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3일 토요일

예레미야 15장 10~21절 "눈물의 기도"

2017년 10월 17일,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예레미야 15장 10~21절 "눈물의 기도"

10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12 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13 그러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 네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 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14 네 원수와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라 15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17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18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20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어제 함께 읽은 15장 1~9절 말씀은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준엄하게 내리신 심판과 그 안에 역설적으로 담긴 은혜와 사랑을 기록하였습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그 말씀을 전한 당사자인 예레미야의 탄식과 거기에 대한 주님의 응답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금 읽으시면서 느끼셨겠지만 오늘 본문 말씀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운문체로 쓰였기 때문에 각 구절의 의미가 명료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열 두 구절은 상당히 복잡한 구조를 가진데다가 12~14절의 경우 전체적인 내용 흐름과도 맞지 않아 혼란을 줍니다. 따라서 본문을 정확히 해석하는 것은 상당히 난해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본문의 의도와 목적에 보다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각 구절이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지, 화자와 청자를 파악하며 어떤 대화가 오고가는 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선 10절은 예언자가 어머니께 한탄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주님께서 응답하시는 말씀이 11절입니다. 또한 15~18절은 하나님을 향한 예언자의 직접적인 간구가 등장하고 이어지는 19~21절은 그 애원에 대한 주님의 대답을 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본문은 10절과 11절 그리고 15~18절과 19~21절이 각각 짝을 이루며 중요한 대화 단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개의 내용이 각각 어떤 말씀을 우리에게 하고 있는지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0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10 아! 어머니 원통합니다.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온 세상이 다 나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싸움을 걸어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빚을 진 일도 없고, 빚을 준 일도 없는데,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저주합니다.

금세 눈치 채셨겠지만 다소 점잖게 번역한 개역개정성경과 달리 구약 원문의 생생한 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언자는 어머니를 향해 대체 왜 자신을 낳았는지 따져 물으며 탄식합니다. 유교문화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이러한 내용이 불효막심하게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장에 담긴 예언자의 의도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바로 그렇게 불손한 말을 내뱉을 정도로 자신의 삶이 저주스럽고 고통스럽다는 토로입니다. 그 이유는 온 세상에 그에게 시비와 싸움을 걸며 저주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가 문자적인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레미야서 안에도 “바룩”을 비롯한 그에게 충실한 친구들의 존재가 언급됩니다. 분명 그 외에도 그 곁에서 도움과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서슴없이 과격한 탄식과 극단적인 비유법으로 현재 그가 겪는 수많은 백성들로부터의 따돌림과 억압을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11절 말씀을 통해 이렇게 위로하십니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주님께서는 예레미야가 겪고 있는 그 모든 고난을 기꺼이 이겨낼 희망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당신께서 그를 강하게 하시며 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지금 그를 공격하는 모든 원수들이 예레미야 앞에 무릎을 꿇고 빌게 하겠다는 승리의 약속입니다.


바로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예언자는 그토록 힘겨운 절망 속에 몸부림 쳐야 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한 답을 본문 속 두 번째 대화 단락을 통해 파악할 수 있습니다. 

본문 15~18절은 앞선 10절에 담긴 예언자의 목소리를 보다 자세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부끄러움과 분노와 상처를 더욱 절절히 토로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16절 말씀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예레미야는 주님을 가리켜 “만군의 하나님”이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자신을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은 자”라고 지칭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기억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부르심이 “주의 말씀을 얻어먹은 것”으로 구체화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1장 9절에 하나님께서 그를 예언자로 부르시며 당신의 말씀을 그의 입에 두신 장면을 가리킵니다. 또한 에스겔 역시 예언자로 부름 받았을 때 주님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받아먹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본문에서 놀라운 역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가슴에 품고 그것을 전하는 삶을 살았음에도, 아니 더욱 정확히는 말씀을 맡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예언자는 극한의 고립과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가지는 중요한 본성이자 그 말씀을 따르는 모든 이들이 받아들여야할 예언의 현실입니다.

물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정신이 아닌 문자에 율법적으로 집착하여 벌이는 반사회적 행동을 제지하는 것을 두고 믿음 때문에 고난 받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단들도 자신들이 올바른 말씀을 전하는 까닭에 핍박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복음을 품고 전하는 삶이 이렇게 마냥 힘겹고 고단한 것만은 아닙니다. 분명 그 안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살아 숨 쉴 뿐만 아니라 주어진 일상 속에서 행복을 가꾸는 것은 성경 전체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본성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필연적으로 이 세상의 욕망과 불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언자들이 꿈꾸었던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해 약육강식의 질서를 거부하며 보다 더 낮아지고 섬기는 삶, 그럴듯한 이상으로 포장된 성공을 향한 탐욕 대신 지금 나에게 주어진 자리를 충실히 지키는 삶, 약자들을 짓밟고 일어나 더 높이 올라 더 많이 손에 쥐는 것을 포기하고 결핍과 여백을 유지하는 삶. 이러한 삶은 이 시대의 또 다른 바벨탑을 쌓아 올리며 또 다른 제국을 숭배하는 이들로부터 거센 공격받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말씀이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그 무엇보다 진정한 말씀임을 고백한다면, 그리하여 그 주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예언자임을 명심한다면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고난 없는 윤색된 삶은 말씀을 부정하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진리로 말미암은 그 어떤 시련 속에서도 쉽게 절망하지 말고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구원의 손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께서 본문 19~21절에서 예레미야를 향해 주신 위로의 말씀이 또한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희망의 선언입니다. 그중에서 20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20 내가 너를 튼튼한 놋쇠 성벽으로 만들어서 이 백성과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에게 맞서서 덤벼들겠지만, 너를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어서, 너를 도와주고, 너를 구원하여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품고 그 뜻을 따른다고 해서 우리의 삶 가운데 늘 행복과 기쁨만 가득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불행과 슬픔이 찾아올 때도 적지 않습니다. 그 시련 속에서 주님께 기도로 나아가 정직히 토로하고 원망하셔도 좋습니다. 위대한 예언자 예레미야 역시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눈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와 함께 계시며 도와주시고 구원하여 주신다는 진리를 더욱 분명히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그 주님과 동행하며 참된 승리를 경험하는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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