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4일 목요일

사도행전 2장 29~36절, “처음 외친 복음”

2019년 4월 4일, 삼덕교회 전도부 경건회 설교, 목사 정대진
사도행전 2장 29~36절, “처음 외친 복음”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보다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지금껏 나눈 사도행전의 줄거리와 상황을 다시금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겁먹고 숨어 있었던 제자들로 하여금 담대하게 길거리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게 하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예배하며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유대교의 3대 명절 중 하나인 오순절을 맞이하였고 성령님께서 교회 가운데 바람처럼 불처럼 나타나셨습니다.

그러한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을 향해 특별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바로 명절을 맞아 지중해 여러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의 다양한 언어를 말하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소통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사람들 사이의 언어와 문화 등의 온갖 담장들을 넘어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일들에 그날 교회 주변에 있었던 유대인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거주하는 먼 지역에서 굳이 손해와 어려움을 감수하고 예루살렘으로 찾아와 오순절을 지킬 정도로 유대교 신앙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교회를 향해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유대인들 한 복판에서 보다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였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침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따라서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은 사도행전에서 기록된 첫 번째 설교문입니다. 이를 통해 과연 우리가 세상 한 가운데 외쳐야할 복음의 핵심이 과연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체 내용은 14~36절이지만 이 시간에 읽기에는 너무 길어서 결론부에 해당되는 29절부터로 끊어 보았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구약에 기록된 위대한 한 인물은 언급합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이 중요한 까닭은 그가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메시아의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의 압제라는 위기 속에서 ‘또 다른 다윗’을 기다렸습니다. 그 옛날 다윗 왕이 보여준 부강한 나라의 힘과 권세를 기대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복음서들도 다윗과 예수님을 계속 비교하는 것을 여러 곳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그러한 다윗과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을 언급하였습니다. 바로 무덤입니다. 29절은 흥미롭게도 당시까지 다윗의 무덤이 예루살렘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왕릉도 마찬가지이지만 최고 권력자 일수록 무덤은 화려하게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다윗과 같은 민족적 영웅이라면 무덤을 통해 그의 업적을 기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웅장한 무덤은 또한 다윗의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줍니다. 바로 그가 철저히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이런 칭찬을 들은 사람은 성경 어디에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동시에 충직한 부하 장수 우리아의 아내를 뺏은 사건을 통해 확인하듯이 엄연한 사람입니다. 철저한 한계를 지닌 인간입니다. 도무지 죽음을 이겨내지 못한 채 무덤에 잠들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정반대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 시대 종교 정치권력에 의해 짓밟히고 극형으로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의 시신은 아리마대 요셉의 선의에 의해 겨우 수습되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초라한 무덤은 예수님께 별다른 의미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을 비우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놀라운 진리를 32절에서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외쳤습니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죽임당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사도들은 바로 이 부활의 증인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화려한 무덤을 가진 왕이 아니라 무덤을 비운 하나님의 아들을 전하는 증인들입니다. 반드시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증언하는 복음의 주인공은 다윗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의 헛된 집착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진정 죽어야 다시 사는 생명의 진리를 더욱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베드로의 또 다른 명쾌한 정리를 본문 단락의 마지막인 36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36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분명한 호칭을 발견합니다. 바로 “주와 그리스도”입니다. 이 둘은 교회 안에서 너무나 자주, 쉽게 접하는 명칭입니다. 그래서 간혹 너무 쉽고 당연하게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그 시대 상황에 비추어보면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먼저, ‘주님’이라는 호칭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원문 단어는 <퀴리오스>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명칭은 그 시대 오로지 황제와 신에게만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말 역시 잘 아실 겁니다. 구약의 ‘메시아’를 번역한 단어로서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앞서 살펴본 다윗처럼 강력한 힘을 가진 구원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이러한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대한 묘사입니다.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입니다. 로마 제국의 반역범으로 끔찍한 처형을 비참하고 무력하게 당한 주님에 대한 정확한 묘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님의 모습은 그 시대 일반적으로 이해했던 힘있고 화려한 주님과 그리스도와는 정반대입니다. 당시 인식과는 달리 너무나 초라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교회는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철저한 희생과 죽음만이 온 우주를 살리는 진정한 주님이자 그리스도의 자격이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또한 이것이 우리가 전해는 복음의 핵심이라는 점을 복음 전도자로서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특별히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절정은 부활입니다. 하지만 부활만을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부활은 반드시 십자가를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말하지 않는 부활은 거짓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빛과 희망과 승리는 오로지 어둠과 절망과 패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값싼 성공 신화를 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자동적으로 병이 낫고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소위 삼박자 구원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포장된 심각한 거짓입니다. 대신 교회는 죽어도 죽지 않는 생명, 참으로 섬기고 나누며 얻는 승리, 그 어떤 좌절과 굴욕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고 반드시 찬란한 희망으로 변하는 위대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을 위해 예수님께서 죽임당하셨고, 그 주님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이 땅의 첫 번째 교회는 목숨을 걸고 온 세상을 향해 외쳤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복음의 핵심을 항상 마음 깊이 새기며 오늘날 또 다른 참된 증인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참 생명의 주 하나님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후 세상을 향해 첫 번째로 외친 복음을 말씀을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며 전하는 진리를 올바로 깨달아 알기 원합니다. 왕좌에 앉은 다윗이 아니라 십자가에 오르신 예수님을 전하기 원합니다. 한 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죽임 당하신 예수님을 참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을 온 몸과 마음으로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복음의 충성되고 진실한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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