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4일 수요일

출애굽기 5장 “파라오의 질서를 넘어”

2026년 2월 5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출애굽기 5장 “파라오의 질서를 넘어” 찬송가 321, 322장

마침내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 앞으로 나아갑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광야에서 예배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파라오는 당연히 거절 하였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합니다.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왕이면서 동시에 신 입니다. 그의 앞에 노예로 부리는 백성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뜬금없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신, 야훼를 거론하며 예배하도록 풀어달라는 말이 황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시 이집트의 주요 국가 건축 사업의 노동력입니다. 그들이 일을 멈춘다면 국가 경제는 한순간에 멈춥니다. 파라오는 이런 상황 속에서 엄중한 대응으로 권위와 기강을 세우려 하였습니다. 노동 감독관들과 현장 책임자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편의를 배제하면서도 이전과 동일한 숫자로 벽돌을 만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집트 관리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라오의 지시를 전달합니다. 노동 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세졌습니다. 짚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구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전과 같은 양의 생산 목표치를 달성해야 합니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현장 책임을 맡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파라오에게 간청합니다. 왜 이렇게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셔서 이스라엘 노예들이 가혹한 환경에서 일을 하게 하는 지 이유를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에게 들은 불쾌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야훼께 예배 하도록 풀어달라는 요구를 들려줍니다. 그러면서 이집트 관리들에게 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평가를 반복합니다. 바로 ‘게으름’입니다. 파라오는 그들이 나태해져서 그런 얼토당토 않는 무례한 요구를 감히 자신에게 했다며 언짢은 기분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물러서지 않고 앞서 내린 노동 조건과 강도를 그대로 이행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노동 책임자들은 너무나 무거운 마음으로 왕궁에서 물러 나왔습니다. 마침 그들 앞에 모세와 아론이 서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일꾼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둘을 향해 거침없이 쏘아 붙이며 말합니다. 21절 함께 읽겠습니다.

21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스라엘 책임자들이 격분하며 말합니다. 모세와 아론 때문에 파라오를 비롯한 이집트 권력자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가혹한 상황에 이르러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사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그들의 처지여도 당연히 두 사람이 원망스러울 겁니다. 멀리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이 당장 처한 현실의 어려움에 괴로워할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을 추가합니다. 모세와 아론의 행동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야훼께서 살피고 판단하시기 원한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신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두 사람의 행동을 두고 벌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게 아닙니다. 조상들로부터 전해 받은 야훼를 여전히 경배합니다. 그런데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파라오의 뜻을 따릅니다. 이집트의 질서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하였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장면입니다. 동시에 우리를 엄숙하게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알게모르게 이 시대의 파라오를 경배하며 이집트의 논리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불쾌하게 하는 사건에,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상황에 잠잠히 호흡을 다듬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러했듯이, 우리의 감정과 이익에 철저히 벗어나는 순간이 오히려 우리를 참으로 살리는 구원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파라오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을 더욱 신뢰하고 동참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
권능의 주 하나님
삶의 시련 속에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만 정작 파라오의 뜻에 충실했던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발견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욕망을 신앙으로 포장했던 잘못을 뉘우칩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다스림을 마음에 품고 이루고 전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안용성, <<로마서와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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