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6일 목요일

열왕기하 5장 1~19절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2018년 7월 26일,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열왕기하 5장 1~19절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오늘 본문 말씀은 엘리사를 통해 일어난 이적 중 “나아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은 나아만이 처한 극명하게 모순적인 상황을 보여줍니다.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나아만은 아람의 국방부 장관으로서 왕의 절대적인 신임아래 굉장한 부와 명예를 누리던 사람입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나라가 겪은 위기에서 구한 혁혁한 공적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만 “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나병”은 특정 질환만이 아니라 악성피부병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심각한 피부병을 걸리면 일상적인 생활에 많은 곤란함을 겪습니다. 일단 병이 주는 고통 자체가 끔찍할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서도 커다란 어려움에 빠집니다. 하물며 지금과 달리 의학 상식과 체계가 부실하기 이를 데 없던 고대 서아시아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절망적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시대는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을 의학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종교적 문제로 이해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특히나 병든 피부는 시체와 비슷해서 죽음을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악성 피부병 환자는 신 앞에 커다란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 벌로 사망의 병에 걸렸다고 쉽게 판단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속한 공동체 안에서 심각한 따돌림과 멸시를 당했습니다. 따라서 나아만은 악성 피부병으로 말미암아 사회적으로 가장 높은 위치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한없는 추락을 겪으며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런 그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희망어린 이야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포로로 잡아왔던 이스라엘 어린 소녀의 말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엘리사라면 기꺼이 나아만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말이 여주인을 통해 엘리사의 귀에까지 들려왔고 마침내 아람왕의 도움까지 받으며 엘리사가 사는 사마리아를 향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과거 강하고 기세등등했던 나아만이라면 그 아이의 조언과 충고에 과연 귀를 기울였을 까요? 아무리 맞는 얘기를 한다 해도 무시하고 가볍게 지나치기 일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아만이 처한 아픔과 절망이 그로 하여금, 그를 살리는 진리에 귀 기울이게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괴롭고 슬퍼할 때야말로 진정 우리를 회복시키는 복음 앞에 나아가는 시간임을 잊지 마시고 어두울 때 일수록 더욱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시길 축복합니다.


나아만이 기대와 불안을 안고 엘리사의 집으로 찾아 갔지만 그는 크게 분노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사의 태도와 그가 말하는 내용 모두 그가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집 밖으로 나와 보지도 않고 심부름꾼을 통해 요단강에 몸을 일 곱 번 씻으라는 말만했습니다.

한 나라의 국방부 장관으로서 화려하고 성대한 의전에 익숙해 있던 나아만으로서는 일반적인 예의도 지키지 않고 얼굴도 비추지 않는 엘리사의 행동이 불쾌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게다가 예상과 달리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치유의식도 그로서는 탐탁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존심에 몹시 큰 상처를 입은 그는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주위에 있던 슬기로운 참모들이 겨우 그를 진정시켜서 엘리사의 말대로 하게 하였고 그 결과 놀라운 치유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4절 제가 읽겠습니다.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이 엘리사의 말대로 순종하여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자 놀랍게도 정말 그의 피부가 깨끗하게 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시대 아람을 비롯한 서아시아의 우상들과 야훼 신앙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11, 12절에 기록된 나아만의 기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당시 다른 종교들은 제사 참여자의 굉장한 열심과 해당 종교인이 진행하는 화려한 의식에 근거하였습니다.

하지만 구약의 야훼 신앙은 정반대였습니다. 요단강은 아람에 있는 강들보다 크고 깨끗하지 않았습니다. 성대한 종교집회도 있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주인공인 나아만의 마음조차 열심은커녕 마지못해 억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생명의 기적과 치유는 일어났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은 철저히 은혜 안에서 이루어짐을 알게 됩니다. 물론, 이것이 성도들로 하여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방관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께 열정을 드러내고 크고 화려한 종교 언어와 행동을 과시하기 전에 하나님의 주권을 더욱 바라보아야 함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나아만은 위대하고 놀라운 치유를 경험하였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로 말미암아 현실적인 고민이 생겼습니다. 18절 제가 읽겠습니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나아만은 아람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장군이었기 때문에 왕이 섬기는 우상인 림몬의 신당에도 부축해서 함께 들어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람 왕이 림몬 앞에 몸을 굽힐 때 나아만 역시 부득이 함께 굽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두고 벌써 근심에 싸여있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고민을 우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통해 신앙의 이상과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대 우상들, 이를테면 돈과 명예와 성공에 허리를 숙일 때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꼿꼿이 주님만을 경배하는 신앙의 순수함과 이상을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스스로를 돌이켜봐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신앙인으로서 현실 가운데 부딪히는 갈등들을 함부로 무시하시고 일방적인 길을 강요하지 않으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의 고민을 듣고 그를 함부로 정죄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평안히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신앙을 지킨 엘리사이지만 복잡한 현실이 갖는 치열함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적으로는 순결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외적으로는 유연한 태도를 갖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또한 자신의 믿음은 엄격히 지키는 한편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대해서는 함부로 정죄하지 않고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 시대에 쓰임 받았던 이유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이러한 엘리사의 균형 있는 신앙을 본받아 이 이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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