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7일 일요일

사사기 5장 19~31절 "참된 승리"

2021년 8월 13일,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사사기 5장 19~31절 "참된 승리"

19 왕들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은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20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21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22 그 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 소리가 땅을 울리도다
23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24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25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우유를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고
26 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일꾼들의 방망이를 들고 시스라를 쳐서 그의 머리를 뚫되 곧 그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도다
27 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28 시스라의 어머니가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며 창살을 통하여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가 그의 병거들의 걸음이 어찌하여 늦어지는가 하매
29 그의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30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 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 놓은 채색 옷이리로다 곧 양쪽에 수 놓은 채색 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31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어제 나누었듯이 사사기 5장은 드보라의 찬양이 길게 담겨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19절 이후는 하반부에 해당됩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이 승리한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줍니다. 사사 드보라와 바락은 단지 가나안의 왕 야빈과 군대장관 시스라로 대표되는 특정한 임금과 나라와만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 의미가 한 층 더 부각돼 강조됩니다. 사사는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괴롭힌 당시 가나안 전체의 우상문화에 맞서는 전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승리 하였습니다.

이 전쟁은 언뜻 보기에는 땅 위에 벌어진 흔한 전쟁 같습니다. 하지만 드보라는 본문 20절에서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라고 노래합니다. 실상 하늘 위 별들 사이의 싸움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별은 그 자체로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전달하고 대리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싸움에 나선 별들이 여름에는 늘 말라있는 기손 강에 기적적으로 많은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그렇게 생긴 큰 물결이 이스라엘이 두려워했던 가나안의 강력한 철 병거를 쓸모없게 만들었습니다.

본문이 묘사하는 이런 장면은 지난날 홍해에 빠져 죽었던 이집트 군대를 연상시킵니다. 이 두 사건 사이의 공통점을 통해,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구했던 하나님께서 여전히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그 어떤 위험에서도 건져주심을 깨닫게 됩니다. 


이어서 23절 말씀을 보면 ‘메로스’라는,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는 나라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평소 이스라엘이 도움을 줘서 이번에 보답 기대할 만한 동맹국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바람과 달리 메로스는 이스라엘을 돕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통치에 대한 거부입니다. 이러한 배반에 대해 드보라는 저주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런 메로스의 변절과 대조되는 인물이 바로 야엘입니다. 드보라는 가나안의 엄악한 군사 지도자 시스라를 용기있게 무찌르고 전쟁을 끝맺은 그녀에게 축복을 선포합니다. 본문 24~27절이 그런 야엘의 영웅적인 행동을 묘사합니다. 이미 4장 17~22절에 기록된 내용이지만 너무나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의 시 형식으로 다시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27절입니다. 다함께 읽겠습니다.

27 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여기 보면 시스라가 숨을 거두는 장면을 느린 화면처럼 보여줍니다. 사실 26절에 따르면 말뚝이 시스라의 관자놀이를 관통했기에 그 순간 즉사했을 겁니다. 그러나 시적인 표현을 통해 그 죽음을 느리게 묘사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인이 심판받는 장면을 주목하며 생생하게 느끼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데 머뭇거렸던 메로스와 용기있게 정의와 평화의 길을 열어간 야엘의 모습 가운데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과감히 진리를 따라야합니다. 확실한 주님의 길을 눈 앞에 두고도 메로스처럼 여러 계산 가운데 몸을 사리고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그 어떤 어려움에도 야엘처럼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길 바랍니다. 그로인한 우리의 모든 희생과 눈물을 주님께서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통해 악한 이들을 벌주시는 공의의 순간을 주목하십니다.


이어서 28~30절은 시스라의 어머니를 소개합니다. 어제 말씀드린대로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불리는 드보라와 대조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들 시스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사 드보라는 시스라의 죽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결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시스라의 어머니는 아들의 느린 귀환을 오히려 좋은 소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녀는 곁에 있는 시녀들과 대화하며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스라가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 끝에 많은 전리품을 얻어서 병사들과 나누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스라의 어머니는 전리품을 나누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30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30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 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 놓은 채색 옷이리로다 곧 양쪽에 수 놓은 채색 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시스라의 어머니가 기대에 푸풀어 잠기는 상상 속에, 전쟁에 패해 전리품 신세가 된 여인들에 대한 긍휼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잔인한 인물인지를 폭로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녀의 양육을 받은 시스라역시 마찬가지로 끔찍한 괴물이었음을 암시합니다.

특별히 30절에서 “한두 처녀”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표현은 문자적으로는 “자궁 하나, 자궁 둘”이라는 뜻입니다. 그녀는 아무 죄없이 포로로 잡힌 여성들의 인격은 전혀 존중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아들을 포함한 군인들의 쾌락과 출산을 위한 도구로만 상대를 철저히 비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스라의 어머니는 “채색 옷”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장군에게 어울릴 만한 부와 지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시스라의 어머니가 가나안의 군사령관인 아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승리와 시스라의 패배를 전혀 알지 못하는 그녀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불신앙에 눈이 가리워 역겨운 욕망에 취해 착각에 빠진 이들의 허망함과 무지함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승리를 확실히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때때로 현실에 지쳐 주님께서 참으로 이기셨는지 의문과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온 세상을 향한 주님의 승리를 늘 잊지 말고 반드시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이웃을 우리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 여기지 마시고, 그들 모두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며 섬김과 존중의 삶을 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31절은 드보라의 노래는 시스라 어머니의 말에서 다시 주님을 향한 간구로 돌아오며 끝이 납니다. 그녀의 마지막 찬양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원수의 운명이 대조되기를 바라는 간구로 마칩니다. 그리고 드보라의 승리를 통해 이스라엘이 누리게 된 40년의 평화를 언급하며, 이러한 그녀의 기도가 응답되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여러 갈등과 아픔은 얼핏 보기에는 땅의 일로만 그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 모두는 영적인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와 기손강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큰 능력으로 건지셨듯이 오늘 우리와도 함께하시며 이기게 하심을 반드시 믿으시길 바랍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돕지 않은 메로스와 용기있게 악인을 무찌른 야엘의 대조적인 모습을 발견합니다. 과감히 야엘의 길을 걸으시길 바랍니다. 진리를 따르는 일에 미적거리지 마시고 담대히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아들이 죽었음에도 알지 못한 채 폭력적인 탐욕에 빠진 시스라 어머니의 어리석음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반대로 이런 어리석음을 경계하며 그 어떤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승리를 신뢰하며 평화의 길을 열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드보라의 노래를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당신의 승리를 높이는 찬양을 우리 각자의 목소리로, 삶으로 이어 부르길 바라십니다. 오늘 하루도 승리의 노래를 부르시길 바랍니다. 그 노래의 근거 되시는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의 마침표를 하나님께서 찬란하게 찍어주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하나님과 동행하여 참된 승리를 누리는 오늘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사사기 5장 1~18절 "찬양의 이유"

2021년 8월 12일,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사사기 5장 1~18절 "찬양의 이유"

1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이르되
2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3 너희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4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5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 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6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7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9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10 흰 나귀를 탄 자들, 양탄자에 앉은 자들, 길에 행하는 자들아 전파할지어다
11 활 쏘는 자들의 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물 긷는 곳에서도 여호와의 공의로우신 일을 전하라 이스라엘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의로우신 일을 노래하라 그 때에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12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가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13 그 때에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내려오셨도다
14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들은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들이요 베냐민은 백성들 중에서 너를 따르는 자들이요 마길에게서는 명령하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들이 내려왔도다
15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 하니 잇사갈과 같이 바락도 그의 뒤를 따라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16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찌 됨이냐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17 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단은 배에 머무름이 어찌 됨이냐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도다
18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아멘


어제까지 함께 읽은 사사기 4장은 하나님께서 사사 드보라를 통해 거둔 놀랍고도 위대한 승리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이어지는 5장은 그런 드보라와 바락이 함께 노래한 찬양 가사가 길게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중에서도 전반부입니다. 이러한 전반부는 또한 1~11절과 12~18절로 내용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 말씀을 단락별로 전체 내용을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먼저 찬양의 시작인 2절을 보면 주님을 향한 찬송으로 백성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성도의 찬양은 언뜻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화려한 성공의 이유가 자기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착각합니다. 따라서 사사들이 야빈의 군대를 무찌르고 하나님을 찬양한 것은 그들의 진정어린 신앙 고백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즉, 지금 자신들을 향한 백성들의 환호에 마음을 흐리게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심을 분명히 선언하였습니다.

본격적으로 찬양을 드리며 이어지는 4~5절에서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임하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고대 서아시아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기상현상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징조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구름이 물을 내리고 땅과 산이 진동하는 것은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계시고 그들을 위해 싸우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 물론 눈앞에 당장 신비로운 일들이 펼쳐지지 않습니다. 초자연적인 기적이 즉각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안에 담긴 진정한 능력과 구원을 소망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며 참으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6~8절은 가나안의 압제를 받는 동안의 이스라엘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먼저 6절을 보면 ‘대로가 비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역을 하는 상인들이 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경제적으로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음을 알려줍니다. 또한 서민들은 강도들을 피하기 위해 오솔길로 다녀야 했고 인구는 점점 줄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본문 7절 말씀 다시 한번 다같이 읽겠습니다.

7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드보라가 단순히 이스라엘의 군사적 영역 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면에서 지도자로 인정받았음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28절 이하에 나오는 “시스라의 어머니”와 대조됩니다. 이스라엘을 억압했던 가나안의 군대장관 시스라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헛된 희망 속에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반면 괴롭힘 당하던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히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성경 전체는 거듭해서 주님이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음을 말씀합니다. 따라서 구원은 막연한 종교적 관념이 아니라 우리를 참으로 살리는 위대한 사랑임을 알려줍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정한 부모가 되셔서 진실로 돌보심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이 안에 담긴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마음 깊이 품으시길 바랍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9~11절에서 두 사사는 다시 한번 이스라엘로 하여금 찬양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기서 ‘방백’, ‘흰 나귀를 탄 자들’, ‘양탄자에 앉은 자들’, ‘길에서 행하는 자들’, ‘활 쏘는 자들’과 같은 구체적인 표현을 통해 여러 직업과 계층을 언급합니다. 이를 통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던 다양한 삶의 현장을 이야기 하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로 말미암아 주님을 찬양을 하는 것은 단지 교회 안의 예배만으로 그치지 않고 모든 일상을 통해 이어가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12절부터 오늘 본문의 두 번째 커다란 단락이 시작됩니다. 이 단락의 주제는 하나님의 전쟁에 누가 참여하느냐 입니다.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도 에브라임, 베냐민 그리고 므낫세의 큰 아들인 마길, 스불론, 잇사갈, 납달리는 전투에 용맹스럽게 참여했습니다. 반면 르우벤, 길르앗, 단 아셀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가나안의 압제를 직접적으로 받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다른 지파가 겪는 문제 해결에 마음을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드보라는 야곱의 맏아들인 르우벤의 후손들인 르우벤 지파를 대표적으로 거명하며 꾸짖고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르우벤은 양떼를 돌보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그들이 전쟁에 참여하라는 부름을 받았을 때, 생업과 전쟁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에 대한 고민과 생각만 많았을 뿐,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16, 17절은 그렇게 어정쩡한 자세로 무책임한 태도를 취하는 이들을 책망하는 질문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 두 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16 어찌하여 네가 양의 우리에 앉아, 양 떼를 부르는 피리 소리나 듣고 있는가? 르우벤 지파에서는 마음에 큰 반성을 하였다.
17 어찌하여 길르앗은 요단 강 건너에 자리잡고 있고, 어찌하여 단은 배 안에 머물러 있는가? 어찌하여 아셀은 바닷가에 앉아 있는가? 또 그 부둣가에서 편히 쉬고 있는가?

이스라엘은 각 지파별 개성과 자유가 충분히 존중되는 민족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같은 하나님을 모시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속한 지파는 당장 큰 문제를 겪고 있지 않더라도 다른 지파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마땅히 그들을 도울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비록 지파는 다르지만 엄연히 한 형제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5절 하반부부터 17절까지 기록된 지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았습니다. 그래서 드보라는 자신의 노래를 통해 그들을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살펴야 합니다. 같은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포항제일교회 공동체는 모두가 서로에게 형제, 자매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 교회 안에 어려움 당하는 이들의 고통을 모른 척 하진 않으십니까? 교회 안 다른 지체들이 겪는 여러 괴로움들이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진 않으십니까? 그것은 한 믿음 아래서 우리를 가족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각각의 교회를 넘어, 비록 교파와 전통은 다를지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세상의 모든 교회가 한 몸을 이룸을 믿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눈을 더욱 높이 들어 우리교회 뿐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지으신 온 세계 속에 신음하는 생태계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위대한 승리를 거둔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 찬양은 우리의 모든 일상 가운데 삶을 통해 주님을 높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믿음의 형제들의 어려움에 눈감은 어리석음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드보라의 찬양을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이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참된 승리를 날마다 더욱 감사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믿음과 섬김의 삶을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진정 듣고 싶어 하는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때로 이웃의 눈물을 외면했던 어리석은 모습을 뉘우치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 모두에게 주님께서 오늘 하루도 참 승리를 안겨주실 줄 믿습니다.

2022년 3월 12일 토요일

[영화 후기] “킹메이커”(2022, 변성현 감독)

 


모처럼 본 잘 만든 정치 영화다.
전작 ‘불한당’과 마찬가지로 감독의 세련된 영상미가 인상적이었다.
주,조연 배우들의 연기 역시 놀라울 정도로 탁월했다.

깊은 여운과 함께 엔딩 크레딧을 보며 어른께서 남기신 유명한 말씀이 떠올랐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이 둘 사이의 균형감각이 절실한 시대다.
무척 고단한 과업이다.
그러나 앞서 걸어가신 위대한 이들을 떠올리며 자신을 추슬러 본다.

이렇듯 깊이 있는 통찰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이고 상업 영화로서의 탁월한 대중성도 함께 가진 참 좋은 영화다.

2022년 2월 7일 월요일

설날 필사



올해 마흔 살이다.
목회자로서 여러모로 중요한 시기다.
그런 탓에 많이 염려한다.
분주한 세상의 속도에 휩쓸린다.
어리석은 비교를 반복한다.

그런 내게 선물처럼 말씀과 詩 한 편이 다가왔다.
설날 당직을 하며 옮겨 적었다.
한 글자 한 글자 기도를 담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올 한해 욕망으로 들끓을 것이다.
수없이 좌절하기도 할 것이다.
다만 삶의 기준음과 방향을 명료하게 다듬어야겠다.
그리하여 내년 설에는 담백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길 소망한다.

2022년 2월 5일 토요일

[영화 리뷰] "펀치 드렁크 러브"(Punch-Drunk Love, 2002)


사실 보는 내내 당황했다.
예상했던,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다.
연출 방식도 감독 특유의 기괴함이 넘쳐났다.
하지만 엔딩 크레딧과 함께 영화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건 너의 이야기'라고.
주인공은 마침내 불안한 자신, 그리고 두려운 현실과 마주했다.
그리하여 결국 치유를 얻었다.
그 중심에는 이해 못할 돌연한 사랑이 있었다.
그를 포근하게 껴안아 주는 여주인공의 손길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것 같다.
때로 영화는 촉감으로 기억 된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