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3일, 정배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창세기 22장 “보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과 마주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창세기는 그동안 절절히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요구합니다. 그 순간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단순히 무리한 요구에 대한 좌절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뿌리 깊은 실망으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자녀를 바치는 인신 제사는 그 시대 서아시아 종교에서 흔히 보던 풍습이기 때문입니다.
깊은 절망이 아브라함 마음에 젖어들었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주변 우상들과는 전혀 다른 정의와 공평의 하나님이신 줄 알았습니다. 따뜻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오해였습니다. 다른 우상들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아들을 태워 바치라고 요구하는 잔악무도한 신이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으로 향합니다. 마침내 산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종들만 남기고 번제를 위해 쓸 나무와 불과 칼을 챙겨 이삭과 함께 산 위에 오릅니다. 그러자 아들은 종들 앞에서는 차마 못 던진 질문을 아버지께 드립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그 때 아브라함의 심경이 어떠했을까요? 아버지는 슬픔을 억누르고 이렇게 답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주님께서 정하신 곳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명령에 순종해 아들을 꽁꽁 묶었습니다. 많은 나무를 짊어질 정도로 충분히 자란 이삭 역시 저항하지 않고 묵묵히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두 손으로 칼을 움켜쥐었습니다. 아들이 고통 없이 빨리 숨을 거두도록 미리 생각해 두었던 급소를 향해 팔을 움직였습니다.
바로 그 때 하늘에서 황급한 소리가 들여옵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며 만류합니다.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을 보여 주시며 이삭 대신 제물로 바쳐 번제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타오르는 불길이 안겨준 온기가 아브라함의 마음을 녹였을 것입니다. 긴장감에 세차게 두근거리던 심장에 고요한 위로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회복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들과 달리 인신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역설을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매우 잔인하고 가혹하지만, 주님과 생생한 화해를 고백하는 사건입니다.
그 위대한 제사를 드린 땅을 기념하며 아브라함은 그 곳에 임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겪은 격정적인 사건을 한 단어로 요약합니다. 바로 ‘이레’입니다. 여기서 이레는 무슨 뜻일까요? 14절 안에서 쉽게 답을 발견합니다. 바로 ‘준비’입니다. 주님께서 이삭을 대신할 제물을 예비하시고 공급하신 것으로 즉각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넘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르에’의 1차 의미는 ‘보다’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극적인 공급 이전에 그분의 눈 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디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듣고 느낀 번민하고 좌절, 모리아 산으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 결국 아들을 향해 칼을 들이미는 극심한 절망 모두를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보시고 당신을 보이시고 예비하신 숫양을 보내셨습니다.
이런 진리를 오늘 하루도 더욱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때때로 우리 역시 하나님께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없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무거운 걸음으로 절망을 헤치고 지나갑니다. 어쩌면 지금 그런 고통 가운데 괴로워하고 계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거듭 마음에 새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십니다. 우리의 모든 아픔과 좌절을 보십니다. 그 상처와 결핍 가운데 가장 합당한 선물을 예비하시고 보내십니다. 그러한 사랑어린 주님의 눈길과 시선을 맞추며 나아가는 오늘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자녀들의 모든 아픔을 보시는 하나님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처럼, 저희도 때로는 주님께 너무나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무거운 걸음으로 저마다의 모리아 산으로 향하곤 합니다. 그런 저희의 모든 슬픔과 절망을 들여다 보시고 자신을 드러내시며 합당한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의 구원을 신뢰합니다. 십자가에서 아들의 숨을 거두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마음에 품고, 따뜻한 눈길을 전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을 가슴에 품고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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