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1일 화요일

마태복음 26장 36~50절 “겟세마네에서 하신 기도”

2023년 4월 5일,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마태복음 26장 36~50절 “겟세마네에서 하신 기도”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예수님께서 기도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이상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기도하게 됩니다. 모순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는 단지 힘 있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구하고 받아내는 거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본질은 사귐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신성을 지닌 참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아버지 하나님과는 구별되는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이 땅에 참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아픔과 고통을 느끼십니다. 연약함과 한계를 절감하십니다. 그렇기에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따라서 기도는 우리 주님께서 굳게 지켜온 삶의 언어입니다. 매일 기도하며 하나님과 두터운 교제를 이어 나가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특히 우리가 읽는 마태복음 안에 ‘주기도’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9~13절에 이 세상 가장 위대한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사복음서 곳곳에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끊임없는 가르침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어떻게든 기도를 좀 더 잘 이해하도록 여러 비유까지 사용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시고 소중히 대하시는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이 세상 가장 위대한 기도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 결정적 순간을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이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마치고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라는 가슴 절절한 말을 남기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자들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앞장서 나서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나머지 제자들도 똑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제자들이 호언장담이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한 말인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곧 당신을 버리고 도망칠 것을 아셨습니다. 마음 깊이 고통과 번민이 차올랐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 자락에 있는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따로 물러나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주님께서 데려가신 세 제자가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와 세배대의 두 아들, 즉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 중에서 특별히 그 세 명의 제자와 더욱 가까이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성경 곳곳에서 발견합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변화산입니다. 마태복음 17장 1~2절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예수님께서 해 같이 밝게 빛나셨습니다. 게다가 그 곁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너무나 놀랍고 황홀한 장면입니다. 그 변화산 위를 주님께서는 제자들 전체를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명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을 향한 주님의 특별한 신뢰와 애정이 드러납니다. 세 제자 역시 분명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따릅니다. 스승에게 총애를 받는 다면 그 기대를 따를 책임이 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주님께 직접, 수없이 기도를 배웠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본문 38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제자 12명 중에서 굳이, 평소에도 많은 은혜를 베풀었던 세 명을 따로 데려오셨습니다. 한 가지 목적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과 함께 깨어 있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함께 하는 기도입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주님의 바람을 철저히 무너뜨립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돌아오니 그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한 번 깨운 후 다시 기도하고 돌아오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눈이 몹시 피곤해 보였습니다. 이제는 깨우지도 않으시고 다시 기도하셨습니다.

사실 이러한 본문 내용이 오해를 주는 게 사실입니다. ‘피곤’이라는, 지극 자연스러운 신체 한계를 무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기도를 무작정 열심히 하는 고행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철저히 오해입니다. 주님의 의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참 사람이신 주님께서는 사람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무조건 오래 기도하라고 닦달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그 날, 주님은 왜 제자들을 다그치셨을까요? 그 이유를 그 때,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39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해 “내 아버지여”라고 부릅니다. 주기도의 시작인 “하늘의 계신 우리 아버지”를 축약한 호칭입니다. 그리고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매듭지었습니다. 이 역시 주기도에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와 연결됩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당신이 몸소 가르치신 대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며 그 인격을 신뢰하셨습니다. 그 믿음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길 구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주님의 원대로 하시길 기도하기 전에,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했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 고통, 그 거친 절망 앞에 예수님은 초연하지 않으셨습니다. 두려워하셨습니다. 그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당신을 통해 실행되길 기도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기도의 본질을 발견합니다. 참된 기도는 섣불리 정답으로 달려가지 않습니다. 누가 들어도 당연하고 뻔한 소리만 늘어놓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주님께 내어드리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감출 게 없습니다. 예수님도 기도하며 십자가를 피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다만, 그 모두를 끌어안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도를 통해 더욱 신뢰해야 합니다. 그 믿음 가운데, 비록 당장 내게 아픔과 시련이 찾아올지라도 주님의 뜻이 마침내 완전히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화를 내신 까닭은 단지 피곤해 곯아떨어져서가 아닙니다. 졸아도 괜찮습니다. 너무 지치고 힘들면 기도하다가도 얼마든지 잘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아예 기도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전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떡과 잔을 나누시며 하신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의기양양해 엉뚱한 소리를 하며 어리석은 탐욕에 빠져 있었습니다.

고난주간을 보내며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았음을 고백한다면, 도무지 값을 길 없는 은혜를 입었다면 마땅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제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동시에 명심해야 합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털어 놓으시길 바랍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지금 얼마나 연약하지, 얼마나 괴롭고 힘든지, 얼마나 의심에 가득한 지를 주님께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 안으실 줄 믿습니다. 그 가운데 저마다를 향한 당신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부디 오늘 하루 그 뜻을 깨닫고 이루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제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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