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7일 월요일

영화 "브루탈리스트" 그리고 "동주"


무려 3시간 30분을 넘는 긴 영화다.
이례적으로 '인터미션'까지 있다.
이 때문에 망설이며 극장을 찾았다.
그리고 납득했다.
어떤 이야기는 상당한 물리적 양이 필요하다.
그제야 안겨주는 깊은 울림이 있다.
3시간 넘는 대작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다.
이 영화가 장차 고전이 될 영화로 극찬받는 이유다.

주인공 라즐로 토스는 일생에 거쳐 겹겹의 고난을 통과한다.
시대와 개인에게 유무형의 가혹한 폭력을 당한다.
처참하게 짓밟히고 무너진다.
심지어 스스로 자신을 학대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자기 건축 철학을 지킨다
숭고한 예술세계를 구현해 나간다.
시련과 직면하여 승화시킨 결과다.

오늘(2월 16일)은 시인 윤동주의 기일이다.
집에 들어와 영화 "동주"(2016)의 마지막 20분 분량을 봤다.
어김없이 눈물이 흘렀다.
시인은 황포한 시대에 짓눌리며 부끄러움에 괴로워했다.
그 고통을 이겨내며 그는 아름다운 시를 마침내 세상에 남겼다.
"브루탈리스트"의 주인공과 이어지는 대목이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삶을 감히 라즐로 토스나 윤동주에 비할 수 없다.
실은 정반대다.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나 살아가며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삶은 고통이다.
누구나 그렇듯 내면 여기저기에 흉터가 있다.
두 영화와 두 인물을 통해 나를 스쳐 간 아픔을 새롭게 마주 보았다.
그리고 진리를 거듭 확인했다.
그 어떤 폭력도 나를 영원히 무너뜨릴 수 없다.
새로운 예술의, 새롭게 살아갈 희망의 토대와 근거가 된다.

이러한 통찰을 영화 "브루탈리스트"로 안겨준 젊은 거장 "브래디 코베"의 차기 작품들에 기대를 표한다.
이 시대의 라즐로 토스와 윤동주에게, 그리고 저마다의 혹독한 계절을 통과하는 이들을 위로한다.
암울할 시대를 이겨낸 젊은 시인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며, 어둠을 내몰고 아침을 기다리길 다짐한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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