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9일 목요일

베드로전서 5장 7~11절, “주께 맡기라”

2024년 8월 29일, 승리교회 새벽기도회, 목사 정대진
베드로전서 5장 7~11절, “주께 맡기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고난은 교회의 정체성은 시작부터 핍박을 겪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환난 당하는 교인들에게 편지로 격려하였습니다. 바로 “베드로 전후서”입니다. 베드로는 힘겹게 신앙을 지켜가는 교회를 향해 무엇을 권면했을까요? 9절 말씀 제가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베드로는 교회를 위협 하는 악을 무시하거나 도망하거나 혹은 굴복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적하라.”라고 가르칩니다. 그 방법이 중요합니다. 바로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빼앗으려는 악한 세력을 이기는 올바른 길은 직접 일대일로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가진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 내용은 우리에게 그리 잘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마다 어느 정도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강제로 신앙을 뺏기거나 믿음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울부짖는 사자와 같은 악한 권세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교회를 삼키려 합니다. 좀 더 낮아지고 섬기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아니라, 세상의 잘못된 욕망을 따르도록 끊임없이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좀 더 풍요롭고 여유롭게 사시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가능하면 자녀, 손주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을 다니길 소망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에게 우러름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랍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 자체를 애써 부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지나치게 많이 움켜쥐고 좀 더 높이 올라가는 것만을 행복의 기준과 인생 목표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세속적인 유치한 잣대로 함부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억누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태도는 돈과 명예라는 이 시대의 우상에 굴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 살아내신 하나님 나라는 기꺼이 자기를 비워내고 낮아지는 삶의 방식입니다. 탐욕으로 가득한 세상 질서와는 전혀 반대되는 어렵고 위험한 길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신앙생활 역시 모양과 환경은 다르지만 그 옛날, 끔찍한 시련과 마주했던 믿음의 선배들과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 

모두가 한 쪽 눈만을 가진 나라에서는 두 눈 가진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거슬리고 거북해 보이기 마련입니다. 세상의 질서처럼 탐욕을 따르지 않고 미련하게 낮추고 비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통해 바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그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겪으시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죽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온갖 시련을 겪는 자녀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베드로는 절망에 맞서 굳센 믿음으로 싸우는 고난 받는 성도들을 향해, 그들이 끝까지 지켜야 할 소중한 희망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10, 11절 말씀 다함께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베드로는 먼저, 그들을 향해 “잠깐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위로합니다. 성도의 고난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잠깐’입니다. 여기서 잔인한 의문을 떠오릅니다. 과연 그 “잠깐”이 언제까지일까요? 차마 남들에게 말 못할 여러 아픔에 신음하며 주님께 묻게 됩니다. “하나님, 잠깐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대체 언제까지입니까?”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 대부분은 건강이나 경제적 어려움 혹은 가정 문제 등으로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한 내용들이 하나쯤은 있으실 겁니다. 더러 금세 응답받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1, 2년은 물론이고 10년, 20년, 심지어 평생 동안 간절히 구해도 끝나지 않은 아픔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부디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시간 안에서 인간의 그 어떤 영원함도 결국 유한합니다.  제 아무리 영겁과 같은 시간의 무게도 주님의 위대한 다스림 가운데 반드시 힘을 잃습니다. 그 어떤 고통스런 시간도 참된 은혜로 변화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본문에서 말하는 ‘잠깐’의 의미입니다.

그런 까닭에 사도는 베드로후서 3장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본문 말씀을 통해 고난 당한 성도들이 귀 기울여야 할 또 다른 소망이 있습니다. 고통 받는 자녀들을 “모든 은혜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에 휩싸인 성도를 직접, 온전하고 굳건하게, 강하고 흔들리지 않게 하십니다. 

앞서, 9절 말씀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은 마귀를 이기는 길은 직접 맞서 싸우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단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일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 받는 자녀의 믿음을 직접 굳세게 하십니다. 베드로는 본문 11절에서 그 놀라운 은혜에 감격하며, 세상을 이기는 진정한 힘과 능력이 주님께 영원히 있음을 찬양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랜 시간 그 끔찍한 핍박 속에서도 교회가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는 이유입니다. 만약 고난을 이겨내는 믿음이 전적으로 인간에게만 달려 있다면 이 세상에 과연 누가 신앙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믿음을 굳세게 하시는 분이 영원한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주님께서 항상 함께하시고 붙잡아 주시기에, 죄악으로 물든 이 세상의 거짓과 불의와 폭력에 기꺼이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언제나 영혼 깊이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소망하며 이 땅을 살아갈 때, 분명 허무함과 좌절과 아픔을 겪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결코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 모든 시련을 헤쳐갈 믿음 역시 주님께서 직접 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절망 가운데 지치고 괴로울 때 우리를 품으시는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보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본문 7절에 담긴 베드로의 외침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다함께 읽겠습니다.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사도행전과 1세기 역사 기록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듯이 환난과 핍박에도 성도들은 담대하게 믿음을 지켰습니다. 끔찍한 고난 속에서도 주님만 바라보며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신앙을 어떻게 지킬 수 있었을까요? 교회가 거대한 시련 속에서도 권능의 하나님께서 분명히 자신들과 항상 함께 계시고 돌보심을 믿고, 그 주님께 모든 염려를 맡겼기 때문입니다.

관련하여 한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영성 작가인 ‘헨리 나우웬’은 어느 책에서 매우 인상적인 대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사진 PPT> 여러분 모두 지금 화면에 보시는 것처럼, 서커스단이 펼치는 아름답고도 놀라운 “공중그네 묘기”를 텔레비전에서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어느 날 헨리 나우웬이 세계적인 공중그네단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연한 기회로 그 팀 리더와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로트라이히’ 라는 이름의 리더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공중 비행을 할 때 저를 붙잡아 주는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사람들은 저를 위대한 스타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진짜 스타는 저를 잡아주는 죠입니다. 

그는 1초의 몇 분의 몇까지 맞출 만큼 정확하게 제가 갈 자리에 와 있어야 하고, 제가 그네에서 길게 점프할 때 공중에서 저를 잡아채야만 하니까요.”

그러자 헨리 나우웬은 ‘어떻게 그게 가능한 지’ 물었습니다. 로트라이히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공중을 나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붙잡아 주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합니다. 이것이 공중그네의 비밀입니다. 

죠에게 날아갈 때 저는 그저 팔하고 손만 뻗으면 됩니다. 그 다음엔 그가 저를 잡아 무대 앞으로 안전하게 끌어가 주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이 말을 들은 나우웬은 무척 놀라워하였습니다. 정말 그가 공중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지 되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최악의 실수는 공중을 나는 사람이 붙잡아주는 사람을 잡으려 드는 것입니다. 저는 절대 죠를 잡으려 들면 안 됩니다. 저를 붙잡는 것은 죠의 임무입니다. 

만약 제가 죠의 손목을 잡는다면 그의 손목이 부러지거나 제 손목이 부러지고 말겁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끝장입니다. 

공중 비행을 하는 사람은 날기만 하고, 붙잡아 주는 사람은 붙잡기만 해야 합니다. 공중 비행을 하는 사람은 붙잡아줄 사람이 자기를 위해 제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반드시 믿고 자신의 팔을 뻗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하나의 거대한 서커스 공연장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믿고 소망하는 교회는 그 어떤 비난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공중 그네를 타는 부활 공동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채 비웃거나 심지어 미워하기도 합니다. 솔직히 우리 자신도 다른 이들의 화려한 성공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곤 합니다. 때때로 초라한 자기 모습에 실망하거나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공중 그네의 가장 중요한 비밀을 마음 깊이 곱씹어 보시길 바랍니다. 열심히 연습한 데로 최선을 다해 힘껏 하늘로 날아오른 뒤에는, 자신을 붙잡는 사람을 향해 그저 손과 팔을 뻗어야만 합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게으르게 지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인생 여정 가운데 인간의 능력과 경험과 배경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우리를 붙잡으시는 하나님을 향해 잠잠히 전 존재와 온 인격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만약 그러지 않고 내 방법과 욕심으로 하나님을 억지로 움켜쥐려 드는 것은 최악의 실수라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합니다. 그 대신, 불안과 염려 가운데 떨고 있는 우리를 붙잡아주시려 하나님께서 항상 제 자리를 지키고 계심을 굳게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손을 뻗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정없이 곤두박질하는 듯 한 아찔한 인생의 추락 속에서, 자녀의 고난 가운데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성도의 믿음을 굳세게 하시는 하나님, 영원한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삶의 모든 순간을 그분의 드넓은 팔에 내어 맡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넘어지는 자녀를 붙잡으시려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키시는 놀라운 구원의 하나님. 
주님을 믿고 따르는 길은 곧 우는 사자처럼 저희를 노려보는 여러 모양의 악한 세력과 마주하는 일임을 찢긴 마음을 안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모든 시험과 고난 속에서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믿음을 굳세게 하시는 주님의 권능으로 승리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삶의 자리를 은혜와 평안으로 지켜 보호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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