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6일, 삼덕기억학교 설교, 목사 정대진
출애굽기 16장 11~15절 "먹이시는 하나님"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두 달여 만에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으로 “먹이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아래 말씀 나누길 원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때로 누군가에게 오해를 받기도 하고 자존심 상하는 얘기를 들을 때도 있고 추위나 더위 그리고 피로 등 힘겨운 환경의 문제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별거 아니게 넘어가는 일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어떤 사람들은 유달리 예민하게 반응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 “굶는 것”에 예민합니다. 특별히 남들보다 식욕이 강하거나 식탐이 있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도 제때 밥을 못 먹게 되면 짜증이 느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좀 더 생각해 보면 단순히 밥으로 배를 채우지 못해서 불쾌하다기 보다는 밥을 먹는 것이 가진 상징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넬 때 자주하는 말 중 하나는 바로 “밥 먹었냐?”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와 친해지려 할 때 하는 말 중 하나도 역시 “조만간 같이 밥이나 먹자!”입니다. 이것은 밥을 먹는 것이 단순히 식욕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밥을 제대로 못 먹는다는 것은 가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거나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상황으로 금세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경우의 차이만 있을 뿐 제때, 제대로 밥을 먹는 일에 관심을 가집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에도 이러한 굶주림 때문에 일어난 사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예 살이 하던 이집트에서 탈출해서 풍성한 샘물이 가득한 엘림을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사막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한지 불과 두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난 때입니다.
혹시 어르신들 중에 사막을 가 보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실은 저도 아직 못 가봤습니다. 하지만 우리 TV와 영화와 책 등을 통해 알게 되는 사막의 특징은 무엇이죠? 뜨거운 햇살과 모레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먹을 것도 없는 곳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점점 배가 고파왔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원망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라도 만약 그런 상황에 되면 얼마든지 불평을 늘어놓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단순히 못 먹고 있다는 것만을 가지고 원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배고프다고 투덜대는 정도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더 나아가 자신들의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에게 비난을 쏟아 부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내용입니다. 바로 이집트에서의 생활이 더 좋았다는 불평입니다. 비록 노예로 살았지만 이러저러한 먹을거리가 있었던 이집트가 자유는 있지만 사막에서 굶고 있는 지금 처지보다 훨씬 더 낫다고 웅성거렸습니다.
이쯤 되면 이제 이들이 내뱉는 비난의 대상이 단순히 지도자인 모세의 무능에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더 나아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루어진 이집트 탈출 자체를 후회하며 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놀라운 구원을 거부하고 물리친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다소 위험한 생각일 수 있지만 여러분이 만약 이 때 하나님이시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이해를 돕기 위해 상황을 조금 바꿔 보겠습니다. 어느 날 어르신들께서 길을 지나고 있는데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감사해 하며 같이 길을 가다가 다른 어려움이 생겼다고 왜 자기를 구해줬느냐고 도리어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는다면 어떻게 받아들이실 것 같습니까? 당연히 황당하고 어이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벌을 내리셔도 전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뜻밖의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십니다.
본문 12절 말씀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12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원망을 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놀랍게도 심판이 아니라 정반대로 고기와 떡으로 그들의 배를 불리는 은혜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 그대로 13절에 보면 그날 저녁에는 메추라기 새들이 날아와서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었고 다음날 아침에는 천막 주위에 만나가 내려서 빵처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처럼 주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12절 후반부의 말씀과 같이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줄 그들이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반복하자면 이스라엘이 배고프다고 원망한 것은 단지 그들 배속이 비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불신했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주님을 더 이상 그들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메추라기와 만나로 먹이셨습니다. 따라서 이 역시 주님께서 단순히 그들의 배만을 채운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그들을 먹이시는, 그들의 하나님 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함을 꼭 깨달아 아시길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라는 놀라운 진리를 결코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먹이십니다. 물론 이 자리에 계신 대부분이 밥을 굶는 일은 없으실 겁니다. 제가 앞서 설교를 시작하며 굶는 것에 예민하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래서 요즘 제가 밥 굶을 걱정 안하고 사는 것에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끼니는 거르지 않을 지언정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배고픔을 겪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정에 목마르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사랑에 굶주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밥 외에도 여러 다양한 무언가를 내면 깊이 채우고자 몸 부림 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본능입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 모두는 결핍을 가진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우리에게,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러하셨듯이 먹이시고 채워주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어떤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도 쉽게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더욱 주님을 바라보며 참된 충만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그렇게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먹이시는 방법입니다. 본문 15절, 제가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두 먹을거리는 바로 메추라기와 만나입니다. 주님께서는 새 종류의 하나인 메추라기를 통해 그들에게 고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종의 빵으로 추정되는 만나입니다. 그런데 이 만나가 정확히 어떤 음식인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나는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스라엘 사람들조차 만나를 처음보고 신기해하며 놀라서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성경 원어가 <만후>인데 이것을 바탕으로 “만나”라는 그 빵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정리하자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먹이시는데 그 방법은 너무나 놀랍고 신기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방식으로 우리의 배를 채우십니다. 우리가 도저히 상상조차 못했던 길을 통해 우리의 공허함으로 찾아오시며 모든 결핍을 채우십니다. 그리하여 당신께서는 결코 우리와 남남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려 주십니다. 이러한 주님을 더욱 온전히 바라보며 참된 풍요와 채움을 경험하는 모두가 되시길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우리의 모든 결핍과 가난을 잘 아시는 하나님
주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사막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시고 늘 함께 하시며 먹이시는 분이심을 말씀을 통해 고백합니다. 비록 그 때와 방법이 우리의 기대와 경험과는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를 소유하시는 그 깊은 뜻을 따라 주어진 모든 삶의 여정을 힘차게 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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