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2일, 화,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누가복음 22장 63~71절 “하나님의 아들”
63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4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65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66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
67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68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69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70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71 그들이 이르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동시에 인간이 감히 다 헤아릴수 없는 무한한 깊이와 넓이를 가진 진리입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핍박하고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한 예수님의 심판을 기록합니다. 감람산에서 붙잡히신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 갔습니다. 동이 트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들이 모여 공회를 소집했습니다. 예수님을 피고인으로 세우고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불필요한 심문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사안의 핵심을 질문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정체성’입니다.
질문도 답도 모두 두 개입니다. 그런데 그 둘은 각각 다른 내용이 아닙니다. 같은 주제를 다른 표현으로 반복해서 강조하는 대화를 누가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누구신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참으로 누구이신지를 죄악에 눈먼 사람들은 결코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참담한 결과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본문을 알려 줍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과 답을 보시겠습니다. 본문 67~68절, 다시 한 번 다같이 읽겠습니다.
67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68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공회에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시간끌지 말고 얼른 자백하라는 종용입니다. 의도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자칭 메시아’로 몰고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는 신성모독이고 로마에게는 체제 전복을 꿈꾸는 반란 죄입니다.
갈릴리 사람들 역시 예수님을 가리켜 메시아로 부르며 많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에 입성할 당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게다가 예수님 자신도 직간접적으로 여러 차례 스스로를 메시아 혹은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제사장들은 금세 원하는 답을 들을거라 기대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맞다, 틀리다. 단순하게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의도에 쉽게 휘말려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과 당신 사이의 거대한 벽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주님과 제사장들 사이에 깊은 골이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말을 서로 나누어도 결코 메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아무리 진리를 외쳐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원고와 피고가 바뀌어 예수님의 재판정에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심문한다면 그들은 어떤 답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정확히는 예수님의 존재, 그분의 호흡과 인격과 생각이 사람들의 실존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설령 누구보다 열심히 말씀을 연구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백성들 위에 높이 올라 제사를 집례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력한 종교 권력을 쥐고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받고 있을 지라도 그들은 예수님을 바로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자기들 눈 앞에 있음에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이 언젠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69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69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제사장들의 심문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모호한 말로 자기변호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 이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계실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 자리는 곧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그리스도의 공간입니다. 세상의 끝날, 주님의 뜻을 완성시키는 보좌입니다. 지금 당장은 제사장들이 재판장을 자처하며 예수님을 무릎꿇리고 죄인으로 몰아가지만 그 날에는 그들이 예수님의 심판 앞에 고개를 숙여야합니다.
따라서 이런 주님의 답이 제사장들에게는 황당하게 들렸습니다. 동시에 좋은 기회입니다. 더욱더 확실한 자백을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대화가 담긴 70~71절 함께 읽겠습니다.
70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71 그들이 이르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
그들이 노골적으로 물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이때 예수님은 특이하게 답하십니다.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공동번역은 이렇게 옮겼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너희가 말하였다.”
지금껏 제사장 무리가 예수님에게 한 말은 무엇일까요? 그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한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예루살렘의 종교권력자들은 예수님을 철저히 부정하였습니다. 특히나 성금요일 재판정에서 그들은 주님을 처참히 능멸했습니다. 그들의 경험과 지식이 핍박과 고난을 부축였습니다.
제사장들의 눈에 예수님은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자처하는 신성모독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의 답을 듣고 마침내 자백을 얻었다며 총독 빌라도의 법정으로 넘겨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향한 그들의 모욕과 경멸이야말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참으로 구원하는 그리스도는, 진정 온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아들은 가장 약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원하고 기대했던 강한 용사로 이 땅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압도하는 용맹한 힘과 권위를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 없이 낮은 자세로 약한 이들을 품고 섬겼습니다. 기꺼이 모욕 당하고 희생하셨습니다. 그 결과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살아나시어 하나님의 진정한 구원은 바로 그 죽음을 거쳐 이루어지는 생명의 복음을 온전히 알리셨습니다.
하지만 그 날, 공회에 모인 사람들은 이러한 진실을 미처할지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알려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보다는 자신들의 이익과 욕심을 더 우선하였습니다. 욕망에 눈이 멀어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끔찍한 죄인으로 성경에 기록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주님을 위한 많은 일들을 한다고 하지만 정작 예수님을 올바로 알고 있는지 겸허히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예수님, 내가 바라는 주님의 모습을 먼저 그려놓고 거기에 예수님을 억지로 끼워맞추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그런 잘못을 반복할수록, 성경을 얘기하지만 정작 말씀에서 멀어지고, 복음을 외치지만 오히려 진리에서 떠나는 죄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 대신 십자가의 사랑을 묵묵히 가슴에 품고 실천하며 살아가야합니다. 그 누구보다 강하시지만 죄인을 구하시기 위해 약해지셨고, 그 누구보다 지혜롭지만 세상을 살리시기 위해 미련한 모습을 택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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