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5일 토요일

역대상 16장 1~22절 "수직과 수평의 찬양"

2019년 5월 14일, 화,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목사 정대진
역대상 16장 1~22절 "수직과 수평의 찬양"

1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에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니라

2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3 이스라엘 무리 중 남녀를 막론하고 각 사람에게 떡 한 덩이와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와 건포도로 만든 과자 하나씩을 나누어 주었더라
4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5 아삽은 우두머리요 그 다음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맛디디아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이라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6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7 그 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세워 먼저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8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9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
10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11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
12-13 그의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법도를 기억할지어다
14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법도가 온 땅에 있도다
15 너희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16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17 이는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18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19 그 때에 너희 사람 수가 적어서 보잘것없으며 그 땅에 객이 되어
20 이 민족에게서 저 민족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백성에게로 유랑하였도다
21 여호와께서는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그들 때문에 왕들을 꾸짖어
22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에게 손을 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


어제 함께 읽은 역대상 15장은 지난날의 죄악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는 다윗의 모습을 기록하였습니다. 이어지는 16장은 그 위대한 사건에 대한 감사 찬양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1~2절은 언약궤를 성막에 두고 본래의 목적에 맞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알려 줍니다. 이어지는 3절은 다윗은 온 백성에게 먹을거리를 나누어주며 축제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언약궤를 통해 수직적으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수평적으로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채우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비록 함축적인 기록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것의 의미는 단지 종교적인 숭배나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차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두를 아우르는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다음 다윗은 레위사람들로 하여금 찬양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질서한 감정 분출이 아닙니다. 5~6절을 보면 아삽을 지휘자로 삼아 정교한 앙상블을 구성하였음을 알려줍니다. 또한 이 때 불린 찬송의 가사가 8~36절에 기록되었는데 이것은 시편 96편, 105편, 16편과 매우 흡사합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을 배경으로 한 시편 137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시편 전체가 완성되어 하나의 책으로 묶인 것은 다윗 시대로부터 수 백 년이 지난 포로기 이후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역대상 16장에 기록된 찬양들은 여러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아마도 앞서 언급한 흡사한 내용의 시편들이 예전에 가졌던 형태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소 어려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찬양의 모범을 성경에서 찾기 위함입니다. 간혹 기독교방송에 나오는 찬양집회 실황에서 청년들이 신학적으로 잘못된 내용의 가사를 몽환적인 멜로디에 취해 부르는 것을 볼 때마다 무척 염려되곤 합니다. 물론 모든 찬양의 가사가 엄밀하게 정확한 복음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때론 원초적인 감정으로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도 얼마든지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듯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영광과 이 땅에서의 치열한 현실, 즉 신앙의 수직과 수평을 아우르고 질서 있게 연주되는 찬양을 부르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찬양의 내용을 보다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눈 여겨 봐야할 것은 본문 스스로가 밝히는 찬송의 목적입니다. 바로 7절의 기록과 같이 ‘주님께 드리는 감사’입니다. 따라서 8절에 담긴 찬송의 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8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이스라엘 온 백성은 자신들의 삶 한 복판으로 되 찾아온 언약궤 위에 임재하신 주님께 찬양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감사는 우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경배로 이어집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실천으로 연결됩니다. 여기서도 거듭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수직과 수평이 조화를 이루는 균형 있는 찬양입니다.

따라서 8절은 이어지는 나머지 모든 찬양의 주제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9~11절은 주님을 노래하고 찬양하고 자랑하며 그분의 능력과 얼굴을 구하고 찾으라는 내용입니다. 12~13절 부터는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우선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야곱의 자손’임을 언급합니다. 또한 16~17절에는 야곱뿐만 아니라 이삭과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거기다 19~22절은 이스라엘의 이집트 노예 생활과 출애굽 여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입니다. 15~17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15 너희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16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17 이는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이 세 절에 각 절 마다 반복되는 단어가 보이실 겁니다. 바로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해 남기신 소중한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언약을 명심하고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그 위대한 약속이 참으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찬양은 개개인의 공허한 노래가 아니라 온 세계와 우주 가운데 아름다운 공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렇듯 역대상과 시편에 담긴 다윗의 모범적인 찬양을 통해 우리는 언약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에게 건넨 사랑의 약속에 온 몸과 마음으로 반응하는 것만이 찬양을 참으로 찬양답게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약간의 불안이 생깁니다. 우리는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직접 뵙고 약속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언약의 증거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보이신 찬란한 사랑에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의 약속은 구약 성경에 등장한 그 어떤 인물과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속 찬양의 주제처럼, 우리가 영원히 감사하고 기억해야할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 각자와 개인과 교회가 항상 노래해야할 찬양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 지금과 영원을, 이곳과 저곳을 잇는 진정한 생명과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오직 십자가만이 공동체의 시련을 헤치고 나가 회복을 이루는 길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찬양을 드린다는 것은 단순히 음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항상 감사하며 어리석은 탐욕을 내려놓고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며 이웃을 사랑으로 섬길 때 그 일상의 언어야 말로 이 세상 가장 위대한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 공동체로 모인 가장 중요한 이유이자 교회의 존재 이유는 바로 이러한 찬양에 있습니다. 저마다의 향기로운 삶의 찬양이 한데 모여 이 세상 가장 위대한 화음과 리듬과 곡조를 들려줄 때 교회는 비로소 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온전히 섬길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고단한 세상살이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슴에 품고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부디 이와 같은 진정한 찬양이 언제나 흘러넘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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