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7일 토요일

사도행전 18장 1~11절 “그들과 함께 있었기에”

2018년 2월 15일, 목,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정대진 목사
사도행전 18장 1~11절 “그들과 함께 있었기에”

1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1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바울의 정체성을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그 중에 기능적으로 가장 적합한 직책은 아마도 “순회 선교사”일 듯합니다. 그는 이제 막 퍼져나가기 시작한 복음이 잘 뿌리내리도록 이곳저곳을 다니며 헌신적으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오늘날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지 않았던 2천 년 전에 그와 같은 사역은 여러모로 커다란 위험과 손해를 감수한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부르신 주님의 뜻을 따라 늘 긴박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옮겨 다니며 말씀을 전했기에 각 도시에 머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따르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무려 일 년 육 개월이나 되는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고린도라는 도시가 그에게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주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린도는 아테네 서쪽, 교통 요지에 천혜의 항구 도시로서 당대 최고의 무역중심지였습니다. 따라서 그곳에는 어마어마한 자본과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로 말미암아 심각한 타락이 벌어졌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물질적 풍요는 종교적 부패로 이어졌습니다. 고린도 뒤편 커다란 언덕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고린도에 몰려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그 신전에 제물을 바치고 성전 창기들과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이렇듯 고린도는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모두 끔찍하게 문란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도시 분위기가 고린도 전·후서에 고스란히 배여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여러 분파로 나뉘어 엄청난 갈등에 빠져있었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성범죄도 벌어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도시의 오염된 문화를 복음으로 이겨내지 못 한 채 도리어 그 앞에 허무하게 무릎 꿇었습니다. 따라서 고린도전후서 곳곳에 그들을 향한 바울의 탄식과 신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이렇게 그를 힘겹게 하는 그 도시에서 오래 머물며 지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남편인 아굴라는 노예출신 유대인이었고 반면 아내인 브리스길라는 로마 귀족 출신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사이입니다. 아마도 추정컨대 그들은 로마교회에서 만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브리스길라는 자신의 모든 사회적 지위와 기득권을 내려놓고 아굴라와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추방 명령에 따라 함께 떠도는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러한 브리스길라의 겸손한 성품은 단지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16장 3~4절에 바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이렇듯 그 부부는 바울의 충실한 조력자 였을뿐만 아니라 여러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긴 일꾼이었습니다. 게다가 초기 교회의 대표적인 지성 중 하나인 아볼로에게 복음을 가르칠 정도로 탁월한 식견도 갖추었습니다. 이런 그들이 있었기에 바울은 고린도에서의 험난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오래 머물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점이 고린도에서 보낸 바울의 오랜 시간을 전부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을 겪든 지간에, 더 구체적으로는 힘겹고 어려운 순간 일수록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본문 속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같은 겸손한 인격으로 그 사람의 진짜 신앙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사귐과 나눔을 이루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꿈꾸어야할 궁극적인 목적은 크기가 커지거나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더 서로에게 힘과 용기가 될 수 있는 공동체, 특별히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 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보다 기도로 하나 되며 서로를 격려하는 각 가정과 삼덕교회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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