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7일 일요일

누가복음 23장 1~12절 “두 사람이 친구가 되었을 때”

2022년 3월 23일, 수, 포항제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누가복음 23장 1~12절 “두 사람이 친구가 되었을 때”

1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2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5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6 빌라도가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7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8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11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가 참으로 믿고 따를 삶의 주인입니다. 그 누구보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죄인으로 최급당하며 고난 당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본문은 두 명의 권력자를 등장시킵니다. 바로 총독 빌라도와 분봉왕 헤롯입니다. 이 두 사람과의 대조를 통해 왕이신 예수님이 펼치는 다스림의 본질을 깨닫게 됩니다.

어제 읽은 본문인 누가복음 22장 마지막 단락에서 대제사장 무리는 자기들만의 재판에서 예수님에 대한 판결을 끝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자처하는 신성모독자로 자백을 받아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끌고가 고발했습니다. 

고발 내용이 본문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자기들 재판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허위사실을 교묘하게 껴 넣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못하게 선동했다는 음해입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로 로마 역시 조세 정책에 심혈을 기울여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의 의도는 뻔합니다. 예수는 이렇게 로마에도 위험한 인물이니 얼른 처형시키라는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직접 심문한 다음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이 장면은 얼핏 빌라도를 의인처럼 보이게 합니다. 분노에 가득찬 제사장들에 둘러싸여 홀로 진리를 지키는 훌륭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단순한 인물이 아닙니다. 로마의 정교한 인재 양육 시스템이 낳은 엘리트입니다. 게다가 당시 제국 전체에서 가장 치열한 저항이 빈번하게 일어난 유대땅에 총독으로 파견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는 동물적인 정치감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따라서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한 것은 순수한 의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둘러싼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교활한 음모를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괜히 함부러 끼어들었다가는 큰 화를 입을게 분명했습니다.

빌라도가 순순히 자기들 뜻에 따르지 않자 유대교 지도자들은 즉각 반발합니다. 더욱 강한어조로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발합니다. 그가 고향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온 백성들을 현혹시키고 선동했다고 말합니다. 이 때, ‘갈릴리’라는 지명을 듣는 순간 빌라도는 곧바로 살길을 찾았습니다. 예수가 갈릴리 사람인지를 되물어 확인했습니다. 

마침 갈릴리를 다스리는 분봉왕 헤롯이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나와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며 예수님을 헤롯에게 보냈습니다. 예수님과 관련된 복잡한 소동에서 벗어나 책임을 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헤롯은 그런 예수님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기뻐했습니다. 이 역시 주님을 향한 순수한 호의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관리하는 갈릴리에서 주로 활동했던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주님의 사역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위협으로 느낄법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이적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뜻하지 않게 빌라도를 통해 예수님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중학생이 유명 마술사를 마주하듯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신비한 능력을 보여주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앞선 두 차례의 재판 때와는 달리 침묵을 지켰습니다. 탐욕으로 가득찬 권력자의 놀이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헤롯의 감정이 싸늘하게 바뀌었습니다. 미소로 가득찼던 얼굴이 금세 모욕감으로 일그러졌습니다. 자리에 동행했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그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헤롯을 업신여겼던 그들이 갑자기 친근감을 표시하며 가까이 다가가 침을 튀기며 예수님을 모함하였습니다. 

유대지도자들의 바람은 이루어 졌습니다. 헤롯은 처음 예수님을 맞이했을 때와 달리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분노에 가득 차 올라 곁에 있던 군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핍박하였습니다. 업신여기며 희롱하였습니다. 업신여김과 희롱, 개역개정 성경은 조금 점잖고 가볍게 번역했지만 당시 상황은 분명 처참했을 것입니다. 

절대 권력자가 자신을 옹호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무력한 죄인을 얼마나 잔인하게 대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그에게 굴욕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따라서 헤롯은 복수심에 불타 끔찍한 폭력과 인격모독을 가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헤롯은 예수님을 도로 총독 빌라도에게 돌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이 두 사람에 대한 누가의 증언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12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헤롯과 빌라도는 본래 원수사이입니다. 근본적으로 친해질 수 없는 사이입니다. 관련해서 당시 역사를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받고 후에 베들레헴의 어린 남자 아이들을 살해한 ‘헤롯 대왕’이 등장합니다.

헤롯대왕이 죽은 후 그의 세 아들이 이스라엘을 각각 나누어서 다스렸습니다. 그 중 둘째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가 본문에 나오는 갈릴리를 맡았던 분봉왕 헤롯입니다. 그의 형이자 헤롯대왕의 첫 째 아들인 헤롯 아르켈라오는 본래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넓은 땅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심하게 폭정을 해서 로마 제국이 그를 강제로 추방합니다. 그런 다음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총독을 보냈습니다. 그때부터 예루살렘을 로마가 직접 통치했습니다. 빌라도는 그러한 로마의 식민 정책에 따라 주후 26년 파견된 총독이었습니다.

따라서 빌라도와 헤롯은 출신 배경과 문화와 정치적인 목표가 극명하게 다릅니다. 치열한 경쟁자였습니다. 둘다 매우 노련한 안목 그리고 불타오르는 야망을 가졌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의 빈틈을 노려 무너뜨리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그날, 예수님이 처형당했던 그날 하루 만큼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서로 일치 했습니다. 두 권력자에게 예수님은 ‘중립지대’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게 하는 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이익일 뿐 적어도 손해는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모두 혼잡하게 하는 예수를 얼른 처단하는게 제국의 질서에 부합하고 황제에게 잘 보이는 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빌라도가 본문 앞부분에서 주님을 잠시 변호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헤롯과 나눈 악수를 통해 결코 진심은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금세 변할, 그 순간만의 처세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장면을 통해 세속의 권력이 가진 속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평소 으르렁거리다가 탐욕을 이루기 위해 한 마음이 되는 정치인들을 역사적으로 수없이 발견하곤 합니다. 기득권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죄없는 사람들을 무참히 짓밟는 권력자들을 흔하게 목격하고는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추악한 지도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시어 당신이야말로 온 땅을 참으로 다스리시는 진정한 왕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본문 말씀이 폭로하는 빌라도와 헤롯의 악독함과 정반대되는 예수님의 다스림을 신뢰해야 합니다.

주님은 약한 사람을 보살피십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아파하십니다. 가장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이들을 향해 항상 시선을 고정하고 그들의 편이 되어 주십니다. 겉으로 보이는 재산과 학벌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겨주시고 보듬어 주십니다. 

우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예수님의 다스림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오늘 하루도 헤롯과 빌라도의 통치를 거부하고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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