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9일, 토,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목사 정대진
스가랴 8장 1~13절 "이제는 구원하여"
1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3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
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4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가 많으므로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5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야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7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내 백성을 해가 뜨는 땅과 해가 지는 땅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8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진리와 공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성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있었던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 날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10 이 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원수로 말미암아 평안히 출입하지 못하였으니 내가 모든 사람을 풀어 서로 치게 하였느니라 11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옛날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12 곧 평강의 씨앗을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13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인 가운데에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가 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
오늘 함께 읽은 스가랴 8장은 문학적인 통일성 없이 무척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로 시작되는 짤막한 말씀들이 한 데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스가랴 시대에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선언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수집하고 편집한 결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토막토막 끊어지는 내용임에도 전체를 아우르는 분명한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이 회복되는 희망”입니다. 그렇다면 각각의 말씀이 이러한 주님의 참된 희망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 지를 함께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2절은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인 시온을 언급하며, 시온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속성인지를 드러내 보여줍니다. 중요한 점은 2절 말씀은 스가랴 1장 14~15절을 부분적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14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15 안일한 여러 나라들 때문에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이를 통해 예언자 스가랴가 거듭해서 외치는 하나님 사랑의 특성은 바로 “질투”입니다. 이는 곧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막연한 관념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당신의 인격을 건 격정적인 감정과 의지입니다. 이는 비단 스가랴서만이 아닌 성경 전체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그 사랑에 반응하며 생각의 일부만이 아닌, 전존재와 온 인격을 다해 하나님께 다가서야 합니다.
이렇게 2절이 1장 14~15절과 연결되듯이 바로 뒤의 3절 역시 스가랴 1장 16절과 이어집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1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쳐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말씀의 내용은 곧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돌아오셔서 그 곳에 성전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 그대로 본문 3절 역시 주님께서 예루살렘 가운데 계셔서 그곳을 “진리의 성읍”이자 “거룩한 산”으로 불리게 하시겠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스가랴 시대에 아직 다 해결되지 못한 포로생활과 그 아픔의 원인인 바벨론 제국에 의한 멸망을 바탕으로 할 때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고대 중동에서의 전쟁은 한 국가와 다른 한 국가 사이의 싸움이기 전에 각 나라의 신들의 대결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대사를 다룬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투에 앞서 왕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의식은 바로 자신들의 민족 신에게 나아가 “신탁”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전쟁관이 이것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동 세계관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히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동족인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무너진 것은 물론이고 자신들마저 바벨론제국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히고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마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경험한 남유다 백성들의 내면 깊숙이 어떤 생각이 자리 잡았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받음”입니다. 더 이상 주님께서 자신들을 지켜주시지 않고 바벨론의 우상들에게 넘겨주고 달아나셨다는 배신감이 그들을 엄습하였습니다. 이것은 국가 패망 그 자체보다 훨씬 더 괴로운 고통이었습니다.
포로기 이후의 구약 신앙은 바로 이러한 난제와 절망을 해결하는 것을 최우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이 구약 성경을 최종 완성할 때 곳곳에 녹아들었습니다. 우리가 읽은 스가랴서가 그 직접적인 성과 중 하나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잠시 이스라엘을 떠난 듯 보이지만, 그래서 그로 말미암아 너무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러한 시련이 절대로 영원하지 않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오히려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비극적 결과는 그들이 오랫동안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우상을 따름으로 하나님의 질투심이 불타올라 생긴 사건임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들을 저버리신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극진한 사랑으로 함께 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결과 페르시아 고레스 왕의 기적적인 허락아래 예루살렘 성전복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믿었습니다.
이어지는 4절 이하의 말씀들은 그렇게 다시 회복된 이스라엘의 평화와 번영을 보여 줍니다. 우선 5절에 보면 성읍 거리에 어린 아이들이 가득히 뛰놀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디 바라기는 우리 교회 역시 주일 마다 교회학교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크게 울려 퍼지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학교에서 수고하시는 목회자들과 교사들을 더욱 격려해 주시고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보다 환하게 맞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들은 곧 우리교회의 다음 세대를 책임질 주역들이기 때문입니다. 5절이 담고 있는 소망도 이와 마찬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6절 말씀은 이렇게 이루어질 주님의 구원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기록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이함”입니다. 반드시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각자를 향한, 그리고 대한민국과 온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히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은혜 가운데 이루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협소한 생각의 틀로 전능하신 만유의 하나님의 손길을 제한하지 말고 놀라움과 경외감으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동참하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7~8절에서 주목해야할 단어는 바로 “내 백성”과 “진리와 공의”입니다. 이스라엘은 또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하나님의 소유가 됩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은 결코 무관한 사이가 아니라 철저한 소속감과 관계로 끈끈하게 다져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백성들임을 늘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은혜로 돌보십니다. 이 위대한 관계의 언약을 항상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그 하나님의 통치 정신은 곧 “진리와 공의”임을 명심하며 항상 말씀에 담긴 진리를 차근히 묵상하여 그 생명의 복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정의와 공평을 마음에 새기고 두려워하며 이 땅 가운데 올바른 질서와 균형을 세우는 일에 늘 앞장서야 합니다.
다음에 오는 9~13절은 8장에 있는 말씀의 토막 중 가장 길이가 깁니다. 이 단락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극적인 신분 변화입니다. 13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13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인 가운데에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가 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
그들이 “이방인 가운데 저주”가 되었다는 표현은 곧, ‘저주 받은 사람처럼 보이는 비참한 모습으로 이방인들 사이에 살아갔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바벨론에서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거대 제국의 포로로 살며 겪었을 절망과 아픔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그들을 구원하셔서 그들의 처지를 완전히 바꾸시어 정 반대로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백성들은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굳게 손을 움켜쥐고 힘을 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 성경이 증언하는 부활신앙입니다. 십자가의 절망과 죽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부활의 희망과 생명이 찬란하게 빛나듯이 바벨론 포로생활로 말미암은 고통의 무게가 더하면 더할수록 다시금 회복될 성전의 은혜는 더욱 위대할 것을 예언자는 여전히 전쟁 패배의 잔해로 어수선한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어떤 실패와 좌절에도 쉽게 무릎 꿇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 앞에 그 어떤 어둠도, 죽음도, 끝내 힘을 잃고 자취를 감추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주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승리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희망의 발걸음을 내딛는 모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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