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5일 목요일

[목회 일기] "우리 동네 목사님"





대학 시절 기형도 시인이 쓴, "우리 동네 목사님"을 우연히 읽었다.
시가 그리는 이야기 자체는 암울했다. 
하지만 그 안에 묘사된 목사님의 진솔한 모습이 두고두고 마음에 울림으로 남았다.
이후 누군가 내게 목회자로서 꿈을 물을 때면 주저 없이 '동네 목사'라고 답하곤 했다.

어느샌가 조금씩 흐려졌던 그 꿈을 정배교회에서 이루었다.
담임목사로 부임 후 교회가 속한 정배 1리는 물론이고 주변 마을들을 다니며 인사를 다녔다.
마침, 연말이어서 마을 총회와 노인회 총회에 분주하게 참석했다.
그러면서 '정배교회 담임목사'라는 자리가 동네에서 지니는 위치와 무게감을 조금씩 느꼈다.

오늘(12/24) 참석한, 교회 바로 옆에 있는 정배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더욱 환연히 실감했다.
내빈석에서 이장님들을 비롯한 마을 유지분들과 민망하게 나란히 앉았다.
교회를 대표해 장학금 증서를 전달하러 단상에 올랐다.

불현듯, 20여 년 전 읽었던 그때 그 시가 떠올랐다.
나를 '동네 목사'로 부르시고 이곳에 보내신 은혜를 고백한다.
동시에, 시와는 달리 쓸쓸함을 거둬내고 행복한 모습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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