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3일, 목, 새벽기도회, 목사 정대진
누가복음 18장 18~30절 “구원 너머의 구원”
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어느 남자가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얼핏보기에 좋은 태도입니다. 질문에는 그 사람이 가진 관심사가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그의 질문에는 영생에 관한 내면 깊은 목마름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한 갈증이 그의 걸음을 예수님께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주님께 영생의 길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19절에 보면 이렇게 퉁명스럽게 되 받아 칩니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 분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그런다음 이미 그가 답을 알고 있다며 십계명 중 5~10번째 계명을 나열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관리는 이렇게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런 모든 것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예상하셨다는 듯이 곧바로 날카로운 진리를 그에게 들이 미셨습니다. 22절 제가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십계명으로 대답하는 관리에게 예수님은 또 다른 계명을 제시합니다. 바로 그의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그러한 베품은 헛되지 않고 그에게 하늘 보화가 주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말이 그에게 큰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가 큰 부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몹시 근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관리를 따뜻하게 다독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쐐기를 박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24~25절 함께 읽겠습니다.
2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렵냐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쉬울 정도입니다. 절대적인 난이도입니다. 사실상 ‘불가능’을 선언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그 부자 관원 한사람의 마음만 흔들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둘러싼 모든 사람들을 심난하게 하였습니다. 본문 26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26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부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부자들로 하여금 가진 돈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이 금과옥조처럼 떠 받들었던 율법에 근거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모두는 율법의 영향력 아래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구원에 관해 그토록 엄중하게 선언하신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크나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담감은 예수님의 명백한 의도입니다. 주님은 어느 이름모를 관리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내면에 숨긴 진실을 폭로하였습니다. 그가 주님께 질문한 것은 답을 듣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답을 확인하고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즉, 자기가 얼마나 철저히 율법을 따르는 사람인지를 내세우고 싶었습니다. 그 시대 대다수 사람들이 동의한 영생의 방법을 자신이 얼마나 굳세게 걸어가고 있는 지를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그는 사람들로부터 위대한 스승으로 인정받고 있는 예수님을 이용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악한 의도에 말려들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가진 오류를 냉정하게 지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참된 구원의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27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어느 부자 관원과의 대화를 통해 구원을 이루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을 포함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구원에 있어 인간은 철저히 무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더 정확히는 인간에게 불가능하기에 하나님의 구원은 구원다울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절망과 시련을 이기는 길은 철저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구원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토록 철저히 죽임당하고, 마침내 그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는 것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독재자의 횡포가 아닌 사랑의 섬김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죄인을 구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야 합니다. 철저히 낮아지시고 연약하고 비참해져야 합니다. 그 결과 끔찍하게 죽임당해야 합니다. 창조주시며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는 길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전능을 기꺼이 낮아지고 내려놓는 일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진정한 권능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이 세상의 허무함 힘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과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십자가와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침 어제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부활을 맞이하는 사십일 동안 우리 주님의 위대한 구원에 담긴 희생을 마음 깊이 묵상하길 원합니다. 이를 통해 더욱더 스스로를 돌보고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길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도, 지극히 높으신 우리 주님의 능력이 그런 우리 모두를 감싸안고 생명의 여정으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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