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마침내 글감옥에서 벗어났다.
드디어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전공서를 탐독하고 싶었다.
주저없이 "거룩한 회복탄력성"(2022, 감은사)를 선택했다.
틈틈이 읽어가며 감탄했다.
하지만 그 후 다시 여유를 뺏겼다.
분주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다 목.박 과정에 합격했다.
'읽어야 할 책'들로 이뤄진 거대한 물결이 보였다.
거기에 휩쓸리기 전에 이 책 독서를 마치고 싶었다.
마침내 오늘 이루었다.
감격적인 포만감을 느낀다.
저자는 구약학자다.
그런데 '트라우마'라는 사회과학 개념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이를 토대로 신약을 포함한 성경 전체를 조망한다.
'성서학자'로서 매우 존경스러운 자세다.
협소한 자기 영역에 갇히지 않고 외부와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깊고 넓은 성찰을 펼쳐보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논지를 전개하며 보인, 본래 자신의 주특기인 '히브리어 성경 본문 형성 연구'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관련 분야를 더욱 탐구하고 싶은 충분한 매력을 느꼈다.
그의 다른 대표작들도 찾아 읽고 싶어졌다.
동시에 '목회자'로서 닮고 싶은 공부 태도를 보여준다.
오래전 고대 문서에 담긴 하나님 말씀과 눈 앞에 펼쳐진 현실 속 고통의 관계를 풀어내는 의미있는 예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성경 자체를 꾸준히 탐구하며 동시에 오늘날 인문사회학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참고할 때 복음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풍성한 깨달음이 맥박소리를 내는 설교와 목양으로 이어지게 한다.
책의 내용과 방법론 모두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걸작이다.
유려한 글 솜씨도 일품이다.
한편,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목박과정을 앞두고 읽기 매우 적합한 책이었다.
1년 전 선택에 만족하며 여러 다짐을 하게 했다.
부디 그 결심들이 내 목회와 신학 가운데 따스한 결실로 이어지길 소망한다.
그 과실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치유하는 온기로 다가가길 기도한다.
한 글자씩 음미하며 소리내 읽은, 이 책 결론부를 소개하며 서평을 마친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전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지도층을 미화하거나 영광스럽게 하지 않는다. 대신에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서들은 세계의 폭력과 인간의 결점에 눈을 크게 뜨고 있다. 게다가 유대인이든 기독교인이든 상관 없이, 그런 오류를 범하기 쉬운 인간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하고 사랑하고 인내하는 하나님에 관해 말한다. 많은 승리주의적 문서가 스스로 칭송했던 제국들과 함께 사라졌지만 이러한 성서의 문서들은 지속됐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성서의 비전은 혼란스럽고 종종 임의적인 트라우마 세계 안에서 지속력을 입증했다.
나는 성서가 트라우마와 생존으로 어떻게 가득 차 있는 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성서가 사람이었다면, 흉터, 도금되고 부러진 뼈, 찢어진 근육, 장기적으로 고통스러운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한때 평범했지만 이제는 정체성이 완전히 트라우마로 형성된 사람일 것이다. 이 사람은 분명히 기쁨과 일상의 삶을 살았을 것이지만, 수 세기에 걸쳐 몸과 마음에 트라우마가 주는 지혜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트라우마와 생존에 관한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 또는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예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눈을 돌리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사람의 지혜를 필요로 하는 때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3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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