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일 토요일

"룩백"(ルックバック, 2024) 후기







*스포 있음

설교자들은 안다. "(설교 듣고) 은혜 받았다."라는 말에 속으면 안 된다. 그건 "수고 하셨습니다."와 같은 인사말에 불과하다. 나는 일찍이, 그리고 처절히 그 사실을 사무치게 깨달았다.

20대 초반, 지나치게 이른 나이에 '전도사'가 되었다. 무대 공포가 심한 눌변인 내게 매 주일 교육 부서 설교는 고역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마찬가지였다. 신대원 시절 중등부 사역을 마치고 그날 내 설교를 녹음한 MP3를 들으며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길, 비참함에 하염없이 사무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상투적인 고백이지만 결국 나를 키운 건 열등감이다. 설교자로서 치명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찾은 길은 글쓰기였다. 최대한 원고를 정성껏 작성해 잘 낭독하는 것으로 내 설교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그런 내게 설교자로서 자의식은 '작가'로서 정체성과 맞물려 있다. 글쓰기라는 고단한 작업을 통해 나를 다독이며 여기까지 걸어왔다.

설 연휴 기간 애니메이션 "룩백"(ルックバック, 2024)을 보았다.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짧은 분량이라 마음 편히 선택했다. '만화가'라는 소재가 나와 상당한 거리가 있을 거라 짐작하며 그리 기대는 안 했다. 하지만 주인공의 감정선에 절절히 공감했다. 마음 깊은 곳에 흐르는 파동을 느꼈다.

원작 만화를 리디북스로 사서 읽으며 그 감동을 찬찬히 되짚었다. 같은 장면에서 잠시 멈추어 눈을 감았다. 주인공 후지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빗길에서 기쁨에 겨워 춤추는 장면이다.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며 시기했던, 놀라운 그림 실력을 지닌 쿄모토로부터 "만화의 천재"라는 찬사를 듣고 난 후 벅찬 감정을 주체 못한 결과다. 그 상태로 집에 들어간 후지노는 포기했던 꿈을 다시 붙잡고 펼쳐나가 마침내 걸출한 만화가가 된다.

나는 여전히 내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설교자로서 내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발음은 어눌하고 시선은 원고에 고정돼 있다. 내용은 지루하고 고루하다. 예배 후 내게 "말씀에 은혜받았다."라고 건네는 인사말을 믿지 않는 이유다.

그럼에도 간혹 하염없이 먹먹할 때가 있다. 설교 원고 작성에 들인 내 노력을 알아주는 반응이다. 설교자로서 공을 들은 글쓰기를 칭찬해 주시는 분들의 한마디다. 그렇다. 점점이 이어지는 그 모든 격려를 붙잡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 역시 빗길에서 춤을 추었다. 그러다 과분한 기회를 통해 출간했고, '작가'로서 정체성에 색을 입혀가고 있다.

“룩백”에서 중반, 진심 어린 격려를 통해 좌절을 딛고 일어나 창작에 몰입하는 주제 의식은 비극적인 사건을 거쳐 결말 부분에 다시 등장한다. 고통에 빠져 힘겨워하던 후지노는 지난날 쿄모토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만화를 그리는 건 재미없고 지루하고 너무 힘들다고, 그냥 보는 게 낫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런 후지노에게 교모토가 물었다. “그러면 후지노는 왜 그리는 거야?”

후지노는 그 답을 한참 시간이 흘러 쿄모토 방에서 눈물 흘리며 깨닫는다. 바로 한결같이 자기 만화를 좋아하고 응원해 준 이들 덕분이다. 생의 절망을 딛고 일어날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후지노는 쿄모토의 마음이 담긴 네 컷 만화를 작업실 창문에 붙이고 다시 만화를 그린다. 그 모습을 배경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하루가 흘렀음을 창밖 풍경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그녀는 아픔을 이겨내고, 지겹고 고단한 창작을 반복하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새해를 맞이해 다짐했다. 더욱 자주, 꾸준히, 꿋꿋이 글을 쓰는 사람이 되자. 간혹 내 정체성을 흔드는 당혹스러운 위기를 마주하기도 한다. 어이없이 황당한 제약을 겪기도 한다. 가볍게 무시하기로 했다. 누가 뭐라든 나는 '글쟁이'다. 묵묵히 쓰며, 내게 주어진 목회 여정을 이어가자고 나를 다독였다.

“룩백”은 새삼 뭉클한 감사를 일깨운 영화다. 부담 없는 재생 시간 덕분에 “언어의 정원”과 더불어,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종종 찾아볼 의미 있는 작품이다. 앞으로도 감상할 때마다 내 글에 반응해 주고 기대를 걸어준 이들에게 더욱 고마움을 느낄 것 같다. 이 공간을 빌려 고백한다. 내 등을 바라봐 주고, 또 내게 등을 보여준 여러 쿄모토들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거라고. 이렇게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덧, "룩백"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한 달간 무료로 감상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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