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동틀 무렵 - 이승희

동틀 무렵 

- 이승희

한 우주가 지난다는 게 뭐 다른 일이겠습니까, 새벽 첫 차를 타는 사람들의 눈가에서 떨어지는 잠 같은 것이거나 휘어진 골목을 돌아 나오는 두부장수의 손끝에서 울리는 종소리거나 그의 터가는 손등 같은 게 아니겠습니까?
동틀 무렵, 그렇게 우주가 사람의 마을로 손금처럼 내려오고 아직 저마다의 이름을 채 밝히지 못한 시간, 가난은 그래도 사람들을 먼저 깨워 이 시간을 온전히 지키라합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과 저 산을 지나 우주 한끝에 닿는 길을 당신이 먼저 걸어보라 합니다. 아마 그 몸에도 동이 트려나봅니다. 아직 잠든 식구들을 두고 시퍼런 눈으로 동트는 사람들, 그들이 한 우주가 아니겠습니까?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이승희 저
창비 | 2006년 01월

2021년 10월 7일 목요일

시라카와 시즈카 <한자>(AK) 121쪽

 "인간으로서의 이상형으로 간주되는 聖(성)은 본래 耳(귀 이)가 밝은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그것은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중략)

臣(신하 신)은 커다란 눈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望(바랄 망), 監(살필 감), 臨(임할 림)등, 이 형태를 따르는 글자들이 신의 강림을 두루 살피는 것을 나타낸다는 사실로 미루어, 臣(신)은 본래 神(신)을 섬기는 사람이었다."

시라카와 시즈카 <한자> 121쪽.

- 진정한 거룩함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데서 나온다.

참된 신하는 눈 앞의 권력자가 아닌, 그를 세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목회신학> 31쪽.

나는 내가 새로운 것을 창안한다거나 목회신학 분야를 "전적으로 재구성"한다고 꾸미고 싶지 않다. 오늘날의 설교와 예배, 그리고 목회적 봉사는 이와 같은 허영의 찌꺼기들로 온통 쌓여 있다.

목회실천에 있어서 오늘날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현대의 조류에 재빨리 적응시킨 것들을 열심히 들여다 보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세기 동안 시험을 거쳐 온 목회경험들을 새롭게 경청하는 데서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토마스 오덴 <목회 신학>(한국신학연구소) 31쪽. 

- 나는 미련하고 둔한, 옛날 목사이고 싶다.

2021년 9월 27일 월요일

[영화 리뷰, 추천] "더 길티"(Den skyldige, 2018)

* 약한 스포일러 포함

진실과 거짓에 대한 주제를 제한된 형식으로 세련되게 풀어가는 걸작이다.

클로즈업과 침묵을 과감히 사용하는 대범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최근 본 영화 중 시나리오가 가장 탄탄했다. 튀지 않고 자연스러운 반전이 인상적이었다.

곤궁한 이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묵살되어 결국 그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용기를 낼 수 없는 사회가 얼마나 비극적인 거짓을 낳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로크"(Locke, 2013)와 함께 두고두고 생각날 영화적 도전이다.

이번 주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리메이크작이 무척 기대된다.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52436




2021년 9월 25일 토요일

[영화 리뷰] 사마에게(For Sama, 2019)

나에게 숙제와도 같았던 영화였다.
봐야 한다는 당위성은 잘 알았지만 볼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주에 유튜브로 결재했다.

하지만 20분가량 보다가 결국 창을 닫았다.
극화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 보이는 전쟁의 참상을, 어린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차마 계속 볼 수 없었다.

한 주가 지나 다시 용기 내 화면을 응시했다.
몇 번이나 중간에 멈춰야 했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세상에 실재하는 비극의 무게를 평범한 한 개인이 견뎌낼 수는 없다.
다만 분명히 목격하고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 그렇게 세상을 향해 외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의 위대함을 깨닫는다.
이 영화는 그 결과물이다.

감상 자체가 힘겨운 고통이지만 꼭 보기를, 여전히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 속에 희생되는 이들에게 미력하나마 응원의 마음을 전하길 추천하고 싶다.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55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