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 기념 재개봉 덕분에 영화 “러브레터”를 오랜만에 보았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엇갈림'이다.
히로코는 본래 보내려 한 (남자) 이츠키 집이 아닌 (여자) 이츠키 집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시게루는 히로코를 먼저 알고 좋아했지만, 미처 표현 못한 사이 후배 이츠키에게 그녀를 뺏긴다.
영어 시험지가 남, 여 이츠키가 바뀐 채 전해져 그날 에피소드를 만든다.
이러한 엇갈림은 시간을 거슬러 기억을 소환한다.
(여자) 이츠키의 어머니는 시아버지가 고집을 부려 시간을 지체한 까닭에 남편이 죽었다고 오해했다. 하지만 이츠키의 할아버지가 애써 달린 덕분에 그나마 병원에 더 일찍 도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이러한 정서를 통해 중심 서사가 더 또렷이 드러난다. (여자) 이츠키는 ‘아우슈비츠의 아담과 하와’로 지냈던 중학생 시절, 괴팍하게만 기억했던 (남자) 이츠키가 실은 자신을 무척 좋아했음을 제법 시간이 흐른 뒤에 절절히 깨닫는다.
이 영화의 명장면 명대사, 히로코의 “오 겡끼 데스카? 와타시와 겡키데스”(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요.)는 그 모든 엇갈림과 기억, 혹은 ‘엇갈린 기억’을 향한 절규이자 극복이다.
잔향에 취해 극장을 나오며 이 영화를 개봉관에서 보았던, 25년 전이 떠올랐다. 그 시절 내게 영화는 힘겨운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하는 안온한 도피처였다.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진지하게 몰입했던 대상이었다. 그 시작에 “러브레터”가 있었다.
참 오랜만에 다시 감상하며 다른 결의 감동을 느낀다. 비로소 내가 이 영화를 사랑하는 까닭을 알았다. 그토록 수없이 반복하며 보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미처 알지 못했던 방식으로 오랜 시간 나는 이 영화에게서 큰 위로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에서 O.S.T 들으며 나직이 읊조렸다.
“오 겡끼 데스카? 와타시와 겡키데스”
그건 다름 아닌 중학생 이츠키 또래였던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자 대답이었다. 어느샌가 나는 ‘잘 지내’라고 덤덤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그 모든 엇갈림에서, 뒤틀린 기억에서 조금 더 의연해진 나를 발견했다.
내가 ‘영화’라는 대중예술을 각별히 애정하는 이유다. 근본주의와 세대주의 종말론에 길들여 자랐음에도 큰 저항 없이 신학 공부에 빠져들고 세상과 현실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던 바탕에는 영화가 있었다. 계속 진지하게 영화를 꾸준히 감상하고 글로 남기고 싶다.
앞으로도 틈틈이 “러브 레터”를 찾아보며 눈부시게 새하얀 아름다움에 매료될 것이다. 동시에 소망한다. 하염없이 휘몰아치는 인생의 눈발에 휩쓸려 고열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나 역시 이와이 슌지처럼 포근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모처럼 감상에 적어 쓴 이 글을 마치며, 눈부신 일인이역 연기로 이 영화를 더욱 빛내준 주연, “나카야마 미호”를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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