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8일 토요일

창세기 29장 묵상

31 여호와께서 보시니, 레아가 사랑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아기집을 열어 주셨다. 그러나 라헬은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창세기 29장 31절, 새한글 성경

<묵상>
하나님께서 보셨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초라함을, 여동생과 비교당하는 비참함을.

'그래서' 주님은 레아의 아기집을 열어주셨다. 영광스러운 생명의 선물을 안겨주셨다.

'그러나' 그녀의 동생, 남편의 극진한 사랑을 받던 라헬은 정작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라헬만의 또 다른 절망에 빠졌다.

인생의 빛깔은 단색이 아니다. 내내 눈부시거나 항상 음울하지 않다. 찬란한 성취에 으쓱거리거나 처량한 실패에 움츠러들지 말자.

그래서,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양한 접속사로 우리 삶을 조율하고 이끌어 가신다. 사랑 어린 눈길로 바라보시고 품어주신다.

예수님이 살았던 세상(IVP, 2024) 서평






나는 신학교에서 흙 내음을 맡았다. 예수님은 유령이 아니다(마 14:26~27). 땅을 밟고 햇살을 받으며 살아가셨다. ‘살아감’,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다. 1세기 서아시아와 로마의 시대상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이 살았던 세상』 출간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다.

다루는 주제뿐만 아니라 책의 만듦새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들이 좋아했던 각종 ‘도감’과 비슷하다. 큼지막한 종이에 예수님 당시 시대상이 세련된 삽화와 편집으로 펼쳐져 있었다. 어린아이가 신비로운 눈길로 공룡과 중장비의 세계에 빠져들 듯, 나는 책장을 넘기며 예수님이 살았던 세상을 흥미롭게 들여다보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정리’다. 성경 배경을 소개하는 학술서는 많다. 대부분 유익하지만, 방대한 양에 위축되거나 가독성이 떨어진다. 반면에 이 책은 복음서를 읽으며 자연히 궁금해지는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추렸다. “유대 민족”, “로마의 통치 체계”와 같은 거시적인 사회 체계뿐만 아니라 “식물”, “어업”, “농업”과 같은 생활상도 함께 소화한다. 결정적으로 “십자가 처형”과 “죽음과 매장”에 대해 매력적인 그림과 함께 설명하며, 예수님의 복음을 생생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책의 목적을 분명히 한다.

두 저자의 안내를 따라 매력적인 여행을 하며 소원이 생겼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 아들도 언젠가 이 흥미로운 여정에 함께 하길 바랐다. 문득, 책의 첫 장에서 저자가 아들들과 부모님께 바친 감사의 글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어린이 혹은 청소년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속 세계에 호기심을 품고 보다 흥미롭게 ‘탐험’하길 바라는 의도가 뜨겁게 와 닿았다.

저자는 그런 바람을 책의 가장 마지막 문단에서 이렇게 애정을 담아 적는다.

“자, 그럼 이제 여러분이 직접 복음서를 읽어보세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들과 예수님이 하신 이야기들, 그리고 예수님이 언급하신 사물들에 대해 읽고 생각해 보세요. 꾸준히 읽으세요! 탐구를 계속하고, 배우기를 멈추지 마세요!”

정확히 내가 아들에게, 그리고 이제 막 신앙 여정에 발걸음을 내디딘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이 글을 쓰며 깨닫는다. 나는 이 책의 내용과 형식 못지않게 저술 태도에 크게 감동했다. 저자들과 같은 포근한 마음으로 예수님이 살았던 세상에서 펼쳐진 아름다운 복음 이야기를 증언하는 것이 목회자로서 가장 중요한 소명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언젠가 아들이 이 책을 펼쳐 들고 흥미롭게 이쪽저쪽을 들춰보았으면 좋겠다. 예수님을 유령으로 오해해 겁에 질려 허공에 손을 휘두르지 않길 바란다. 그 대신 주님의 손을 맞잡고 뜨거운 체온을 느끼며 함께 걸어가길 기대한다. 그렇게 복음을 품고 자기에게 주어진 세상을 생기있게 살아가길 축복한다. 아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다른 이들 역시 흙냄새를 맡길 소망한다.

2025년 1월 16일 목요일

창세기 28장 묵상

16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 말했다. “여호와께서 확실히 이곳에 계시는데, 내가 알지 못했구나.” 
창세기 28장 16절, 새한글 성경

<묵상>
'나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확실한 임재를 경험한 사람의 외침이다. 그리스도인은 정답을 말하길 삼가야 한다. 지나친 자기 확신을 경계한다. 그런 혼돈은 진리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짙은 어둠 속에서 헤맬수록, 혼란에 사무치고 두려움에 휩쓸릴수록, 이렇게 담담히 고백해야 한다.
'주님께서 확실히 이곳에 계신다.'

2025년 1월 14일 화요일

창세기 27장 묵상

20 이삭이 아들에게 물었다. “사냥감을 어쩜 이렇게도 빨리 발견한 거냐, 얘야?” 야곱이 대답했다. “여호와 아버지의 하나님이 제 일이 잘되게 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27장 20절, 새한글 성경

<묵상>
리브가는 조급했다. 불안에 사로잡혀 서둘러 음모를 꾸몄다. 아들 야곱이 계획을 성실히 완수했다. 하지만 그들이 거둔 성공은 혹독한 비극으로 몰아넣었다. 애틋한 모자는 이후 영영 이별한다. 야곱은 에서의 살해 위협에 시달려 도망자가 된다.

문득 눈길을 사로잡은 대목이 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이며 “여호와 아버지의 하나님”을 언급한다. “하나님의 복”에 욕심을 내어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한다. 하지만 행동은 주님의 뜻과는 먼, 거짓과 술수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며 거룩한 종교 언어를 내세우면서도 부정직한 죄악을 저지르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지나치게 커다란 탐욕이 성급한 걸음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이미 주님께서 주신 약속(창 25:23)을 다시금 돌아보자.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과 하나님을 속이지 않도록, 점점 가빠지는 호흡을 천천히 하며 하나님을 뒤따르는 연습을 이어가자.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약삭빠른 성취가 아닌 상실에 동요하지 않은 무던함을 통해 이루어진다.

2025년 1월 12일 일요일

영화 “러브레터”(1995) 30주년 기념 재개봉 감상 후기


 

30주년 기념 재개봉 덕분에 영화 “러브레터”를 오랜만에 보았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엇갈림'이다.

히로코는 본래 보내려 한 (남자) 이츠키 집이 아닌 (여자) 이츠키 집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시게루는 히로코를 먼저 알고 좋아했지만, 미처 표현 못한 사이 후배 이츠키에게 그녀를 뺏긴다.
영어 시험지가 남, 여 이츠키가 바뀐 채 전해져 그날 에피소드를 만든다.

이러한 엇갈림은 시간을 거슬러 기억을 소환한다.
(여자) 이츠키의 어머니는 시아버지가 고집을 부려 시간을 지체한 까닭에 남편이 죽었다고 오해했다. 하지만 이츠키의 할아버지가 애써 달린 덕분에 그나마 병원에 더 일찍 도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이러한 정서를 통해 중심 서사가 더 또렷이 드러난다. (여자) 이츠키는 ‘아우슈비츠의 아담과 하와’로 지냈던 중학생 시절, 괴팍하게만 기억했던 (남자) 이츠키가 실은 자신을 무척 좋아했음을 제법 시간이 흐른 뒤에 절절히 깨닫는다.

이 영화의 명장면 명대사, 히로코의 “오 겡끼 데스카? 와타시와 겡키데스”(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요.)는 그 모든 엇갈림과 기억, 혹은 ‘엇갈린 기억’을 향한 절규이자 극복이다.

잔향에 취해 극장을 나오며 이 영화를 개봉관에서 보았던, 25년 전이 떠올랐다. 그 시절 내게 영화는 힘겨운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하는 안온한 도피처였다.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진지하게 몰입했던 대상이었다. 그 시작에 “러브레터”가 있었다.

참 오랜만에 다시 감상하며 다른 결의 감동을 느낀다. 비로소 내가 이 영화를 사랑하는 까닭을 알았다. 그토록 수없이 반복하며 보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미처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오랜 시간 나는 이 영화에게서 큰 위로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에서 O.S.T 들으며 나직이 읊조렸다.
“오 겡끼 데스카? 와타시와 겡키데스”
그건 다름 아닌 중학생 이츠키 또래였던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자 대답이었다. 어느샌가 나는 ‘잘 지내’라고 덤덤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그 모든 엇갈림에서, 뒤틀린 기억에서 조금 더 의연해진 나를 발견했다.

내가 ‘영화’라는 대중예술을 각별히 애정하는 이유다. 근본주의와 세대주의 종말론에 길들여 자랐음에도 큰 저항 없이 신학 공부에 빠져들고 세상과 현실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던 바탕에는 영화가 있었다. 계속 진지하게 영화를 꾸준히 감상하고 글로 남기고 싶다. 

앞으로도 틈틈이 “러브 레터”를 찾아보며 눈부시게 새하얀 아름다움에 매료될 것이다. 동시에 소망한다. 하염없이 휘몰아치는 인생의 눈발에 휩쓸려 고열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나 역시 이와이 슌지처럼 포근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모처럼 감상에 적어 쓴 이 글을 마치며, 눈부신 일인이역 연기로 이 영화를 더욱 빛내준 주연, “나카야마 미호”를 추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