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7일 일요일

창세기 7장 “방주의 문을 닫으시는 하나님”

2025년 12월 8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창세기 7장 “방주의 문을 닫으시는 하나님”

마침내 심판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한번 1절 읽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1절 말씀에는 노아를 향한 주님의 명령과 평가가 담겨있습니다. 그의 온 가족이 이제 방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대에서 그의 의로움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저께 읽은 6장에 이미 노아가 ‘의롭다’라는 소개를 발견합니다.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게 언급하십니다. 

성경 속 누구에게서도 발견하기 힘든 극한의 찬사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아가 완전무결한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그의 한계 또한 명확히 보여줍니다. 관련하여 16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모든 생명의 암, 수가 방주에 탔습니다. 이제 홍수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방주가 배로 기능하기 위해 우선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문을 닫아야 합니다. 하지만 방주는 수많은 동물을 태울 만큼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배입니다. 그 배의 문 또한 분명 매우 컸을 겁니다. 사람 손으로 닫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오늘날과 같은 자동기술은 당연히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노아를 들여보내시고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노아는 비록 의인이나 철저히 무력한 인간이었음을 성경이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악함을 보시고 심판을 결정하시고 그 가운데 노아를 택하여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주도하고 계심을 창세기는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방주’의 특성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저께 6장을 설교하며 언급했습니다. 방주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테바’는 ‘상자’를 의미합니다. 출애굽기에서 아기 모세를 넣은 ‘갈대 상자’ 또한 ‘테바’입니다. 한마디로 노아의 방주는 거대한 상자입니다.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와 전혀 다릅니다. 엄밀히 말해 배 아닌 배입니다. 방향키를 조절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속도를 더하거나 늦출 수도 없습니다. 그저 물결을 따라 흘러갈 뿐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흐름에 맡길 뿐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임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력하게 있으라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최선을 다해 순종하며 하루하루 맡겨진 소임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동시에 인생 전체의 진로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 뜻, 내 욕심, 내 타이밍을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방주로 이끄신 하나님께서 몸소 안전하게 배의 문을 닫으십니다. 신실하신 은혜 가운데 가장 합당한 때에 합당한 곳으로 물결을 일으켜 주십니다.

이처럼 선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오늘 하루도 마음 깊이 품으며 신뢰와 용기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주 하나님
저희의 작은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시며 구원하신 놀라운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동시에 방주의 문을 닫으시고 배를 물 위에 띄우시는 주님의 손길을 의지합니다. 인생의 항해를 하나님께서 이끄심을 고백합니다. 저희의 어리석은 욕심과 감정을 고집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담대한 순종으로 방주에 올라 물결에 몸을 맡기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마주해야 할 이들에게 복음의 향기를 전하며, 오늘 감당할 일들에 지혜의 빛깔을 더하길 소망합니다. 저마다 근심하며 부르짖는 신음에 응답하시고, 가정마다 평강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참고문헌: 김세권 『삶을 흔드는 창세기 읽기』(서울: 크리쿰북스, 2017) 69~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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