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일 화요일

창세기 2장 "한 몸을 이룰지로다"

2025년 12월 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창세기 2장 "한 몸을 이룰지로다"

고대인들은 현대인들과 달리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이 매우 적었습니다. 따라서 그 시대 사람들은 듣고 이해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배려하는 글쓰기와 말하기가 성경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대표적인 표현법이 같은 뜻의 문장을 표현만 약간 바꾸어 반복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창세기 2장도 그러합니다. 어제 읽은 창세기 1장에 이미 천지창조가 웅장하게 묘사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장인 창세기 2장에서 또 다시 하나님의 창조를 언급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가요? 그만큼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창세기 1장과 달리 좀더 세밀한 시선으로 주님의 창조를 들여다 봅니다. 특별히 에덴 동산의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그 절정은 바로 “아담과 하와”입니다. 18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혼자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휘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그런 다음 잠들어 있는 아담의 갈빗대를 가져다가 하와를 만들어 아담에게로 데려갑니다. 이때 아담은 너무나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23절 함께 읽겠습니다.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아담이 말합니다.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후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루었다고 성경은 알려줍니다. 단지 생물학적인 몸의 결합만이 아닙니다. 한 존재와 다른 존재가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본문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 사정으로 결혼을 안 했거나 혹은 못한 걸 두고 비난 하는게 아닙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인정하십니다. 동시에 본문을 통해 거듭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합과 화합을 기뻐하십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류 두 사람의 만남을 우주 창조 전체의 정점으로 올려 두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화평을 이루는 존재입니까? 아니면 혹시 다툼과 분란의 중심은 아닐까요?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얼마나 충실히 따르느냐를 나누는 기준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늘 기쁘고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 싸움을 누그러 뜨리고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하면, 다툼을 키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화평을 이루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한 몸을 이루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창조의 섭리를 세우는 창조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각자의 삶에서 차별과 소외가 아닌 섬김과 사랑을 실천하여 따뜻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마음 다해 소망합니다. 


기도
창조주 하나님.
주님께서 온 우주를 지으신 창조의 섭리 정점에 아담과 하와의 만남이 놓여 있음을 성경을 통해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한 교제와 평안의 나눔을 이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이에 집중하여 배제하고 소외하는 폭력이 아닌,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섬김과 헌신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우리 자녀들 삶에 선한 만남 가득하길 구합니다. 진심을 담아 서로에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고백할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좋은 만남을 통해 인생 풍성한 결실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평강의 본이 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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