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6일 목요일

할머니 장례를 마치고.

할머니가 오셨다.
한창 예민했던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지금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가뜩이나 위태롭던 일상이 그날, 산산이 부서졌다.
이후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반신불수의 어르신을 집에서 모셨다.
부모님께서 참 많이 고생하셨다.
또한 우리 남매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희생 역시 무척 혹독했다.
따라서 나에게 할머니의 상징성은 여느 사람들과 사뭇 다르다.
나의 내면 깊이 드리워진 그림자를 가리키는 존재다.
오늘(15일), 할머니를 납골당에 모시고 하관 예식을 집례했다.
목사가 된 후 부모님과 누나 앞에서 처음 하는 설교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내 인생의 가장 길고 어두웠던 한 막(幕)이 끝났다.
그렇게 할머니를 떠나보냈다.




2021년 11월 20일 토요일

챌린저 호 발사 전 날, 운명의 회의

나사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발사를 하루 앞둔 1986년 1월 27일. 플로리다에는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닥쳤다.

저녁 8시 45분, NASA와 고체 연료 제작 계약을 맺은 협력업체인 ‘티오콜’ 회의실에 기술자들이 모여 NASA와 원격회의를 진행했다. 티오콜 기술자들은 O링의 상태를 걱정하며 역대 가장 추운 날씨 때문에 최악의 사고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비록 위험이 어느 정도일지, 오류 발생 지점은 모르는 상태였지만, 성공이 아닌 실패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따라서 티오콜에서는 대부분 중지를 원했다. 나사에 상황을 설명하면 날씨가 풀릴 때까지 발사를 미룰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나사의 책임자 래리 멀로이는 날씨로 인한 추가적인 위험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티오콜 기술자들이 제시한 데이터가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제안을 거부하며 공식 입장을 요구했다. 티오콜의 기술 총책임자가 발사하면 안 된다고 거듭 말했다. 그러자 래리 멀로이는 나사의 기술 부책임자의 의견을 물었다. 그가 이렇게 답했다.
"모턴 티오콜에서 그런 제안을 할 수 있다니 당황스럽네요.
하지만 계약 업체의 의견에 반대하진 않겠습니다."
그때 티오콜의 기술 총책임자가 12도 이하에서는 발사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은 들은 래리 멀로이가 화를 내며 이렇게 되물었다.
"그러면 4월까지 미루라는 얘기요?"
그 고압적인 말투가 티오콜에게는 협박처럼 들렸다. 회의실 분위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 갑자기 발사 실패를 입증하라는 요구를 받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티오콜의 간부가 내부 논의를 위해 오프라인 회의를 요청해 진행했다. 5분으로 예고한 시간이 30분 넘게 늘어났다. 티오콜은 데이터를 살피면서 발사 취소 결정이 타당한지 다시 확인했다.
O링 부식 전문가인 수석 기술자가 테이블 상석으로 다가가 열띤 소리로 말했다.
"이런 날씨에 발사하면 안 됩니다!"
그 회의실에 있던 모든 기술자가 처음 내렸던 결론에 다시 동의했다. 그러자 티오콜 지사장이 투표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대신 간부들만 참여하게 했다. 지사장이 기술 총책의 의견을 물었다.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계속 우물쭈물하자 지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기술자 입장이 아니라 운영자 입장에서 생각해"
"take off your engineering hat and put on your management hat"
그 말을 듣고 티오콜 기술 총책은 나사의 멀로이와 똑같이 결론 내렸다. 날씨와 별로 상관없으니까 발사하라고 나사에 얘기하자고 말했다. 티오콜 간부는 나사와 다시 전화 연결해서 이렇게 보고했다.
"온도가 낮아서 걱정되긴 하지만 데이터를 재검토해 보니 날씨와 상관관계는 불확실합니다."
나사의 책임자 래리 멀로이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나사는 계획대로 우주선을 발사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나사의 부책임자가 말했다.
"우리는 그 제안을 서면으로 작성해서 티오콜 관계자의 서명을 받아야 합니다."
나사도 꺼림직해서 책임을 회피하려 한 것이다. 결국 티오콜의 프로그램 총책임자가 서류에 서명하여 나사에 팩스를 보냈다. 밤 11시 45분이었다. 3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돌이킬수 없는 비극을 선택하고 말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챌린저: 마지막 비행”의 여운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다. 3회에 묘사된, 발사를 결정한 회의 장면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너무나 상징적이다. 나사와 협력업체 사이의 수직적인 관계, 과정은 무시한 채 끊임없이 성과를 내보이려는 무모함, 현장의 의견을 묵살하고 경영 논리로 덮어버리는 고압적인 태도가 얼마나 끔찍한 판단을 하게 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결과, 7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남겨진 이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자책감을 남겼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을 진 래리 멀로이가 여전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척 소름 끼친다. 그는 이 사건이 거대한 진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자기 합리화한다.
많은 것을 돌이켜보게 된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다큐멘터리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순간마다 그 장면을 떠올릴 것 같다.
괴물은 멀리 있지 않다. 내가 될 수도 있다.

2021년 11월 15일 월요일

[다큐멘터리 리뷰(추천)] "챌린저: 마지막 비행"

[다큐멘터리 리뷰(추천)] "챌린저: 마지막 비행"(challenger: the final flight, 2020, 넷플릭스)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된 지 73초 만에 폭발했다. 과학 교사 샤론 매콜리프를 포함한 승무원 7명이 모두 사망한 끔찍한 사건이다.

오랫동안 그 원인을 막연히 고무 오링(O-Ring) 부품 불량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훨씬 깊은, 충격적인 진실을 이 다큐멘터리는 알려주었다.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권위적인 조직 문화와 무리한 성과주의다. 이미 사고가 일어나기 몇 년 전부터 현장 기술자들은 위험을 발견하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게다가 발사 당일 이례적인 한파가 몰아닥쳤다. 이미 우려했던 위험성이 극대화된 상황이었다. 실행 여부를 두고 아침에 열린 회의에서 실무자들은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펼쳤다.

그러나 묵살당했다. 미국 정부를 등에 업은 NASA 간부의 권위, 막대한 예산, 영향력을 휘두르기 위해 계획한 무리한 일정이 결국 이겼다. 끝내 판단력을 상실했고, 너무나 무모한 도박을 했다. 그 결과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우주 개발"과 같은 이상은 너무나 소중하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당연히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고 열정을 불태워야 한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가장 앞에서 땀을 흘리는 사람들을 살펴야 한다.

그들이 몸부림치며 알려주는 위험 신호에 귀 기울여야 한다. 때로 단호히 멈춰서고 뒤돌아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하늘 위를 향해 눈길을 팔다가 결국 땅 위의 현실에 벌어지는 비극을 방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슴 먹먹하도록 깊은 고민과 성찰을 안겨주는 다큐멘터리 명작이다.

2021년 11월 7일 일요일

룻 4:1~12; 딤전 6:17~19 "이름이 지워질 때와 남겨질 때"

포항제일교회 주일 1부예배, 2021년 11월 7일, 목사 정대진
룻 4:1~12; 딤전 6:17~19 "이름이 지워질 때와 남겨질 때"

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디모데전후서는 사도 바울이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를 향해 사랑을 담아 쓴 편지입니다. 특별히 그가 목회자로서 명심해야 할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본문 17~19절은 부유한 교인들을 향한 교훈입니다. 그것은 바로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참된 생명을 취하기 위해 기꺼이 나누라는 권면입니다. 

2021년 11월 1일 월요일

이름을 불러 줄 때까지 - 이정록

이름을 불러 줄 때까지

- 이정록

이름 명(名)이라는 한자는
저녁 밑에 입이 있다.
해가 지고 깜깜해지면
손짓할 수 없기에 이름을 부른다.
어서 가서 저녁밥 먹자고
밥상머리로 데려간다.
작은 불빛을 가운데에 두고
환한 웃음이 피어난다.
이름 명 자를 보고 있으면
그 글자가 만들어진 먼 옛날 밤이
두런두런, 우렁우렁, 까르르 밀려온다.
어서 들어와 저녁 먹으란 말이 좋다.
어둠 속을 헤쳐 와서 어깨동무 하는 목소리,
오늘은 저녁 식판을 들고 속으로 말한다.
엄마도 그만 돌아오셔서 저녁 드세요.
아버지도 엄마랑 밥 좀 같이 드세요.
야간 자습 끝나려면 두 시간 남았는데
야식 배달 시켜 놓으라고 전화한다.
나는 아파트 입구 놀이터에서
핸드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수다를 떤다.
누군가 나를 마중 나올 때까지.
이담에도 누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까지
어둠 속을 서성거릴 거다.
나도 가로등 쪽으로 목을 내밀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