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2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창세기 21장 “웃음, 그 후”
마침내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창세기를 함께 읽어오시면서 공감하실 겁니다. 단지 한 아기가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간절히 바라온 위대한 언약의 결실입니다. 수없이 좌절하고 무너진 끝에 품에 안은 위대한 사랑의 결실입니다. 그날 아브라함과 사라는 살면서 가장 커다란 미소를 보였을 겁니다. 성경은 그 때, 사라의 격한 기쁨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6~7절 함께 읽겠습니다.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18장 12절에서 사라는 하나님을 비웃었습니다. 더 이상 자기 삶에 즐거움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그녀가 주위 사람들에게 들뜬 목소리로 외칩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웃음을, 아들 이삭을 안고 지었습니다. 그녀는 창조주 하나님의 생생한 권능과 사랑을 아들의 체온을 통해 뜨겁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동시의 그녀가 보인 냉혹한 행동 또한 함께 기록합니다. 이삭이 자라 젖을 뗀 것을 기념하는 잔치가 열렸습니다. 대략 만 세 살때 열리는 행사입니다. 유아 사망이 흔했던 옛날, 위험한 시기를 무사히 넘긴 것을 축하하는 뜻깊은 장면입니다. 그 때 사라의 눈에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있는 장면이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문 9절은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라고 기록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했는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이복형제간의 평범한 놀이 장면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사라의 눈에는 예사롭지 않아 보였을 겁니다. 어렵게 낳은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보호 본능이 극도로 예민하고 날카롭게 드러냈습니다.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보냅니다. 고대 서아시아 지방에서 엄마와 어린 아들만 광야로 내보내는 것은 사실상 사형 선고입니다.
하갈은 임신부일 때에 이어 한 번 더 비참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급기야 챙겨온 물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갈증에 힘겨워하며 차츰 숨이 꺼져가는 아들의 모습을 차마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갈은 그저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아가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그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17절 함께 읽겠습니다.
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창세기에서 특별히 자주 반복되는 하나님에 대한 행동 묘사을 여기서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가족에 의해 이용당하고 폭력을 겪은 하갈과 이스마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응답하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시고 샘물을 마시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범위는 무한합니다. 온 우주를 아우르는 드넓은 사랑으로 연약한 죄인의 간구에 귀 기울이십니다.
이와 같은 만유의 하나님께 오늘 하루도 기도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주님께 은혜를 입고 기뻐하면서도 여전히 미움과 분노로 가득한 연약함을 고백 하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우리의 모든 신음에 응답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참된 평안을 누리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참 평안의 주 하나님
주님께서 저희 삶에 안겨주신 참 기쁨을 소리높여 찬양합니다. 인생의 그 어떤 절망도 이겨내는 진정한 행복과 승리를 복음 안에서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동시에 욕망과 불안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공격하는 저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받은 사랑 그대로 전하고 나누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때로 힘겨운 고난에 빠질 때,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시고 탄식에 귀 기울이시는 주님의 드넓은 마음을 신뢰하며 은혜의 샘물을 마시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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