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3일 토요일

예레미야 17장 12~18절 "나를 고치소서"

2017년 10월 21일,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예레미야 17장 12~18절 "나를 고치소서"

12 영화로우신 보좌여 시작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14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15 보라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냐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 16 나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따랐사오며 재앙의 날도 내가 원하지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라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 17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18 나를 박해하는 자로 치욕을 당하게 하시고 나로 치욕을 당하게 마옵소서 그들은 놀라게 하시고 나는 놀라게 하지 마시옵소서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오늘 본문 말씀을 가리켜 다수의 학자들은 예레미야의 세 번째 고백으로 정리합니다. 이 안에는 예언자로서의 자신의 사명에 대한 그의 절절한 생각이 녹아 있습니다.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자신을 말씀의 종으로 부르신 하나님을 향한 그의 이해입니다. 먼저 12~13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12 영화로우신 보좌여 시작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13절의 첫 문장을 구약 원문의 순서를 살리면,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여, 여호와여”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은 예레미야가 주님을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굳게 신뢰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그의 신앙은 이어지는 13절 중후반부를 통해 구체화 됩니다. 여기에 보면 주님을 버리는 자들과 떠나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비슷한 표현을 거듭하며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하는 것은 구약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강조법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으나 그럼에도 예언자는 주님을 절절히 붙잡고 있다는 자신의 믿음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주님을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바로 앞 문장의 “주를 버리는 자”들이 겪을 결과인 “수치를 당할 것”과 연결시켜서 수모와 모욕을 당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체만 떼어내어 생각해본다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은 돌 판에 적힌 것과는 상반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그들의 존재가 분명히 기록되긴 하지만 그 기록은 쉽게 지워져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전체를 굽이쳐 흐르는 핵심 주제와 연결됩니다. 정의와 공평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무시하는 백성들을 반드시 벌하십니다. 하지만 그러한 심판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들이 다시금 주님께 돌아와 회개한다면 그 죄의 자취는 금세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 이면에 숨 쉬는 그분의 한없는 은혜를 새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심판은 심판입니다. 게다가 그것은 바벨론에 의한 침공이라는 역사적인 비극으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러한 심판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참 생명의 진리를 거듭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만이 생수의 근원이 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닌 것을 소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을 존재와 인격의 근원으로 여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대신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평화만을 간절히 구하며 모든 헛된 욕망을 담대히 이겨나가는 모두가 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이처럼 하나님만이 참 소망과 생수의 근원이 되시기에 예레미야는 주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14절 말씀을 구약원문의 어순을 살려서 다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를 고치소서 여호와여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여기에는 주님으로 말미암은 치유와 구원에 대한 예언자의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고백을 드러내는 형식입니다. 방금 읽어드린 어순을 유념하여 보면, 먼저 주님을 주어로 하고 자신을 목적어로 하는 능동태를 쓰고 뒤이어 자신을 주어로 하는 수동태를 쓰고 있습니다.

즉, 주님께서 고쳐 주셔야 내가 고침 받아 나을 수 있고, 주님께서 도와 주셔야 내가 도움 받을 수 있다는 마음을 독특한 문장 구조를 통해 명백히 드러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하시는지에 따라 내 상황이 결정된다는 깨달음 입니다. 참된 치유와 구원의 주체는 철저히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그 다음입니다. 물론 여기에 우리의 역할과 책임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역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먼저 앞서 나아가실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며 늘 겸손히 주님의 얼굴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이어지는 15절은 예레미야를 박해한 적들이 그에게 한 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냐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라는 조롱입니다. 그런데 구약원문에는 “이제”라는 말이 없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하나님께서 예언자에게 주신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은 암담하고 답답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고난을 지적하는 의미입니다.

이 역시 우리가 명심해야할 교훈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전까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이 땅에는 온갖 괴로운 모순과 고통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복음은 마치 거짓말처럼 들리며 여러 오해와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고난은 지금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를 비롯한 구약의 무수한 예언자들이 앞서 겪은 것임을 잊지 말고 그럴 때 일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하시길 소망합니다.

이러한 조롱 가운데 예레미야는 16절에서, 그동안 자신이 하나님께 신실하였음을 외쳤습니다. 첫 번째로 예언자로서 맡은 역할인 목자의 사명을 물리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그가 하나님 대신 전한 “재앙의 날”을 그 역시 원하지 않음에도 순종하며 외친 말씀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그의 입술에서 나온 것은 그가 제멋대로 내뱉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고 말했습니다. 즉, 그가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예언자의 사명을 신실하게 수행하였기에 찾아온 결과임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론적으로 하나님께 17~18절에 담긴 내용의 탄원을 하였습니다. 두 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17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18 나를 박해하는 자로 치욕을 당하게 하시고 나로 치욕을 당하게 마옵소서 그들은 놀라게 하시고 나는 놀라게 하지 마시옵소서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18절 앞부분을 장신대 박동현 교수님은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내 박해자들은 부끄러워하더라도 나만은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바라나이다. 그들은 깜짝 놀라 무서워하더라도 나만은 깜짝 놀라 무서워하지 않기를 바라나이다” 

이처럼 이 기도에서는 ‘부끄러워하다’라는 동사와 ‘무서워하다’는 동사를 각각 두 번씩 주어를 달리하여 대조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에, 그들이 저지른 잘못 만큼 분명한 벌을 받게 해달라고 간곡히 구하며 자신의 고백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 말씀은 예언자의 고달픈 현실을 절절히 보여줍니다. 그들은 자신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대신 전하지만 그 말씀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숱한 조롱과 핍박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예언자는 그런 대적자들을 향한 원망과 저주도 서슴없이 퍼붓는 솔직한 내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또 다른 예언자로서 부름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 땅에 오신 참된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몸소 짊어지신 십자가와 부활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삶을 통해 전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필연적으로 온갖 고난이 뒤따르는 험난한 여정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신뢰하시길 소망합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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