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1일, 월,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누가복음 22장 54~62절 “심히 울더라”
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56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57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58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59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60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한 남자가 흐느껴웁니다. 험한 뱃일로 거칠어진 몸이 주체없이 떨리고 있습니다. 통곡 소리가 새벽 어둠 사이를 가르고 울려퍼졌습니다. 그의 이름은 베드로입니다. 누구나 다 인정하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리더 중 한 명입니다.
이 사실을 베드로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주님께로 몰려올 때 마치 자기를 향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갈릴리 백성들이 감동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마음도 한 없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어느샌가 모두가 예수님을 가리켜 메시아라고 외치며 왕으로 세우려 할 때 그의 숨겨둔 욕망이 마침내 무장해제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옆자리를 악착같이 지켰습니다. 12명 중 누구보다 출중한 제자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애썼습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백성들 앞에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미처 몰랐습니다. 탐욕에 취해 우쭐거리며 했던 그 행동들이 결국 그를 위험으로 몰아 넣고 말았습니다.
군중의 열광이 분노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라고 사람들은 기뻐 외쳤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그들은 살기에 가득차 주님의 목숨을 노렸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마침내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제자들 차례입니다. 누가봐도 그들은 공범입니다. 체포는 시간 문제 였습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강렬한 공포와 긴장이 베드로의 온 몸을 사로 잡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양심을 따라 예수님을 멀찍이 쫓아가 대제사장의 집안으로 함께 들어가긴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지난밤 호언장담했듯이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편들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습니다. 마침 사람들이 모여 불을 피워 한기를 쫓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쭈뼛거리며 들어가 몸을 녹였습니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며 잠시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불을 쬐던 여종 하나가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무척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하시기 전에는 그 분 가까이 있다는 것이 자랑 거리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 곁에 서 있으려 애썼습니다.
그 결과 그의 얼굴이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정체성을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으로 파악했습니다. 베드로가 갈망했던 바람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소원이 그를 감당하기 벅찬 위험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따라서 어느 여종의 말을 베드로는 부인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맞아, 당신도 그 예수의 무리 중 한 사람이야.” 이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베드로에게 쏠렸습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서로 은밀한 눈짓을 주고 받았습니다. 누군가 제사장을 부르러 달려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겁에 질린 베드로는 더욱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 사람아 나는 아닐세”
여기까지가 본문 58절입니다. 그 다음절인 59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 시간쯤 있다가” 굉장히 긴박한 상황속에서 뜬금없이 누가복음은 한 시간의 여백을 남깁니다. 이 때 정확히 어떤 일들이 펼쳐졌는지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짐작은 가능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가까운 제자라는 두 차례의 공개적인 지목, 이어지는 두 차례의 부인. 이런 상황속에서 사실은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그가 아무리 부정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실랑이가 오고 갔을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 예수와 마찬가지로 얼른 포승줄로 묶어 잡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단 예수를 먼저 재판 한 다음에 결과를 보고 움직이자고 만류 했을 지도 모릅니다. 어찌 됐든지 간에 베드로의 신분과 곧 닥쳐올 위기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두 차례의 부인 다음에 이어진 그 한 시간이 그에게는 어떤 때 보다 느리고 무겁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재난을 확고히 하는 세 번째 증인이 등장합니다. 그가 이제 한 술 더 떠 ‘장담’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갈릴리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 둘이 분명 함께 있었다고 못 박아 말합니다. 이제 베드로는 수긍할 법도 합니다. 그가 제자들 중에서도 앞장서서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라는 것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날 대제사장 집의 뜰에 모였던 사람들 중에 굳이 나서서 캐물었던 세 사람 외에 나머지 모두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부인하면 할수록 모양만 우스울 뿐입니다. 어쩌면 베드로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생존욕구는 끝까지 거짓말을 내뱉게 했습니다. 갈릴리 사투리를 감추기 위해, 예루살렘 말투를 어설프게 흉내내며 이렇게 답합니다.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
바로 그때 닭 울음 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그 소리가 베드로의 마음 깊은 곳을 찔렀습니다. 그의 양심을 일깨웠습니다. 불과 조금 전에, 예수님과의 식사자리에서 베드로는 어떤 상황이든 주님과 함께 하겠다는 자기의 각오를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3~34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그 말씀 그대로 베드로가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구약 성경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3’은 완전수입니다. 즉, 베드로의 세 차례 부인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한 완전한 부정을 뜻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예고하신 그대로 닭 울음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과연 어떤 눈빛이었을까요? 분명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이 그 안에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어떤 변명도 부인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그 형형한 눈망울에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단순히 방금 전 식사자리에서 했던 말이 거짓말로 드러나 창피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지, 자기 내면의 실상을 낱낱이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난 3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을지 모릅니다.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던 순간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주님곁에서 들었던 놀랍고 감동적인 말씀들, 가까이에서 함께 목격했던 놀라온 이적들이 생각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샌가 나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제자라고 착각했습니다. 교만이 싹 터올랐습니다. 예수님과의 물리적 거리가 자신의 신앙을 증명한다고 오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추악한 야망을 정당화 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들어가 지금까지의 공로를 인정받아 부와 명예를 누리고 싶었습니다. 다른 제자들과 공과를 다투고 시기하고 경쟁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지금껏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주님을 이용하려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 앞에 순종하기 보다는 그분을 내세워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베드로의 호언장담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주님은 누구보다 잘 아셨습니다. 그렇기에 닭 울기전에 그가 당신을 부인하리라 말씀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셨을 때의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못난 나를 끝까지 품어주신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베드로는 그 서늘한 닭 울음소리와 함께 명징하게 깨달았습니다. 그 결과 주체할 수 없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눈물의 절기입니다. 우리는 울어야 합니다. 물론 인위적으로 감정에 메여 눈물흘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안의 베드로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참으로 믿고 의지하기 보다는 복음을 도구 삼아 어리석은 욕망을 이루려 했던 탐욕을 돌이켜 봐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헤아리기 보다는 그럴듯하게 목소리만 높이며 신앙을 증명하려 하진 않았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그렇게 진심어린 회개의 눈물을 흘린 이들에게 주님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실줄 믿습니다. 베드로를 다시 일으켜 세워 위대한 사도로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흘린 참회의 눈물 또한 기뻐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이 혼탁한 시대를 정결케 하는 진리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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