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30일 수요일

출애굽기 29장 1~9절 “위임하여 거룩하게”

2021년 6월 21일,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목사 정대진
출애굽기 29장 1~9절 “위임하여 거룩하게”

1 네가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일은 이러하니 곧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택하고
2 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 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을 모두 고운 밀가루로 만들고
3 그것들을 한 광주리에 담고 그것을 광주리에 담은 채 그 송아지와 두 양과 함께 가져오라
4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5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정교하게 짠 띠를 띠게 하고
6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거룩한 패를 더하고
7 관유를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
8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9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 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


“위임하여 거룩하게 하라” 본문 말씀의 시작과 끝인, 1절과 9절에 동일하게 등장하는 핵심 주제입니다. 그 대상은 바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입니다. 주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는 것은, 이젠 더 이상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소수로 이루어진 가족 신앙 아닙니다. ‘출애굽’이라는 국제적인 사건을 통해 보편적인 신앙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걸맞은 체계와 성직자가 요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아론과 그의 자손들을 제사장 가문으로 세우셨습니다. 본문이 포함된 출애굽기 29장은 제사장직의 시작을 알리고 당사자들에게 직분을 세우는 위임식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절차는 두 단어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바로 ‘희생’과 ‘구별’입니다.

주님께서는 위임식을 위해 거행할 희생 제사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먼저 어린 수소 한 마리와 흠 없는 숫양 두 마리를 고르게 하였습니다. 이 동물들을 바쳐 진행할 제사는 내일 함께 읽을 10절 이하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제사장직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라온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제사장으로 세워질 아론과 아들들을 깨끗하게 목욕 시킵니다. 이어서 앞서 읽은 출애굽기 28장에 자세히 기록된 제사장 의복을 입니다. 여러 보석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복장은 사람들 눈에 분명히 띕니다. 게다가 거룩한 패가 달린 관을 머리에 쓰고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이와같은 겉모습은 그가 일반백성들과 구별된 제사장임을 한 눈에 알아보게 합니다.

이 모든 위임식 절차가 드러내는 바는 분명합니다. 아론으로부터 시작한 제사장 가문은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은 자연스럽게 거리감을 가지게 합니다. 제사장이라는 직분은 나와는 전혀 관련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니면 오늘날 제사장으로서의 기능을 감당하는 목회자들에게만 적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 시대에도 제사장들과 흡사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체계적인 훈련과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 성도들을 섬기는 목사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목회자들에게 적절한 권위를 위임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의 덕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사장을 나와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곤란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먼저 출애굽기 19장 5~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인 시내산 언약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출애굽의 목적과 본질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이스라엘 중 일부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들 전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단지 노예에서 자유민으로 해방시키는 것만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거룩히 구별된 ‘제사장 나라’가 되길 소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사장’은 단지 특정한 사람들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명시적인 의미의 제사장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온 백성이 세계를 중보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본질적으로 제사장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를 신약에서 고스란히 이어받아 발전시킨 구절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함께 읽겠습니다.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사도 베드로가 편지를 통해 말하는 “너희”는 누구일까요?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는 성도를 뜻합니다. 신약에 이르러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유일한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모두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온 교회가 ‘왕 같은 제사장’이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함께 읽은 제사장 위임식의 말씀을 나와는 무관한 먼 옛날이야기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의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믿음의 자녀로서 자신을 돌이켜보는 진리의 토대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만을 위해 살지 말아야 합니다. 내 욕망에만 얽매여서도 안 됩니다. 자기 문제에만 골몰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이웃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 대한민국 가운데 은혜와 평화가 가득하도록 중보하며 헌신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전쟁과 테러와 기근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작은 실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점점 더 무너져 가는 생태질서의 회복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제사장으로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소중한 사명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제사장으로서 완전히 적격인 사람은 저를 포함해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첫 번째 대제사장인 아론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출애굽 여정 내내 동생 모세에게 도움을 주기 보다는 방해된 적이 더 많았습니다. 심지어 군중의 무지몽매한 선동에 넘어가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가리켜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섬기는 극악무도한 죄악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의 아들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레위기 10장 1~2절에 따르면 제사장 위임식 다음날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명령을 우습게 여기고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심판을 받고 숨을 거두는 사건이 일어나고 맙니다. 더 나아가 제사장 나라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 전체가 결국 하나님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제사장을 처음 세울 때부터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참담한 배반을 미리 염두에 두시고 예상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남다르게 대단하고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너무나 연약하고 결점 투성이지만 그들을 붙잡으시는 주님의 권능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런 까닭에 오늘 본문은 시작과 끝에 거듭하여 강조하며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사람을 제사장으로 위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위임하시어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먼저 소중한 사명을 허락하시고 거기에 걸맞은 희생과 구별을 통해 거룩해 가게 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대상을 찾지 않는다. 창조하신다.” - 칼 바르트(Karl Barth)

사랑하는 여러분, 이 자리에 모이신 우리 모두가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음을 말씀을 통해 분명히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비록 지금 나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고 무력해 보인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오히려 많이 부족하고 무능하기에 더욱더 소중히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걸 맞는 힘과 지혜를 주시고 창조해 나가심을 소망하고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와 늘 동행하시며 온 세상을 향한 중보와 대속의 사역을 이어가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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