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5일 토요일

역대상 15장 1~29절 "말씀으로의 회복"

2019년 5월 13일, 월,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목사 정대진
역대상 15장 1~29절 "말씀으로의 회복"

1 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전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

2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3 다윗이 이스라엘 온 무리를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여호와의 궤를 그 마련한 곳으로 메어 올리고자 하여
4 다윗이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을 모으니
5 그핫 자손 중에 지도자 우리엘과 그의 형제가 백이십 명이요
6 므라리 자손 중에 지도자 아사야와 그의 형제가 이백이십 명이요
7 게르솜 자손 중에 지도자 요엘과 그의 형제가 백삼십 명이요
8 엘리사반 자손 중에 지도자 스마야와 그의 형제가 이백 명이요
9  헤브론 자손 중에 지도자 엘리엘과 그의 형제가 팔십 명이요
10 웃시엘 자손 중에 지도자 암미나답과 그의 형제가 백십이 명이라
11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르고 또 레위 사람 우리엘과 아사야와 요엘과 스마야와 엘리엘과 암미나답을 불러
12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14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하게 하고
15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16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17 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의 형제 중 베레갸의 아들 아삽과 그의 형제 므라리 자손 중에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
18 그 다음으로 그들의 형제 스가랴와 벤과 야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문지기 오벧에돔과 여이엘을 세우니
19 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20 스가랴와 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마아세야와 브나야는 비파를 타서 알라못에 맞추는 자요
21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과 아사시야는 수금을 타서 여덟째 음에 맞추어 인도하는 자요
22 레위 사람의 지도자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인도하는 자요
23 베레갸와 엘가나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요
24 제사장 스바냐와 요사밧과 느다넬과 아미새와 스가랴와 브나야와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궤 앞에서 나팔을 부는 자요 오벧에돔과 여히야는 궤 앞에서 문을 지키는 자이더라
25 이에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이 가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즐거이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올라왔는데
26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로 제사를 드렸더라
27 다윗과 및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의 우두머리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28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29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오늘 본문을 묵상하기 위해서는 ‘언약궤’에 대해 이해하고 이것을 둘러싼 과거의 실패들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무소부재를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디에나 계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고대 유대인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물론 그들도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계시는 곳은 특정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언약궤 위입니다.

법궤라고도 불리는 이 거룩한 상자 안에는 십계명 두 돌판과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덮개에는 두 천사가 장식되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거기에 앉아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언약궤를 구성하는 이 모든 요소에는 모두 굉장한 상징을 담겨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간단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생명과 진리의 말씀 위에 계시다”입니다. 따라서 이 법궤는 성전과 성막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를 명확하게 의미하는 법궤가 인간의 그릇된 욕망에 의해 이용당하며 벌어졌습니다. 사사시대 블레셋과의 전쟁이 불리해 지자 대제사장 엘리의 묵인 하에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갔습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잠잠히 구하며 그 앞에 엎드리기 보다는, 주님의 권능을 자기들 멋대로 이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두 사람은 대제사장의 아들로서 곧 제사장입니다. 언약궤를 지키고 관리하는 막대한 책임과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귀한 직분을 가지고 권위를 함부로 남용하여 이스라엘 공동체를 크나큰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결국 전쟁도 지고 법궤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그날 대제사장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 모두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후 법궤가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대신 두려움 때문에 예루살렘까지 가져오지는 못했고 기럇여아림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을 임시 성소로 삼아 거기에 법궤를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을 신앙으로 하나 되게 하기 위해 아비나답 집에 모셔져 있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져올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수레에 법궤를 태우고 지나가는 길에 앞에서 끄는 소가 기돈의 타작마당을 지날 때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수레를 몰던 웃사가 궤를 붙잡자 그가 하나님의 진노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무엘하 6장과 역대상 13장 모두에 기록된 이 사건은 어릴 적 성경을 읽던 저에게 큰 의문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거룩한 언약궤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그 위에 손을 얹은 것은 오히려 칭찬 받아 마땅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대신 주님의 불타는 노여움으로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이 사건의 의미를 한 참 지나 신학을 공부하며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언약궤는 본래 레위인들의 어깨에 메어 옮겨야 하는데 그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수레에 태운 것에 하나님께서는 벌하셨습니다. 웃사와 아히요가 율법을 어겼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역대상 13장 5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고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수 십 년 간 자기들 집에서 법궤를 모셨다는 막대한한 권위 앞에 임금조차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거룩한 사명을 신실하고 진실하게 수행하기 보다는 오래전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말씀을 훼손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결코 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으시고 단호히 심판하셨습니다.


이렇듯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의 배경에는 언약궤로 대표되는 진리를 제멋대로 이용하려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과 그로 말미암은 실패와 좌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마음 깊이 새기며 사랑하는 삼덕 신앙 공동체에 반드시 적용해야 합니다. 

교회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지만 동시에 죄인들이 모였다는 역설을 품고 있습니다. 완벽한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든 갈등과 아픔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문제가 없길 바라기 보다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철저히 말씀과 진리를 통해 해결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본문 속 다윗이 그러하였습니다.

다윗으로서는 앞서 언약궤 운반을 실패한 것에 무척 당황했고 또 백성들 앞에 몹시 창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본문 2절과 13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2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13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다윗은 지난번에 일어난 비극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거듭 지적합니다. 바로 그릇된 권위에 속아 언약궤를 레위인들의 어깨에 메지 않고 수레에 실은 것입니다. 달리 잘하자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리를 말씀과는 전혀 무관하게 자기들 마음대로 유린하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그 대신 그가 행한 결단을 15절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15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다윗은 인간의 교묘한 욕망이 아니라 모세 율법, 즉 말씀에 근거해 언약궤를 다루어서 마침내 이스라엘의 중심인 예루살렘으로 모실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한 마디로 진리가 회복된 사건입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 장면입니다. 이를 통해 상징적으로, 하나님은 비로소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결코 사람들의 손에 변질된 복음에 농락당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자기 본연의 자리를 찾으신다는 것을 당신의 신실한 종 다윗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며 교회를 이루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스스로를 향해 엄중히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말씀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복음을 복음으로 지키고 있습니까?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성경 전체가 증언하는 진리의 핵심은 단연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보다 더 높이 오르려는 욕망을 떨쳐내고 더욱 섬기고 낮아질 때 비로소 참 생명을 얻는 다는 이 위대한 하나님 나라 복음을 과연 삶의 방향과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계십니까? 

사실 이 물음 앞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 아무도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모두는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인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깨달아 아는 것과 죄를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지난 날, 진리를 왜곡해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려했던 홉니와 비느하스, 그리고 웃사와 아히요가 보여주었던 죄악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업신여기고 말씀을 우습게 여기며 진리를 왜곡하는 자에게 찾아올 운명은 반드시 파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서 언약궤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본래의 자리를 찾은 것처럼 진리 가운데 나 자신과 가정과 교회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잠잠히 십자가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활의 빛과 생명으로 스스로를 비추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진정한 기쁨과 소망을 발견하는 모두가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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