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0일 토요일

이사야 40장 27~31절 "새 힘을 얻으리니"

2018년 2월 9일, 삼덕기억학교 설교, 목사 정대진
이사야 40장 27~31절 "새 힘을 얻으리니"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
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한 동안 추위가 잠시 누그러졌다가 다시금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쳤습니다. 감기 걸리지 마시고 부디 우리 어르신들의 몸과 마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따뜻한 온기가 더욱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어르신들 저녁 시간 되면 다들 댁으로 돌아가시죠? 사랑하는 가족들을 비롯한 익숙한 풍경과 저마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집은 다른 곳에서는 줄 수 없는 편안한 휴식을 주는 공간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정반대로 낯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불편한 환경 속에 놓이게 된다면 어떠실 것 같으십니까? 그것도 원치 않게 불쑥 그 곳에 끌려가서 기약 없이 무한정 머물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드실 것 같으신가요? 당연히 무척 괴롭고 힘들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군대에서 했습니다. 저에 대해 잘 모르시더라도 그냥 한 눈에 보시면 아실 겁니다. 제가 전혀 군대체질이 아닌 것을 말이죠. 원래 태어날 때부터 허약했고 운동에 도통 관심이 없고 계급문화와 잘 맞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들 그러하듯이 2년간의 군 복무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지한지를 처절히 깨달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영생활 자체보다 더 힘들었던 점은 그 어려운 시간 동안 느꼈던 하나님과의 거리감 이었습니다. 너무나 낯선 그곳에서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겪으면서 마치 하나님께서 더 이상 제 아픔에 무관심하고 심지어 버려두신 것처럼 느껴질 때도 종종 않았습니다. 혹시 우리 어르신들도 그런 적 있으셨나요?


오늘 함께 읽은 본문 속 상황도 이와 매우 비슷합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분문의 배경을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다른 나라에서 포로로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어떨까요? 즐겁고 평안했을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어르신들 상당수가 일제 강점기를 보내셨는데 그 시절 어렴풋이 기억나시나요? 그 때,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전쟁을 위해 죄 없는 조선 사람들을 데려다가 힘들고 위험한 일을 마구 시키면서 무시하고 괴롭혔습니다.

유다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벨론 제국에 의해 나라가 처참하게 망한 뒤 포로가 되어 끌려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어 구원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 때와 마찬가지로 바벨론 방식으로 억지로 이름을 바꾸고 바벨론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문화와 교육의 바탕에는 철저히 바벨론의 우상 숭배가 담겨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따라서 포로의 삶은 유다 사람들의 모든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너무나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힘겨운 시간 속에서 자신들의 무력함과 무지함을 분명히 실감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본문 27절에서 이렇게 하소연 하였습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새번역과 공동번역으로 각각 읽어 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야훼께서는 나의 고생길 같은 것은 관심도 두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내 권리 따위, 알은 체도 않으신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그들 고통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토로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런 그들을 가리켜 하나님께서는 30절과 31절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이번에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30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31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어르신들께서 잘 아시다 시피 연세가 있을 보다는 젊었을 때 훨씬 더 힘이 넘치고 기운 넘치셨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젊은 청년이라 할지라도 사람인지라 결국 피곤하고 지칠 때가 오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포로 살이를 하며 하루하루 고단한 일상을 보내는 유다 사람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비틀거리며 살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이 새 힘을 얻어 마치 독수리가 날개 치며 파란 하늘을 가르듯 힘차게 움직일 뿐만 아니라 아무리 뛰고 걸어도 지치지 않고 피곤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오직 주님만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이 때, “앙망(仰望)”이라는 한자말이 조금 어렵죠? 여기에 해당되는 원문의 뜻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소망” 혹은 “소망에 찬 기다림”을 의미합니다. 즉, 포로로 살아가며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비참하게 확인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소망을 품고 기다린다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힘과 능력이 함께 할 것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실제로 이 말씀대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이루어 졌습니다. 마침내 유다 사람들은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향 땅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 성전을 복구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 어떤 어려움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의 구원을 믿고 기다리며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어르신들도 때때로 너무나 아프고 피곤하고 속상한 일들 많이 겪으실 줄 압니다. 그래서 솔직히 하나님께서 나한테 관심 없는 것은 아닌지, 나를 두고 어디 멀리 계신 것은 아닌지 하는 답답한 질문들이 종종 떠오르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때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떠올리시며 진정한 희망과 용기를 품으시길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시련과 고통 속에서 건져주시고 참으로 강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주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당장 우리 뜻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어려움들은 결국 우리를 새롭게 하는 은혜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역시도 십자가 위에서 그 모든 고통을 견뎌내시며 부활의 문을 열어 젖히셨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저는 군 생활을 통해 힘겨운 순간들을 보내며 제가 얼마나 연약하고 무지한 사람인지 철저히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깨달은 귀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연약함을 아는 것이 진정 강해지는 길이고 나의 무지함을 고백하는 것이 참으로 지혜로워지는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강하고 지혜롭다고 믿으면 믿을수록 자신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걸음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어렵고 힘든 시간 속에서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대신 부활의 소망 가운데 주님의 손길을 기다리고 또 기다시시길 바랍니다. 기다림, 그 자체가 진정한 능력과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 모두의 모든 기다림을 헛되게 하지 않으시고 마침내 새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소망을 품을 때 우리를 독수리처럼 자유로이 날아오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통해 참된 능력과 지혜를 깨닫게 하시고 날마다 새 힘을 얻는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봄을 앞두고 계속 불어오는 한파 속에서 어르신들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가정 가운데 늘 평안을 가득히 주시길 간절히 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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