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도 그 분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청년부 간사님께 여러 차례 여쭤봤지만 본인의 의지가 너무나 확고하다며 한사코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단순히 신학생 잘 돕고 목회자 열심히 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웃에게 전하기 원하시는 섬김을 잘 헤아려보고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각자에게 허락된 소유와 시간들이 우리 자신만을 위함이 아님을 명심하며 비록 적을지라도 내어놓고 나누는 연습을 꾸준히 하시길 바랍니다. 바로 그 섬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 어떤 좌절과 결핍과 절망 속에서도 항상 세밀하게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또한 그 은혜를 힘써 전하는 모두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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