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7일 화요일

설 상념

온통 겨울이었다. 지난 한 해 내게 다른 계절은 없었다. 화사한 봄꽃도 화려한 단풍도 모두 싸늘하게 얼어붙어 빛깔을 잃었다. 음울한 무채색으로 이어진 긴 시간을 보냈다. 거친 계절의 한가운데, 아늑한 녹색을 보았다. 담임 청빙 설교 하던 날이었다. 예배당 창밖으로 청초하게 무리 지어 자란 볏잎이 보였다. 해사한 풍경이 나를 감싸안고 위로해 주었다. 담임목사가 되어 정배리로 돌아왔다. 진짜 겨울이 시작되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오롯이 겨울을 보냈다. 산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맞고, 눈을 쓸고, 바짝 얼어붙은 강물을 보았다. 하지만 내 인생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다. 들판은 눈을 뒤집어쓴 채로 계속 나를 품어주었다. 교인들이 베푸신 결코 당연하지 않은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지금껏 걸어온 길의 의미를 발견하며 벅차도록 뭉클한 온기를 느꼈다. 어제, 교회 앞 하천에서 흰 새 한 마리가 우아하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 뒤편에, 눈을 털어내고 일어난 싱그런 풀들이 보였다. 봄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확인했다. 설이다. 지난 한 해, 겨울 아닌 겨울을 지나며 겨울을 맞이했다. 참으로 겨울다운 겨울 보내며 마침내 깨달았다. 겨울을 이겨냈다. 기어이 봄이 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