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6일 월요일

시편 27편 1~9절 "나의 빛, 나의 구원"

2025년 1월 25일, 정배교회 주일예배 설교, 정대진 목사
시편 27편 1~9절 "나의 빛, 나의 구원"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1)여전히 태연하리로다
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을 잘 아실 겁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군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와도 한국 전쟁으로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맥아더와 관련한 여러 흥미로운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의 평전에 적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저에게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지휘관의 별이 보이는 군모를 쓴 채, 반복해서 적의 사격에 자신을 노출시켰다. 보르네오에서 호주군 순찰대와 함께 선두에 섰을 때, 함께 있던 두 장교가 적의 사격으로 전사했다. 한 호주군 대위가 그를 밀쳐 넘어뜨리며 소리쳤다. ‘여기를 떠나십시오!’ 그는 그제야 물러났다.” 

무척 비범한 모습입니다.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 누구나 두려워 떨며 긴장하게 됩니다. 잔뜩 몸을 움츠러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맥아더는 일부러 적의 총구 앞에 자신을 노출시켰습니다. 그가 대담한 행동으로 부하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전장의 분위기를 바꾸었다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비슷한 장면을 성경에서도 발견합니다. 바로 골리앗과 맞서는 다윗입니다. 어느날 다윗은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으로 전쟁터로 갑니다. 그곳에는 블레셋과 전투에 참여한 형 셋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군대로 끌려간 아들들의 안부를 걱정하며 많은 음식을 다윗에게 맡겨 전달하게 했습니다. 다윗은 그곳에서 처참한 관경을 목격합니다. 거대한 몸을 지닌 블레셋 장군이 앞장서서 이스라엘을 모욕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사무엘상 17장 24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이스라엘 군사가 몹시 겁에 질려 도망갔습니다. 누군들 그러지 않겠습니다. 사실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거대한 위협 앞에 누구나 공포에 떨며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애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 함께 읽겠습니다.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소년 다윗은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물맷돌만 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나아갔습니다. 그가 날린 돌이 정확하게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했습니다. 그의 육중한 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에 고꾸라졌습니다. 그 모습을 초조하게 침을 삼키며 지켜보던 이스라엘 군대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가장 극적인 승리의 순간입니다. 평범한 목동이었던 다윗이 순식간에 온 나라의 영웅이 된 장면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시편 27편은 이처럼 용맹한 다윗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의 당당한 신앙고백이 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 본문 1~3절 함께 읽겠습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다윗은 힘차게 외칩니다. 주님은 그의 빛이며 구원이십니다. 그런 까닭에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지닌 용기의 현장을 소개합니다. 바로 전쟁터입니다. 그는 자신의 대적들이 벌이는 행동을 “내 살을 먹으려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만큼 끔찍하고 잔혹한 폭력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그런 원수들이 오히려 넘어지고야 말았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더욱 자신있게 선언합니다. 군대가 그를 둘러싸서 공격하려 할 지라도 여전히 태연합니다.

앞서 살펴본 사무엘상 17장에 기록된, 골리앗과 대결해 승리한 다윗의 용맹한 모습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찬양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에게 마땅히 어울리는 웅장한 고백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을 영웅 서사로 읽으면 안 됩니다. 성경은 어떤 누구도 화려하게 포장하지 않습니다. 정반대로 그의 본래 모습을 낱낱이 드러내 보여줍니다. 7~9절 읽겠습니다. 

7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다윗은 애절하게 주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제발 자기를 불쌍히 여기셔서 간절히 외치는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해 달라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말아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처절하게 애원합니다. 그러한 주님을 가리켜 “나의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어디서 들어보지 않으셨습니까? 바로 1절에서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다윗은 “나의 구원”이라고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두 구절의 분위기와 정서가 완전히 다릅니다.

1절에서 다윗은 두려움에 초연해 있습니다. 누구도 두렵지 않다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심지어 전쟁터 한복판에 있더라도 무섭지 않고 태연하다고 담대하게 밝혔습니다. 하지만 9절에서 그는 온갖 근심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당할까봐 잔뜩 겁에 질려 있습니다. 

이렇듯 본문 1~3절과 7~9절은 극명한 차이를 지닙니다. 불과 4절 만에 전혀 다른 감정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런 탓에 시편 27편을 해석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매우 차이 나는 내용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학자들은 2개 이상의 여러 시가 27편에 함께 묶여 있다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나름 일리가 있습니다. 그만큼 한 사람이 썼다고 보기에는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순이 오히려 성경을 성경답게 합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인생은 이처럼 다양한 굴곡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확신에 찬 순간과 의심에 휩싸인 상황이 찾아옵니다. 누구에게나 기쁨으로 가득한 때와 슬픔에 휩쓸리는 시간이 다가옵니다. 그 가운데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가는 게 삶의 본질입니다.

다윗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성경을 영웅 이야기로 읽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입니다.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과 맞서 싸워 화려한 성공을 거둔 것도 다윗이고, 충직한 부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뺏은 것도 다윗입니다. 전쟁터에서 강직하게 군사를 지휘한 사람도 다윗이고, 침상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흐느껴 울며 기도한 사람도 다윗입니다. 시편 27편은 다윗의 극단적인 심리를 동시에 보여주며 우리를 위로합니다. 믿음과 의심 사이를 수없이 오가는 연약한 인생을 감싸 안아 줍니다. 


앞서 맥아더 장군의 비범한 모습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일부러 적에게 자신을 노출시켰습니다. 총알이 오가는 긴장 넘치는 순간에도 의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의 뒷모습을 함께 보여줍니다. 전쟁터에서 자기를 무모하게 드러내려는 행동에 대한 상당한 비판이 존재합니다. 맥아더는 전속 사진 작가를 곁에 두고 전쟁터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찍게 했습니다. 특유의 모자와 선그라스 등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탁월한 지도력을 지닌 훌륭한 장군으로써 계속 남들에게 보이려 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을 영웅화 했습니다. 공포에 초연한 것처럼 보이는 그에게 많은 사람이 환호를 보냈습니다. 그에게 열광하며 위대한 인물로 추켜세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인간입니다. 죽음을 2년 앞둔, 83세 나이에 사관학교에서 이렇게 연설하였습니다.

“내 꿈속에서 나는 다시 총성의 폭음과, 소총 사격의 덜컹거림, 그리고 전장의 기이하고도 애처로운 중얼거림을 다시 듣는다.”

오랜 시간, 세계 곳곳의 전쟁터를 누빈 백전노장이 비로소 남긴 솔직한 고백입니다. 전역 한 후 꽤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전쟁터의 소름 끼치는 소음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그를 괴롭혔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맥아더가 애써 영웅인 척하며 뒤집어 쓴 포장지 안쪽에 살아있는 심장이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진실은 곧 우리 자신을 올바로 이해하는 중요한 성찰을 안겨줍니다. 때때로 본문 1~3절에 기록된 다윗의 호기로운 외침을 따라 하기도 합니다. 뭔가 극적인 경험 끝에 거창한 것을 이루었다던가,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성공을 누린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빛, 나의 구원”이라며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하지만 삶의 지극히 작은 균열에도 벌벌 떠는 게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솔직한 실존입니다. 사소한 실패에도 불안을 부풀리고 위기를 과장합니다. 하나님께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말아달라고 간청합니다. 다윗과 같은 위대한 성경 인물이나 맥아더처럼 화려한 주목을 받은 장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예외없이 두려워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슬픔 가운데 오히려 새 힘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아프고 어려울 때 더욱 주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겁먹게 하는 그 모든 시련은 하나님의 빛과 구원을 향해 보다 더 생생하게 다가가게 하는 은혜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그 둘의 차이를 극복한 길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주님을 진심으로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군사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인생의 수많은 문제들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그 결과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라고 용기있게 찬양할 수 있을까요? 4~6절 읽겠습니다. 

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다윗이 온 일생을 담아 가장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는 성막 제사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성전 건설을 간절히 바랐지만 하나님께서 거부하셨습니다. 꿈이 무너졌고 좌절했습니다. 대신 다윗은 성막 혹은 성전으로 상징하는 ‘주님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다윗을 지켜 보호하신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좌절과 온갖 두려움 속에서도 예배로 모이고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며 거기에 안겨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윗은 6절에서 “하나님의 장막에서 드리는 즐거운 제사”를 언급합니다. 오늘날에 적용하면 교회로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입니다. 물론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당이 곧 성전은 아닙니다. 그리고 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인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유일한 통로는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성전 제사를 가장 충실히 넘어서는 위대한 은총의 도구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적에게서 지켜 보호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자녀를 은밀한 곳에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합니다. 오직 예배만이 참으로 신뢰할 유일한 생명의 근원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예배를 드리는 바른 태도를 발견합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감추는 순간이 아닙니다. 억지로 강한 척 자기를 꾸미는 시간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겪는 결핍과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내어 놓는 자리입니다. 도무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게 예배입니다. 나를 압도하는 어둠의 실체를 주님께 토해내고, 철저히 무력한 내 상황을 인정하는 과정입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결단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담대하게 하나님을 향해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라고 외친 이유입니다. 그가 항상 승리를 거두어서가 아닙니다. 삶의 여러 문제에 초연해서가 아닙니다. 온갖 근심에도 동요하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깊고 깊은 어둠 가운데 몸부림 치고, 주님께서 전혀 내 상황을 돌봐주지 않은 것 같은 절망을 거쳐 피워낸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임재가 지닌 의미를 비로소 깨달은 다음에 드리는 고백입니다. 


강영우 박사님의 이야기를 많이 아실 겁니다. 박사님은 열다섯 살에 친구들과 축구하다가 공에 눈이 맞아 ‘망막박리’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제 후배 목사님이 중도 실명한 분들이 예배드리는 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많은 것을 깨닫곤 하였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앞이 보이지 않아도 너무나 힘든 삶입니다. 그런데 충분한 성장기를 거친 후 시각 장애를 가진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절망 그 자체입니다. 강영우 박사님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런데 비극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장남의 실명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장애가 생긴 동생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하던 누나는 과로사로 사망했습니다. 남은 두 동생은 각자 철물점과 고아원으로 흩어졌습니다. 불과 4년 사이에 몰아닥친 비극입니다. 

강영우 박사님은 모태신앙입니다. 우리교회와 멀지 않은 문호교회 교인이었습니다. 마치 군대에 둘러싸인 것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메달렸습니다. 기도원 이곳저곳을 다니며 눈을 뜨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야속하게도 그의 애원에 귀를 막으셨습니다. 전혀 응답이 없으셨습니다.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소원을 이뤄주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결코 예상치 못한 뜻 밖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하나님은 강영우 박사님에게 학업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장애인 최로로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미국 백악관 정책차관보가 되었습니다. 눈부신 인생 역전이 이뤄졌습니다. 물론 오해 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지금 극적인 자수성가 이야기를 소개하려는 게 아닙니다. 강영우 박사님의 높은 사회적 지위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가장 깊은 어둠과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참 빛과 구원을 발견한 모범을 깨달아야 합니다. 박사님은 방송에서 이렇게 간증하셨습니다.

“시련의 연속 가운데서도 눈을 뜨지 않은 것을 오히려 축복이었습니다. (중략)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NO로 응답하셔서 지금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도에 NO라고 응답하시면 ‘내 기도는 왜 안 들어주시나’ 생각하고 원망하잖아요. 하지만, YES만 하나님 응답인줄 알았는데 NO가 먼 훗날 좋은 결과로 돌아왔어요.”

이 간증이 제게 이렇게 들려왔습니다. ‘빛이 아닌 줄 알았는데 빛이었고, 구원이 아닌 줄 알았는데 구원이었다.’ 즉, 가장 짙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했고, 제일 깊은 절망 속에서 구원을 깨달았다는 복음을, 강영우 박사님의 삶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9~12절은 참 빛이시며 구원이신 예수님을 가리켜 이렇게 기록합니다.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은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의 어둠을 밝힌 참 빛이십니다. 동시에 당신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즉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 화려한 영광 가운데 살지 않으셨습니다. 강력한 힘을 휘두르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이 세상 가장 그늘진 곳으로 향하시며 철저히 무력한 모습으로 짓밟히셨습니다. 그러다 결국 십자가 위에서 고통 가운데 부르짖다 숨을 거두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십자가의 어둠 속에서 온 우주를 비추는 진정한 빛이 뿜어져 나옵니다.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 온 세상을 구하는 구원의 능력이 살아 숨 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숨기신 것 같은 시련이 찾아올 때, 주님께서 나를 버리고 떠나실 것만 같은 절망이 덮쳐올 때,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주님을 예배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복음을 가슴에 품고,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우리 모두에게 우리 주님의 참 빛과 구원이 날마다 생생히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본문 1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고 마치겠습니다.

1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기도
참 빛이요 구원이시며, 생명의 피난처이신 주 하나님
다윗의 당당한 신앙 고백의 이면에, 우리와 같은 연약함과 불안함과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집에서 주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을 가장 바라고 소망한 그의 믿음을 닮기 원합니다. 저희 삶의 중심에 늘 예배가 자리잡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임재를 늘 갈망하게 하시며,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 참된 승리를 거두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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