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0일 토요일

테드 창, "네 인생의 이야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 中(엘리, 2016) 후기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될 생각. 너는 명백하게, 기가 막힐 정도로 나와는 다르다는 사실. 이 생각은 네가 나의 복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내게 또다시 일깨워줄 거야. 너는 매일처럼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존재이지만, 나 혼자 만들어낼 수 있었던 존재는 결코 아니야."

"우리 관계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사실을 내가 매일 자각하게 되는 것은 네가 처음 걷기 연습을 하면서부터야. 너는 쉬지 않고 어딘가로 달려나가겠지. 네가 문지방에 부딪치거나 무릎이 까질 때마다 나는 너의 아픔을 내 것처럼 느끼게 돼. 마치 말을 안 듣고 멋대로 행동하는 팔이나 다리가 하나 더 생긴 듯한 느낌이지. 내 몸의 연장이니까 지각신경이 느끼는 아픔은 고스란히 나한테 전달되지만, 운동신경은 전혀 내 명령에 따르지 않는 꼴이야."

"유아Infant라는 단어는 ‘말할 줄 모르는’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너는 ‘난 괴로워’라는 말만은 완벽하게 할 줄 알고, 쉬지도 않고 주저 없이 그렇게 말해. 그 주장에 대한 너의 헌신적인 태도에는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어. 일단 울기 시작하면 너는 분노의 화신이 되고, 온몸으로 그 감정을 표현하지. 재미있는 건 네가 조용하게 있을 때는 몸에서 빛을 발산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야. 만약 누군가가 그런 상태의 너를 보고 초상화를 그린다면, 나는 그 그림에 후광을 포함시키라고 주장하겠지. 그렇지만 불쾌함을 느낄 때 너는 큰 소리를 발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클랙슨이 되어버려. 그런 너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화재경보기로 족할 거야. 

네 인생의 이 단계에서 네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어. 내가 너에게 젖을 먹이기 전까지 네 안에는 과거의 만족감에 관한 기억도, 미래의 충족에 대한 기대감도 존재하지 않아. 그러다 젖을 빨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역전되겠지. 너는 세상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느끼지 않게 돼. 네가 지각하는 유일한 순간은 오로지 지금뿐이야. 너는 현재 시제 속에서만 살아. 여러 의미에서 실로 부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지."

"헵타포드들과의 공동 작업은 나의 인생을 바꿔놓았어. 나는 너의 아버지를 만났고, ‘헵타포드 B’를 배웠어. 이 두 가지 사건은 내가 지금 너의 존재를 아는 것을 가능하게 해. 달빛에 물든 이 파티오에서 말이야. 훗날, 세월이 흐른 뒤에는 네 아버지도 떠나가고, 너도 떠나가게 될 거야. 이 순간으로부터 내게 남겨질 것은 오직 헵타포드의 언어밖에는 없어. 그래서 나는 주의를 기울이고, 그 어떤 세부도 놓치지 않을 작정이야.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될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 

이런 의문들이 내 머리에 떠오를 때, 네 아버지가 내게 이렇게 물어. 

“아이를 가지고 싶어?” 그러면 나는 미소 짓고 “응”이라고 대답하지. 나는 내 허리를 두른 그의 팔을 떼어내고, 우리는 손을 마주잡고 안으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고, 너를 가지기 위해."


사랑하는 영화 "어라이벌"('컨택트'라는 괴이한 개봉명을 부르기 싫다.)을 몇달 전에 무척 감명깊게 다시 보았다.
곧바로 이 영화의 원작, "네 인생의 이야기"를 포함한 테드 창의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리디북스에서 전자책으로 샀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문득 리디북스 '내서재'를 살펴보다 기억이 났다.

설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원래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려했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싶었다.
정확히는 문학을 읽어야만 할 것 같다.
분주한 일상을 지나는 마음 속에 촉촉한 문장이 스미길 바랐다.

집에 도착해서 이 난해한 중편소설을 다 읽으며 내 선택에 만족했다.
'테드 창'에 왜 열광하는지 충분히 공감했다.
깊은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풀어냈다.
'네 인생의 이야기' 경우 영화와 다른 결의 감동을 안겨줬다.
그의 나머지 작품들도 읽고 싶다.
테드 창 고유의 예술 세계가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의 목회와 설교 또한 그러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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