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0일 화요일

창세기 25장 “가볍게 여기다”

2025년 12월 30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창세기 25장 “가볍게 여기다” 찬송가 93, 94장

한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 사이에서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성경은 두 형제의 요란한 출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22~23절 읽겠습니다.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두 쌍둥이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격하게 싸웠습니다. 이로 인해 어머니 리브가가 하나님께 기도할 정도입니다. 두 아들 사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얼마나 격렬한 갈등 관계였는지를 드러내 보여줍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은 놀랍습니다. 쌍둥이는 태중에서만 싸우지 않습니다. 두 쌍둥이 모두, 각자 커다란 민족을 이루어 나뉘게 됩니다. 그런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입니다. 즉, 형이 동생보다 낮아지게 됩니다. 기존 사회 질서를 뒤집어 지고 새로운 관계가 펼쳐질 것을 하나님은 예고하셨습니다.

마침내 출산일이 다가왔습니다. 첫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온 몸에 털이 나 있었습니다. 그 털 색깔이 붉어서, ‘붉다’라는 의미를 지은 ‘에서’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둘째는 그런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그런 까닭에 발꿈치를 잡다는 뜻의 ‘야곱’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굉장히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막연히 출산 순간 벌어진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 아닙니다. 이 후 둘 사이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창세기는 금세 두 사람이 성인이 된 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다 자라서도 둘은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보입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입니다.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입니다. 반면 야곱은 내향적이고 조용한 성격입니다. 형과 달리 장막 안에서, 오늘날로 따지면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두 사람의 기질 차이는 부모의 엇나간 편애로 이어집니다. 아버지 이삭은 장남 에서가 사냥해서 잡아온 고기를 좋아했습니다. 반면 어머니 리브가는 차남 야곱과 함께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정을 쌓았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갈등이 부모에게로 번져나갈 것을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급기야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어느 날 사냥하고 돌아온 에서는 무척 허기져 했습니다. 고대의 사냥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체력과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너무나 지치고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야곱이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극도의 공복감에 시달릴 때 눈 앞에 놓인, 막 요리한 음식이 지닌 강력한 힘을 쉽게 공감할 것입니다. 평소 거칠고 충동적인 성향의 에서는 더욱더 그러했습니다. 동생에게 붉은 죽을 달라고 합니다. 

야곱은 그에게 뜻 밖의 요구를 합니다. 바로 ‘장자의 명분’입니다. 그러자 에서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장자의 명분과 붉은 죽을 바꿉니다. 그 뿐만 아니라 32절에 보면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합니다. 당장 허기진 배를 채워줄 음식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장자의 명분보다 훨씬 더 유익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장자의 명분”이라는 말이 31~34절에 무려 넉 절에 걸쳐 한 번씩 계속 등장합니다. 에서의 우매함을 반복하여 지적합니다. 결정적으로 매듭짓는 34절 함께 읽겠습니다.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세기 저자는 에서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의 원인을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바로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더욱 정확하게는 아브라함의 장손으로, 이삭의 장남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자칫 운명론으로 이해할지 몰라 조심스럽지만,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예고한 대로 그가 동생에게서 밀려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단지 특정 음식을 먹었느냐, 혹은 그 과정에서 실수를 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에서의 일관된 삶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내면의 중심을 보여줍니다. 그는 당장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느라 중요하고 궁극적인 가치를 소홀히 하고 무시하였습니다. 그 결과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온 언약을 잇는 사명을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말씀 가운데 우리 자신에게도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인생에서 무엇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어느 것을 더 무겁게 여기고 어떤 것을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까? 제가 늘 강조하듯이 너무 비장하게 듣지 마시길 바랍니다. 현실을 살아가기에 자연스런 욕망에 눈이 가는 것 자체는 사실 자연스럽고 어떤 면에서는 당연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생명의 언약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보다 더 인생의 중심에 두시길 바랍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드러난 참 진리를 진정 무겁게 여기시길 바랍니다. 

어느새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내렸던 무수한 선택들과 삶의 태도를 복음과 진리 가운데 되짚어 보고 새 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저희 삶의 중심이신 주 하나님
한해의 마지막 날, 새벽을 깨워 말씀 앞에 나아가게 하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때로 저희 또한 에서와 같은 어리석음에 빠지기도 합니다. 당장의 허기에 지쳐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을 가볍게 여길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저희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삶의 초점을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정확히 맞추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긍지를 소중히 품게 하시고 진리로 말미암은 참 생명과 기쁨 충만히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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