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7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창세기 16장 “살피시는 하나님” 찬송가 365, 363장
어제 읽은 창세기 15장은 계속된 난임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브람에게 다가오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별을 마음에 품고 믿음을 지니고 의롭게 인정받은 아브람의 모습이 나옵니다. 성경에 기록된 눈부시게 위대한 장면입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인 오늘 본문에서 아브람은 아내 사래의 권유의 따라 이집트 출신 여종 하갈과 동침하였습니다.
분명 칭찬받은 믿음을 지녔으나 여전히 흔들리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런 아브람을 함부로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런 아브라함의 연약함과 현실 속 갈등을 그대로 보여주며 우리를 위로합니다. 동시에 그 결과 겪었던 거친 시련 또한 보여 줍니다.
하갈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여주인 하갈을 멸시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래는 가만히 있지 않고 하갈을 ‘학대’하였습니다. 여기서 ‘학대’에 해당하는 단어는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노예 생활을 묘사할 때도 등장합니다. 그만큼 하갈은 너무나 혹독한 핍박을 받고 무거운 배를 잡고 도망칩니다. ‘임산부 도망자’라는 가장 비참한 처지에 놓입니다.
그런 하갈에게 하나님이 다가와 말을 거십니다. 8절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쉽게 지나칠 수 있겠지만 너무나 중요한 대화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물론이고 고대 서아시아 문헌에서 신이 여성에게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건네는, 유일한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이른바 아브라함의 정통 족보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의 불신앙을 드러낸 행동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하갈에게 다가와 아픔에 귀 기울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낳을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심”이라는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주님께서 그녀의 고통을 들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하갈은 자신이 입은 은혜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13절 함께 읽겠습니다.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하갈은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가리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역시도 오늘 우리에게는 별거 아닌 장면으로 쉽게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 서아시아에서 여성이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행동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은 하나님과 하갈 사이의 파격적인 만남과 대화를 소개합니다. 주님은 아브람과 그의 아들들만이 아니라 천대받고 학대당한 이방인 여성에게 다가오셔서 사랑으로 품어주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는 십자가와 부활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살리시려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몸소 나무에 달려 저주받은 모습으로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러한 희생으로 온 세상을 구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깊이와 넓이가 얼마나 무한한지를 거듭 깨닫습니다. 인간은 어리석은 기준으로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제한합니다. 심지어 구원과 신앙에 있어서도 함부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밀어내고는 합니다. 그렇지만 본문은 우리에게 더욱더 커다란 마음으로 주위에 고통당하는 이들의 신음에 귀 기울이고 안고 보듬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주님은 바로 우리의 고통을 들으시는,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기도 가운데 내뱉는 신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의 따스한 숨결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새 힘을 얻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사랑을 이루고 전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
저희 삶의 모든 아픔을 살피시는 하나님
임신으로 부푼 배를 부여잡고 도망치는 하갈처럼, 때로 저희도 끝없는 좌절과 절망 가운데 깊이 빠지곤 합니다. 그런 저희의 모든 신음을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심을 믿습니다. 그 사랑에 감긴 무한한 넓이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진심으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받은 은혜를 명심하며 주위에 있는 소외되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도움과 섬김의 손길을 건네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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