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2일 금요일

민수기 27장 1~11절 "당돌한 기도"

2017년 8월 7일,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민수기 27장 1~11절 "당돌한 기도" 새찬송가 363, 364장

1 요셉의 아들 므낫세 종족들에게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찾아왔으니 그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2 그들이 회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휘
관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이르되 3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4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5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아뢰니라 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7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8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딸에게 돌릴 것이요 9 딸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10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아버지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11 그의 아버지의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받게 할지니라 하고 나 여호와가 너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판결의 규례가 되게 할지니라 


이 시간 “당돌한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위치한 민수기 26장 말씀은 민수기 안에 담긴 두 번째 인구 조사를 기록하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민수기”라는 우리말 성경의 이름 자체가 ‘백성들의 숫자를 센 기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신앙 조상들이 민수기의 핵심을  백성들의 수를 헤아린 것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은 민수기가 가지고 있는 삶의 자리를 보여줍니다. 다름 아닌 철저히 가부장적인 정서입니다.

신약에 기록된 족보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이스라엘의 족보는 남성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사람들의 수 역시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계산합니다. 이것을 좀 극단적으로 이해하자면, 당시 사람들은 성인 남성만을 완전한 한 인격으로 여겼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 완성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성경 안에는 그 시대의 한계와 약점이 녹아있고 그러한 까닭에 남성중심의 서술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 대표적인 대목이 바로 본문 앞, 26장의 인구조사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27장은 매우 도발적인 내용을 보여 줍니다.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 지파의 자손들 중 슬로브핫의 딸 다섯 명이 모세와 제사장 앞에 찾아와 자신들의 억울함을 하소연 하였습니다. 본문 3~4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3 우리의 아버지는 광야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거역하여 모였던 고라의 무리 속에 끼지는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다만 자신의 죄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는 아들이 없습니다. 4 그러나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가족 가운데서 아버지의 이름이 없어져야 한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 아버지의 남자 친족들이 유산을 물려받을 때에, 우리에게도 유산을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탄원을 통해 26장에 기록된 인구 조사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통계파악이 아니라 이후 가나안에 들어가 땅을 분배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그 목록은 남자들 위주로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버지나 아들, 혹은 남자 형제가 없는 여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 삶의 기반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로브핫의 딸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한 인구 조사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행되었다는 점입니다. 민수기 26장 1~2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1 염병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총수를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조사하되 이스라엘 중에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하시니”

이 말씀을 보면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 즉, 성인 남성이라는 기준을 주님께서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 기준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제기 하였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장소는 모세가 혼자 있는 집무실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27장 2절에 따르면 그곳은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모인 회막문 앞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슬로브핫의 딸들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감히 하나님의 말씀에 반기를 드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감행하였습니다. 그만큼 지금 그들의 삶에 닥친 어려움이 극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기도의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본문을 비롯한 성경 곳곳의 기록들, 그 중에서도 시편에 담긴 탄원시들을 통해 분명히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기도는 얌전한 종교의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점잔을 빼면서 고상한 모습으로 기도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런 욕망이 없는 창백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기도 역시 바라지 않으십니다.

지금 저마다의 삶 속에서 부딪히는 가장 치열한 문제들, 우리 내면을 갉아 먹는 제일 힘겨운 상황들 그리고 우리의 존재와 믿음의 중심을 흔드는 험난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안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과감히 그리고 솔직하게 토로해야 합니다. 당돌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손길이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 말씀에 따르면 모세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외친 사연을 주님께 전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7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한 말이 옳다. 그 아버지의 남자 친족들이 유산을 물려받을 때에, 너는 그들에게도 반드시 땅을 유산으로 주어라. 너는 그들의 아버지가 받을 유산이 그 딸들에게 돌아가게 하여라.”

슬로브핫의 딸들이 당돌하게 요구한 내용에 대해 하나님은 불쾌해 하거나 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그들의 기도에 경청하셨을 뿐만 아니라 앞서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수정하셨습니다. 다른 말로하면 당신의 오류를 인정하셨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이처럼 말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어쩌면 이러한 장면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뢰를 흔드는 변덕스러운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성품 자체는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다가오시는 말씀과 행동은 역동적으로 달라집니다. 그 대상인 사람들이 너무나 연약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가까이 다가오시며 낮추시는 주님의 모습을 당연히 시시각각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 연약한 우리가 감히 하나님께 당돌히 기도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화석처럼 굳은 얼굴로 다가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정한 은혜의 규칙과 신앙의 방식은 결코 그 자체가 영원불변한 족쇄가 아닙니다. 저마다 복잡한 삶 속에 구하는 기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또 바꾸길 원하시는 것이 주님의 뜻이자 죄인들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렇듯 본문 속에 기록된, 당돌한 기도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 자녀들의 곤란한 처지에 귀 기울이시며 구체적인 삶의 길을 배려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모든 기도에 귀 기울이시며 언제나 반응하고 응답하시는 주님께 온 마음을 열고 달려 나가는 모두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기도: 그 어떤 기도에도 언제나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
저마다 짊어진 고단한 삶의 무게를 주님께서 그 누구보다 잘 아실 줄 믿습니다. 험난한 아픔과 시련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 당돌한 기도를 드린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우리 역시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온전한 응답을 경험하는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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