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5일 목요일

시편 1편 “시냇가로 부르는 목소리”

부활절 다섯 번째 주일, 2017년 5월 14일, 교육위원회 주관예배 설교, 정대진 목사
시편 1편 “시냇가로 부르는 목소리”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사람들을 섣불리 둘로 명확히 가르는 것은 분명히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참과 거짓, 바름과 그릇됨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층과 결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무모하게 어느 무언가를 함부로 “틀리다”라고 단정할 때 우리는 충분히 받아들이고 또 배워야할 많은 “다른 것”들을 놓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록 조심스럽게나마 엄연히 다른 두 가지 삶의 방식과 세계가 있다는 진리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귀 기울여야할 여러 다른 것들이 있지만 동시에 결코 받아들이고 따라가서는 안 될 “틀린 것” 역시도 또한 존재합니다.

특별히 성경 곳곳에서 사람들을 둘로 구분하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곤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아름다운 찬양의 모음인 시편의 첫 번째 노래인 1편 말씀은 “복 있는 사람들”과 이에 대조되는 “악인”들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바람에 나는 겨”라는 마치 한편의 풍경화와도 같은 상징 언어를 통해 명확히 나누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인이 사람들을 두 개의 무리로 나누는 까닭은 어떤 이들을 쉽사리 “악인”으로 단정 짓고자 함이 아닙니다. 또한 스스로를 “복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더욱 교만하게 하고자 함도 전혀 아닙니다. 때때로 너무나 쉽게 복 있는 사람과 악인 사이를 오가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복 있는 길로 나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편 말씀이 지어졌을 당시는 물론, 오늘 이 아름다운 시를 읽은 우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겨가 아닌,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날마다 푸르르게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릴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요?

시인은 그것에 대해 먼저 “부정의 정의”(不定의 定義), 즉 복 있는 사람은 무엇이 아닌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 있는 사람”은 우선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또한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오만하게 누군가를 비웃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시적인 반복을 통해 시인이 결국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바로, “복 있는 사람”은 악을 단호히 거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참된 복이 여러분 가운데 늘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더욱 정확히는 주님께서 펼쳐 보이신 진정한 복의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꼭 명심해야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양손에 하나님의 뜻과 악을 동시에 쥘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 오늘의 삶 속에 생생히 꿈틀거리는 악의 실체를 명확히 깨닫고 그것으로부터 결연히 멀어지는 모두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더욱 나아가 복 있는 사람은 단지 무엇이 아니라는 사실을 넘어 구체적으로 그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온전히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 대답이 바로 2절에 있습니다. 다함께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어리석은 악한 사람들과 대조되는 복 있는 사람들의 선명한 특징은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면서 그 말씀을 날마다 곱씹는 것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성경을 많이 읽는 다거나 성경에 대한 지식들을 기계적으로 잘 외운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그 어떤 강박이나 외부적인 강요가 아닌 스스로 원하는 마음으로 성경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을 시인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화려하나 실상 우리를 무너뜨리는 거짓의 유혹을 단호하게 이겨내고 더불어 살아가며 온전한 생명으로 넘실거리는 세상을 비로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본문에 직접 보이지 않는 하나의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을 들려주는 목소리”입니다.

시편 1편이 기록된 그 먼 옛날 중동 지방에서는 오늘 우리와 달리 성경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매우 값비싼 물건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설령 많은 돈을 가지고 성경을 산다 한들 글을 읽는 다는 것은 아주 적은 소수의 사람들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즉, 이 당시의 보통 사람들은 오늘 우리처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성경을 사서 그것을 읽고 곱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밤낮 마음 깊이 되새길 수 있었을 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했던 가장 중요한 일을 제사뿐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읽어주는 성경 말씀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그것을 열심히 외우는 일 이었습니다.

특별히 성전이 전쟁으로 무너지고 난 이후에는 마을 이곳저곳에 회당이 새워졌는데 그 회당을 관리하는 회당장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도 역시 성경을 읽어주는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말하는 “복 있는 길”은 당시의 일반적인 상황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스스로 원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분명 말씀을 들려주는 고마운 이의 도움이 없으면 결코 가기 어려운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는 교육위원회 주관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시간 특별히 희생과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며 복 있는 길로 이끄시는 고마운 분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소중한 말씀을 전해주신 다음세대교회의 여러 선생님들께 더욱 감사를 드리시길 바랍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그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달리 자기만의 성경책을 갖고 있거나 또 성경을 쉽게 빌릴 수 있고 그 성경을 스스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성경을 읽어줄 다른 사람의 도움이 굳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성경을 읽고 마음에 되새기는데 있어 그 시대 사람들은 갖지 못한 다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우리와 매우 다른 문화 속에서 전혀 다른 언어로 기록된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도 말씀을 들려주시는 이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줄줄 읽어주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차근히 풀어서 설명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말씀대로 살아내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꺼이 몸소 보여주는 이들의 존재가 너무나 귀하고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결코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바로 그와 같이 우리에게 말씀을 들려준 고마운 선생님들, 우리에게 참된 복을 안겨 주시려 시냇가로 불러주신 따뜻한 음성의 스승님들이 계셨기에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까지 신앙을 굳건히 지켜 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껏 받은 은혜를 잊지 말고 참되고 온전히 이어가며 이웃과 나눌 수 있기를 온 마음 다해 다짐해야 합니다.


그 역할을 우리 교회에서 가장 앞장서서 감당하시는 분들이 바로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다음세대교회 선생님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생님들의 소중한 도움으로 말미암아 성도님들의 자녀가 허공 속에 아무 의미 없이 떠돌아다니는 겨와 같은 우둔한 사람들의 길이 아닌 물가에 깊은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복 있는 사람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얽혀 살아가는 세상에서, 그렇기에 무엇이 참된 길인지 알기 어려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딸들을 복으로 인도하시려 즐겨 사용하시는 방법은 그 곁에 소중한 스승을 세워두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세대교회 선생님들에게 감사하고 격려하며 축복하기를 결코 주저해서 안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시냇가로 부르는 사람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 자리를 빌려 조심스럽게 부탁드립니다. 올해 말에 교사 지원 많이 해주시길 꼭 바랍니다. 그리고 “교사”라는 구체적인 역할을 맡기가 부담스러우시다면, 맡겨진 자리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에 더욱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앞서 말씀 드린바와 같이 단순히 성경 구절을 읽어주거나 직접적으로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도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자체도 주님께서 너무나 기뻐하실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따라, 이웃을 위해 좀 더 손해보고 나누며 낮아지기를 주저하지 않는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그렇게 할 때 그 모습을 통해 몇 마디 말보다 더욱 생생하게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말씀이 전해진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당장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 할지라도, 복 있는 사람들의 길을 걷는 것은 물론이고 복 있는 시냇가로 사람들을 안내 하는 더욱 보람된 진리와 생명의 축복을 풍성히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오늘, 이처럼 우리에게 말씀을 들려주심으로 참된 복을 누리게 하시는 여러 선생님들의 은혜를 더욱 마음 깊이 새기며, 또한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날마다 그 은혜를 전하는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설교 후 기도
참된 스승이신 하나님
우리를 바람에 흩날리는 겨처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여러 선생님들을 통해 말씀을 들려주시며 그 말씀 가운데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진정한 복을 누리는 사람들로 세워주신 은혜에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특별히 우리교회의 다음세대를 위해 수고하시는 선생님들에게 아낌없는 복으로 함께하시고 가르치고 섬기는 일에 지치지 않게 하시며 항상 보람과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들의 헌신을 본받아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일상가운데 실천하며 그 뜻을 전하는 일에 부족함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정한 말씀의 종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봉헌기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여러 모양으로 우리에게 그 뜻을 전하시어 악인의 길에서 벗어나 복의 길을 걷게 하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한 주간 삶으로 구별한 예물을 드립니다. 기쁨으로 받으시어 이 땅에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해지는 일에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예담 청년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저마다 마음 깊이 자리 잡은 갈급함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주님의 신실한 손길을 따라 앞으로의 나날을 더욱 믿음으로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몸과 마음에 말 못할 아픔과 고통이 있는 이들을 치유하여 주시고 맡겨진 여러 책임들을 온전히 감당할 힘과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군 입대 중인 청년들을 안전히 지켜 보호하여 주시고 여러 사정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체들의 외로움을 달래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사귐이 

시냇가로 부르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말씀을 전하길 다짐하는
예담 청년들과 항상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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