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0일, 목,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정대진 목사
예레미야 27장 12~22절 "고난 앞에 마주서기"
12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의 왕 시드기야에게 전하여 이르되 왕과 백성은 바벨론 왕의 멍에를 목에 메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사시리라
13 어찌하여 당신과 당신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에 대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 하나이까
14 그러므로 당신들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함이니이다
15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멸망하리라
16 내가 또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 전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여호와의 성전의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이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하셨나니
17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을 황무지가 되게 하려느냐
18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와 유다의 왕의 궁전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를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기둥들과 큰 대야와 받침들과 이 성에 남아 있는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나니
20 이것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귀인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옮길 때에 가져가지 아니하였던 것이라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성전과 유다의 왕의 궁전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 기구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다함께) 22 그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내가 이것을 돌보는 날까지 거기에 있을 것이니라 그 후에 내가 그것을 올려 와 이 곳에 그것들을 되돌려 두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어제 읽은 예레미야 27장 1~11절은 목에 줄과 멍에를 거는 상징행위를 통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않으면 끝내 멸망하고 말거라는 예레미야의 외침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안 가운데 떨고 있던 유다의 기득권들에게는 너무나 불온하고 도발적이고 위험한 선언입니다. 때문에 그는 온갖 위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을 일관되고 꿋꿋하게 전했습니다. 오늘 읽은 12~22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보다 세밀하게 확인하며 이와 대비되는 거짓 예언자들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됩니다.
본문 내용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12~15절은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전한 말씀이고 16~22절은 제사장과 다른 모든 백성에게 전한 말씀입니다. 둘 모두 “내가 ~ 전하여 이르되”라는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두 단락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왕에게서 백성들에게로 범위가 확장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문학적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 말씀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거짓 예언자들의 실체입니다. 14절에 따르면 그들은 시드기야 왕에게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 한다고 단호히 선언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15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주님께서 그들을 보내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16절에 예레미야는 백성들을 향해 또다시 ‘그들이 거짓을 예언’한다고 고발하며 앞 단락의 주제를 심화 시킵니다. 이 말씀은 얼마 전, 시드기야 전에 유다를 다스렸던 여호야긴 왕 때 있었던 느부갓네살의 침공을 배경으로 합니다. 역대하 36장 7, 10절에 따르면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까지 쳐들어가 거룩한 기구들과 그릇들까지도 약탈해 갔습니다.
이 사건은 이제 유다에게는 저항할 아무런 힘이 없고 패배는 기정사실임을 보여주며 이미 훨씬 이전부터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외친 예레미야의 예언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거짓 예언자들은 바벨론을 물리치고 여호와의 성전 기구들을 금방 찾아 올 거라고 말하며 백성들을 현혹시켰습니다.
18절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그런 황당한 상황을 두고 분노하며 빼앗긴 성전 기구들을 되찾오기는 커녕 이제 얼마 안남은 물건들이 더 이상 뺏기지 않게 해 달라고 그들이 주님께 호소해야 한다고 조롱 섞인 말투로 꾸짖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침공이 다 끝난 것처럼 떠들어 댔지만 더 큰 재앙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오늘 본문 말씀은 권력자들에게 아부하며 예레미야를 공격한 거짓 예언자들이 전한 선동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 지를 성전 기구라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분명히 깨닫게 되는 거짓 예언의 속성이 있습니다. 바로 ‘고통의 즉각 해결’입니다. 바벨론의 힘은 점점 강해져 갔고 심지어 이미 예루살렘 성전 기구를 강탈당하는 수모를 겪었음에도 그 모든 위기와 어려움이 금세 사라질 거라고 그들은 떠들고 다녔습니다. 문제는 그런 얘기가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제멋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화려한 언변으로 거짓말을 이어갔습니다.
반면 예레미야는 ‘고통과 공존하는 길’을 찾아갑니다.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무너지는 것이 하나님의 굳건한 뜻임을 분명히 깨닫고 나라가 무너지는 고통을 부정하지 말고 그 아픔을 끌어안은 채 살길을 모색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부정해서도 아닙니다. 고난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의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고통의 손쉬운 해결책을 말하는 사람들을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단번에 고난을 해결하는 법을 제시하는 이들을 경계하시길 바랍니다. 물론 이것은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루하루 힘겨운 삶의 문제로 신음하는 이들에게 어쩌면 잔인한 이야기 일수도 있습니다.
어제 저는 몸이 편찮으신 성도님 한 분께 ‘속히 쾌유하시도록 계속 기도하겠다.’고 연락 드렸습니다.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인지상정입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그 문제로부터 빨리 벗어나길 원하고 곁에 있는 이들 역시 그것을 도우려는 마음 자체는 너무나 귀합니다. 종종 실제로 놀라운 회복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것을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의 현실과 고난의 섭리를 무시한 채 무책임하게 해결만을 구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할 소중한 복음이 있습니다. 본문 22절 제가 읽겠습니다.
22 그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내가 이것을 돌보는 날까지 거기에 있을 것이니라 그 후에 내가 그것을 올려 와 이 곳에 그것들을 되돌려 두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거짓 예언자들이 말했듯이 지난 날 빼앗긴 성전 기구들이 당장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것들을 돌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그 모든 기구들을 되돌려 두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주님께서 말씀하신 70년이 지나 페르시아의 황제 고레스를 통해 그 약속은 이루어 졌습니다.
이를 통해 백성들에게 찾아온 고난은 비록 피할 수는 없었으나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고통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담겨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구약성경의 신앙은 바벨론 포로기를 기준으로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 전까지 하나님을 법궤 위에만 계시는 유대민족만의 신으로 여겼던 이스라엘은 포로생활을 거치면서 온 세상에 거하시는 모든 민족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거대한 고난이 그들의 신앙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또한 십자가와 부활 신앙과도 일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악을 속 시원한 방법으로 단번에 쓸어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참 사람이신 주님께서는 이 땅의 고통들과 직접 부대끼시며 몸소 짓밟히셨고 그 결과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십자가가 마침내 부활의 생명과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가 외친 복음의 핵심이자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절정입니다. 따라서 누군가 희생 없는 영광을 말한다면, 절망을 거치지 않은 희망을 전한다면, 죽음과 마주하지 않은 생명을 외친다면, 감히 단언하건데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통과 고난에서 도망치기 보다는 당당히 마주하시길 바랍니다. 백성들의 포로생활을 일방적인 은혜로 멈추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이키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그 모든 어두움의 한 복판에서 참된 빛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 하나님의 신실한 손길을 바라보며 그 어떠한 절망의 순간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말씀과 진리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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