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2일 월요일

영화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 1995) 리뷰


*스포일러 포함

그는 강하다
화려한 성과와 경력을 자랑한다.
강렬한 카리스마로 부하로 압도한다.
"Shut the fuck up!" 외칠 때 그의 권력은 절정에 이른다.
노련한 핵잠수함 함장인 프랭크 램지 대령의 말을 아무도 거스를 수 없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 순간 그의 치명적인 취약성이 드러난다.
꼭꼭 숨겨온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폭발한다.
그 결과 판단력과 절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잠수함 같은 자기 세계에 갇혀, 아집에 휩싸여 귀를 막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조국은 물론이고 세계를 위험에 빠뜨렸다.

반면 부함장 론 헌터 소령은 정반대 인물이다.
엘리트지만 엘리트주의에 빠져있지 않았다.
부하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피고 존중했다.
위기 상황에 몸을 사리지 않고 직접 해결했다.
그 덕분에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을 재앙에서 구했다.

이렇듯 함장은 미국의 위대함은 감동적으로 외치는 탁월한 웅변가지만 정작 그 핵심인 민주주의를 배격했다.
반면 부함장은 비록 경험은 부족하지만, 더 넓은 시야로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고 실천으로 옮겼다.
이처럼 영화는 두 주인공을 극명하게 대조한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두 사람을 단순히 선악으로 나누지 않는다.
청문회가 끝나고 프랭크 램지는 론 헌터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가 옳았고 나는 틀렸네"(You were right, and I was wrong.)

이로서 그는 훌륭한 군인으로서 명예를 회복했고, 영화는 단순한 전쟁 액션 영화를 넘어 지도력에 대한 탁월한 성찰을 안겨주는 걸작이 되었다.
독선을 내려놓고 자기 오류를 겸손히 인정할 때 비로소 위기를 이겨내는 리더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실천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를 참으로 지킬 수 있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복음을 실천해야 온전히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건 다름 아닌 힘과 권위를 내려놓는 용기와 섬김이다.
가장 가까이 날마다 마주하는 이들을 참으로 존중하고 돌보아야 한다.
목회자의 진가는 그의 감동적인 언변이 아니라 일상에서 무던히 실천하는 목회적 태도에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십자가와 부활이 알려주는 복음의 신비 속에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라고 고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새 40대 목회자가 되어 알게 모르게 조금씩 기득권을 손에 쥔 나 자신을 여러모로 돌아보게 한 영화다.

중후반부 이율배반적인 행동으로 더욱 씁쓸하게 다가오기에, 오히려 깊은 울림을 안겨준 램지 대령의 초반 명대사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자네(부함장 론 헌터 소령)에게 몇 가지 충고를 좀 하고 싶군.
자네도 언젠가 함장이 되고 싶다면 가장 하면 안 되는 일은 자신만 생각한다거나 나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짓일세.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놈은 싫어. 아첨꾼은 절대 싫고.
언제나 자네 임무와 대원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네."

Allow me to give you a tiny bit of advice.
If you want your own boat someday.
the very worst thing you can do is worry about yourself or try to impress me.
I can't stand save-asses, and I won't abide kiss-asses.
You keep your priorities straight:
Your mission and your 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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