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0일 수요일

고린도후서 7장 8~16절 “도리어 근심함으로”

2022년 7월 20일, 수,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목사 정대진
고린도후서 7장 8~16절 “도리어 근심함으로”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13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5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근심’과 ‘후회’, 본문의 시작인 8절에서 각각 두 차례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어찌보면 모든 인생은 이 두 낱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근심하고 후회하며 살아갑니다.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만큼 인간이 무척 어리석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항상 뜻한 바대로 인간관계를 끌고갈 수 있는 사람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억지로 자신을 포장할 필요 없습니다. 근심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 까닭에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인 바울 또한 근심했습니다. 자신의 근심을 애써 감추지 않았습니다.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며 자신의 근심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토로하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바울이 근심하는 이유입니다. 8절을 보면 바울은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고린도전후서의 맥락을 통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어제 설교 때 말씀 드린대로,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애정을 가지고 어렵게 개척한 교회입니다. 하지만 많은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바울과 관련해서는 그의 권위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가 이른바, 다른 정통 사도들과는 달리 예수님과 함께 동거동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난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과거로 인해 여전히 의혹의 눈길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바울을 향한 비난과 폄훼가 아직 만연했습니다.

바울로서는 다른 사람들의 힐난은 어느정도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사랑한 고린도교회 안에서 조차 날카로운 의심의 눈초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디도를 통해 그들을 꾸짖는 편지를 고린도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편지를 보내고 바울은 곧 후회 했습니다. 괜히 고린도교회와 관계가 멀어질 것을 우려 했습니다. 특히나 흥분한 감정으로 쓴 편지였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은 8절 내용처럼,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괜한 일을 했다며 전전긍긍했습니다. 고린도교인들이 얼마나 마음 상했을지 몰라 전전긍긍했습니다. 어쩌면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며 심하게 자책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고 돌아온 디도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놀랍게도 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를 통해 근심하고 스스로를 돌이켜 회개하였습니다. 염려했던 일과 정 반대였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은혜가 임했습니다. 

많이 들으셨겠지만 성경에서 회개는 단순히 잘못했던 행동을 뉘우치는 차원이 아닙니다. 전적인 방향전환입니다. 사람을 누구나 살던대로 살고 싶어합니다. 육중한 힘의 관성으로 나아갑니다. 따라서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는 것은 그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철저한 개입과 긍휼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가 ‘회개’했다는 소식이 바울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주었을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단순히 자신을 음해하던 사람들이 마음을 바꾼 것으로만 여기지 않았습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성도를 향한 주님의 초월적인 은혜를 발견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근심에 대해 깊은 성찰에 다가갑니다. 10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바울은 근심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이 무엇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굳이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지금도 하고 계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벗어날 수 없는 숙명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유한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강력한 권력을 움켜줘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망을 받는 인기 스타와 재벌이 각종 기행을 저지르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세상 근심, 더 정확히는 세상살이를 근심하게 하는 인간의 뿌리깊은 공허와 결핍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다릅니다. 고린도교회가 그러하였듯이 혹시 내가 지금 주님에서 멀어져있지 않은지를 두려워하며 살피게 됩니다. 내 감정과 욕심을 진리보다 앞세우지 않았는지를 곰곰이 돌이키게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죄의 길에서 전적으로 방향을 돌려 하나님의 품에 안깁니다. 그것을 가리켜 바울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근심이 찾아올 때 지나치게 염려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근심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다만 적은 소유나 낮은 지위만을 두고 근심한다면 어리석습니다. 그 모두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풍요와 다스림을 불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나의 참 실상을 두고 근심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그의 내면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감각이 활발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를 바울은 11절에서 이렇게 나열합니다.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간절하게 하고, 복음을 변호하여 증거하게 하고 거룩한 분노를 내게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모하게 합니다. 또한 열정을 일으키고 악을 벌하게 합니다. 참된 근심의 결과로 주님 앞에 깨끗하고 정결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근심합니다. 삶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시련이 닥쳐오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런 까닭에 지금 이 시간 기도의 자리로 나아오신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분명히 마음에 새기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 또한 예상하지 못하게 찾아옵니다. 그 은혜가 고린도교회에는 근심의 모습으로 임했습니다. 이를 통해 바울은 이루말할 수 없는 회복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무엇을 근심하고 있는지 기도 가운데 차근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다스림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세상 근심을 물리치시길 바랍니다. 사망에 이르게 하는 어리석은 염려와 불안을 말씀을 통해 떨쳐내시길 바랍니다. 그 대신 참된 근심, 복음 가운데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온전한 근심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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