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1일 화요일

마태복음 26장 26~35절 “떡과 잔을 가지사”

2023년 4월 4일,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목사 정대진
마태복음 26장 26~35절 “떡과 잔을 가지사”

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말귀를 못 알아듣는 제자들, 그리고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예수님. 복음서가 내내 반복해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3년간 동고동락했습니다. 하지만 스승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계속 헛발질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끝까지 가르치셨습니다. 복음서에 많은 비유와 이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이미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음험한 거래를 마쳤습니다. 본문 바로 앞 단락에서 예수님은 유다가 저지른 배신을 언급합니다. 운명의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돌려 말할 여유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가장 중요한 목적을 명확하고 생생히 제자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마침 유월절이었습니다.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식사는 예수님 사역의 핵심입니다. 식탁은 가장 거룩한 성전이자 위대한 교실입니다. 단지 허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닙니다. 습관처럼 음식물을 뱃속에 욱여넣는 자리가 아닙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식사 중에 놀라운 순간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따라서 식사 때,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을 주목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불쑥 손에 떡을 가졌습니다. 잠시 적막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은 그 떡을 치켜들었습니다. 축복하셨습니다. 두 손으로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그런 다음, 포도주잔을 들어 올렸습니다.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그 자리에 모인 제자들은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스승께서 대체 무얼 말씀하시려는 건지, 당장 그 순간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곧 죽임당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르는 처참한 죽음입니다. 누르스름한 빵과 붉은 포도주의 색깔, 은은하게 코 끝으로 다가오는 향기. 떡이 북 찢어 질 때와 포도주가 또르르 잔으로 떨어지며 내는 소리. 아직 남아 있는 온기를 머금은 떡의 촉감. 슴슴한 무교병과 시큼한 포도주의 맛과 식감.

짧은 시간 제자들이 느낀 다양한 감각이 주님의 피와 살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합니다. 그 순간 예수님의 죽음이 순식간에 입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보다 명확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절절한 바람이 담깁니다. ‘내가 이렇게 죽을 거야! 이제 곧 어둡고 두려운 시간이 찾아올거야! 그러니 지금까지 내가 가르친 복음을 명심해!’ 주님의 애끓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 이후 제자들의 반응을 알 수 없습니다. 복음서 저자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곧바로 접속사가 나옵니다. 그런 다음 제자들이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향했다고 알려줍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거북한 진실을 보다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31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끝내 제자들에게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예수님의 비통한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예수님은 앞서 유월절 만찬에서 자신이 얼마나 끔찍하게 죽임당할지를 떡과 잔을 통해 생생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못지않은 또 다른 고통이 있습니다. 바로 제자들의 배신입니다. 아무도 주님 곁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두 무서워 떨며 도망갑니다. 이제 곧 일어날 일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자신감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칩니다. 35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님과 함께 죽겠습니다.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덩달아 똑같이 말했습니다. 그 말 자체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말이 비장하고 거창할수록 더욱 공허합니다. 잠시 후 벌어질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이 보낸 커다란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타나자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들이 호언장담은 마치 거대한 폐건물처럼, 감람산 위에 흉물로 남았습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제자들은 끝까지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 하시는지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떡과 잔을 들고 생생하게 당신의 죽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심지어 감람산에 올라,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대놓고 말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왜 스승이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계속 말귀를 못 알아 들었을까요?

소음 때문입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쿵쾅대며 울려 퍼지는 소리가 너무나 컸습니다. 그 괴성을 탐욕이 더욱 공명시켰습니다. 도무지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탓에, 예수님의 목소리에 차분히 귀를 기울일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진실로 하시려는 말씀 대신, 그 중에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주워 담았습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도 일그러진 시선으로 주님을 왜곡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비참한 도망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쓰라리고 아픈 장면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절망을 넘어서는 위대한 희망을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제자들의 배신을 예고한 뒤에 곧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2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예수님은 버림받으셨습니다. 아무도 주님 곁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처절하게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분명 죽었지만 결코 죽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갈릴리는 주님께서 제자들과 처음 만나 공생애를 시작하신 곳입니다. 그 이후, 그들의 모든 허물과 잘못을 덮고 새롭게 내딛는 걸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참 소망이 있음을 믿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인간의 그 어떤 절망보다 큽니다. 주님의 사랑이 사람의 그 어떤 허물보다 위대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연약함과 탐욕과 배신을 이미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당신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습니다. 당장 극적으로 깨우침을 얻고 변화하리라 기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인내하며 그들에게 계속 말씀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 순간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더라도 언젠가 생생히 살아있는 말씀으로 마음을 뒤흔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당장은 넘어지고 실패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마침내 성령님께서 그들을 변화시켜 신실한 제자로 세우실 것을 알았습니다. 성찬을 통해 경험한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뜻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제자들은 한 때 도망자였으나, 목숨을 걸고 순교하며 진리를 외치고 교회를 지킨 신실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생명을 가슴 깊이 품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수, 목, 금 저녁 집회가 있습니다. 특별히 목요일에는 성찬 예배를 드립니다. 이 거룩한 시간을 형식적으로 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제자들에게 전한 복음을 마음 깊이 품으시길 바랍니다.

내 신념과 의지와 지식과 경험을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죽어야 다시 사는,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 앞에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합니다. 성찬으로 생생하게 알려주신 복음을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겸손히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시어 갈릴리로 먼저 가신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를 죽음과 어둠에서 일으키실 줄 믿습니다. 그 주님과 함께 오늘도 믿음으로 걸어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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