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7일 토요일

사도행전 18장 12~23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2018년 2월 16일, 금,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정대진 목사
사도행전 18장 12~23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13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14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16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17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3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바울은 다른 지역에서와는 달리 고린도에서 일 년 반이라는 상대적으로 긴 시간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아가야 지역 총독으로 갈리오가 새로 임명된 것을 틈타 유대인들이 그를 고소하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곳을 떠나 시리아 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18절에 보면 그러한 바울의 여정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합법적인 인정을 받은 유대교가 아닌 불온한 사상으로 낙인찍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삶은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 힘든 고난을 겪는 일입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고 눈의 가시와도 같은 그의 목숨을 노리는 많은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바울과 함께 한다는 것은 덩달아 위험에 빠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였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18절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라는 기록은 그들이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고난의 길에 동행했음을 의미합니다.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부부를 비롯한 많은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바울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전파의 사명을 묵묵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에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아도 슬픔과 고통에 함께 하려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온전히 전파되도록 기꺼이 보다 낮은 자리에서 어려움에 동참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놀라운 점은 바울이 그렇게 자신에게 유익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내어 보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 일행이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 그 부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그곳에서 더 오래 있기를 권했습니다. 이것은 바울로서도 전혀 손해가 없는 매력적인 제안입니다. 구태여 자기를 핍박하는 사람들 틈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오래 머물며 전도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그 자체도 분명 유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21절의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에베소를 떠났습니다.

21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그의 인생길에서 중요한 선택의 기준은 결코 자신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과 유익을 따라 발길을 옮기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바울의 인생 항해를 움직이는 돛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의 삶에서 자신의 욕망 자체를 무시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바울 역시 빌립보서 2장 1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렇다 해서 우리의 모든 소원이 전부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연약한 죄인인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파괴하는 어리석은 길에 욕심을 부리곤 합니다.

그러므로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평생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길에서 허무와 후회에서 벗어나 참된 평안과 승리를 얻는 길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교회는 “신명으로 신명나는” 공동체를 꿈꾸며 이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마다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기 위해 이 새벽에 기도의 자리에 모이셨습니다.

부디 바울을 본받아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깊이 헤아리며 그것을 삶 속에 충만하게 전하고 이루는 모두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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