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31일 목요일

마태복음 8장 14~22절 "주님을 진정 따를 이유"

2019년 1월 30일, 수,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마태복음 8장 14~22절 "주님을 진정 따를 이유"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말씀하시고 산에서 내려오신 후 행하신 두 가지 치유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기적은 결코 그 신비로운 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총체적으로 전하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또 다른 병 고침의 이적을 보여줍니다. 주목해야할 것은 그 대상이 베드로의 장모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직접 말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을 함부로 상상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그녀가 처한 상황은 충분히 추측할만한 의미가 있습니다. 

딸을 가진 부모라면 대부분 공감하시듯이 사위에게 바라는 가장 중요한 기대는 가정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어선을 가진 꽤 넉넉한 형편의 어부였던 베드로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재산을 버리고 갈릴리 출신의 예수라는 이름의 사나이를 무작정 따라 나섰습니다. 물론 그 자체는 숭고한 헌신이지만 그로 인해 가족들이 겪었을 어려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장모로서는 사위는 물론이고 예수님역시 곱게 보일리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그녀의 열병이 이러한 상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상당부분 영향이 있었을 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녀를 주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15절에 따르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께 수종을 드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분명히 확인하게 되는 치유사역의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관계 회복을 통한 제자도’입니다. 한때 그녀에게 예수님은 적어도 불편한 존재였으나 그분으로 말미암아 병이 회복되는 이적을 통해 그 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온 몸으로 절감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위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단지 질병이라는 몸의 병리적인 현상이 사라지는 것이 이적의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회복은 그동안 오해하며 멀어졌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오직 주님만이 내가 진정 믿고 따를 분이심을 진심으로 고백하며 구체적인 헌신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제자로서의 삶이 없는 병 고침은 그저 공허한 일회성 사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기도해도 여전히 병이 계속된다 할지라도 그 고통 가운데 역설적으로 관계가 회복되고 주님을 더욱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이 비록 원하는 방식은 아닐지라도 또 다른 모습의 은혜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어지는 18~22절은 제자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보이신 이적으로 그 분 곁에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병을 고치고 귀신이 쫓겨나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군중의 열광에 녹아들지 않으시고 늘 일정한 거리를 두셨습니다. 

그렇게 잠시 예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을 때 한 서기관이 다가왔습니다. 복음서에 종종 등장하는 ‘서기관’은 바벨론 포로기 때부터 생겨난 직분으로서 율법을 정리하고 연구하는, 오늘날로 따지면 신학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자신이 속한 기득권 집단과 전혀 반대되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결심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동문서답 같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20절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한 마디로 ‘나는 빈털터리’라는 말입니다. 안정적인 거처를 갖지 못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리저리 떠돌며 위험하고 불안한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 안에는 십자가 고난도 슬며시 암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이런 대답을 하신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 서기관이 자신을 따르려는 의도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 것과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환호하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마음먹기만 하면 얼마든지 큰 세력을 이루어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서기관이라는 지위를 포기하고 변방 시골인 나사렛 출신 목수를 따른 다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한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 해볼 만 한 모험이라고 계산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님께서 기적을 계속 일으킨다면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권력은 물론이고 로마 제국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 예수님의 부하인 자신이 나서서 그동안의 인맥을 활용해 잘 중재한다면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거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즉, 그는 당대 최고 신학교육을 받은 엘리트로서 매일 성경을 연구한 학자였지만 정작 마음속에는 참 진리를 구하기보다는 야망으로 가득 찼고 마침내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것은 절대로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제자들인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의 생각이라는 것을 복음서 곳곳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그의 열망을 여지없이 꺾으셨습니다. 여우와 새에게 조차 있는 집 한 칸이 당신에게는 없다며 그런 자신을 따를 수 있는지 되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강렬한 물음표로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따르는 이유가 과연 무엇입니까?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과연 주님께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혹시나 본문 속 서기관처럼, 열심히 기도해 소위 복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길 바라지는 않으십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신앙생활을 통해 모든 일들이 잘 풀리고 건강하고 자녀들의 진로가 환하게 열리길 꿈꾸지는 않으십니까?

물론 저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현실적인 요구를 하고 소원을 아뢰는 것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치유의 기적을 구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들이 금전적인 길이 열리길 바라며, 자녀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속히 해결되길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 안에는 분명 영과 육을 모두 포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 앞에 자신의 욕망을 정직히 인정하고 때때로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은 전혀 흠 잡힐 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인 십자가의 길은 도외시한 채 주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신앙의 가면을 쓰고 오로지 성공과 축복만을 구하는 것을 단호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의 태도는 결국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것에 불과한 까닭입니다. 그 결과는 분명 파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대신, 비록 이 땅에서는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으나 부활하시어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삶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때로 응답이 더딘 것 같고, 심지어 잔인한 침묵 가운데 수없는 실패와 좌절에 빠진다 할지라도 잠잠히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제자로서 거니는 그 여정의 끝에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 모두에게 참된 회복의 은혜가 오늘 하루도 풍성히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