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3일 토요일

민수기 28장 16~31절 "멈춤의 은혜"

2017년 8월 9일, 삼덕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목사 정대진
민수기 28장 16~31절 "멈춤의 은혜"

16 첫째 달 열넷째 날은 여호와를 위하여 지킬 유월절이며 17 또 그 달 열다섯째 날부터는 명절이니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 것이며 18 그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19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를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려 번제가 되게 할 것이며 20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에는 십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를 드리고 21 어린 양 일곱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22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리되 23 아침의 번제 곧 상번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24 너희는 이 순서대로 이레 동안 매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의 음식을 드리되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드릴 것이며 25 일곱째 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26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27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28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마다 십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요 29 어린 양 일곱 마리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30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를 드리되 31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저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07년 여름에 총회 파송 견습선교사로 일본에 가서 약 일 년 간 동경에 위치한 한인교회를 섬긴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곳에 간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아침부터 밖에서 요란한 확성기 소리와 사람들의 구호가 들렸습니다. 일본에 다녀오신 분은 아시겠지만 그 나라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강박적으로 조심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특별히 소음에 민감해서 유흥가를 제외하고는 길거리에서 보통 큰 소리를 지르거나 스피커 소리를 들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의아한 마음에 담임목사님께 왜 아침부터 거리가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지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목사님께서는 싱긋 웃으시며 오늘 날짜를 물어 보셨습니다. 잠시 깜박했는데, 그 때 문득 그 날이 8월 15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얘기 하셨습니다.

“전도사님, 오늘이 우리에게는 광복절이지만 일본 사람들에게는 ‘패전기념일’입니다. 그래서 매년 8월 15일 마다 일본 우익들이 거리에서 요란하게 시위하며 군국주의 부활을 꿈꿉니다.”

그 때 받은 충격이 지금도 저는 생생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체감한 것은 역사는 “기억과의 싸움”이라는 사실입니다. 같은 날, 같은 사건을 바르 이해하고 해석하며 그 기억을 전해 주는 것에 민족의 사활이 걸려 있다는 것을 분명히 절감한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쁜 삶 속에서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사건과 역사를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흐름과 반복을 통해 거듭 되새기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력의 두 기둥인 성탄절과 부활절을 통해서 주님의 성육신과 부활 사건을 매년 가슴 깊이 고백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유월절과 칠칠절의 규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모두 잘 알다시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집트 제국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칠칠절은 흔히 맥추절 혹은 오순절로 불리는 날과 같은 절기로서 유월절로부터 7주 지나서 보리 수확을 감사하는 명절입니다.

따라서 이 두 절기는 배경이나 기간 그리고 중심 성격에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19~23절 그리고 27~31절에 자세히 묘사된 절기 진행 규칙은 거의 일치합니다. 왜냐하면 둘 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크고 넓은 구원을 온 신앙 공동체가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세부적인 규칙들보다 더 분명히 이 절기들의 깊은 의미를 보여주는 명령이 있습니다. 바로 18절과 26절 모두에 담긴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라는 문장입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문장을 보다 직접적으로 옮기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을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즉, 절기를 지키는 동안에는 잠시 모든 생업을 내려두고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해야 합니다.

이렇듯 각 절기에 대한 말씀 안에는 일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성격과 제사를 드리는 적극적인 성격이 명백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 뭔가 대단한 신앙의 업적을 쌓아야할 것 같은 초조함에 빠진 우리에게 분명한 깨우침을 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보다 애쓰고 주의해야 할 것은 일단 분주한 삶의 수레바퀴를 정지시키는 것이라는 가르침 입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멈출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본문만이 아니라 모세 오경과 구약 성경 그리고 신약에 이르는 일관된 하나님의 뜻입니다. 바리새인으로 대표되는 극단주의자들의 오해와 달리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세우신 여러 율법과 규칙들이 문자 그대로 철저히 이루어지는데 그리 관심이 없으십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굳이 구체적인 예를 들지는 않겠지만, 모세 율법이 구약의 거대한 숲에서 적용될 때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인간의 강박적인 율법 준수가 아니라 그 정신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잠시 일을 멈추고 안식을 누리며 주님의 창조와 구원을 잠잠히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전혀 휴식이 필요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며 굳이 일곱 째 날에 몸소 쉬시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식일을 발전시켜 안식년을 그리고 안식년을 발전시켜 희년을 정하며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 절기의 핵심 정신입니다. 그 외에 여러 상세한 규칙들은 그저 곁가지에 불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내면 깊숙이 참된 쉼을 누리고 있는지, 아니면 껍데기에 불과한 규칙들에 강박적으로 얽매이고 있는지를 차분히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 아내는 합동 교단에 소속된 교회 출신입니다. 합동측 태생부터가 우리 교단보다 더 보수적입니다. 그럼에도 교단 자체가 워낙 크다 보니까 그 안에 다양한 편차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쎈 합동” 이 있고 “약한 합동”이 있습니다. 좀 우스운 말로 “매운맛 합동”이 있고 “순한 맛 합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가 어릴 때부터 다녔던 교회는 “정~~~말 매운 맛 합동” 교회로서 고신 측 저리 가라할 정도로 보수적입니다. 

그래서 연애초기에 사소한 오해가 조금 있었습니다. 제가 교육전도사 시절이었는데 주일 사역을 마치고 아내 교회 쪽으로 가면 반주자로 봉사하는 찬양대 연습 끝날 시각과 딱 맞았습니다. 그런데 매 주일 마다 저더러 자기 교회 근처로 오라고는 했는데 정작 만나면 부리나케 다른 동네로 서둘러 이동하곤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남자 친구랑 있는 걸 교회 사람들이 보는 게 쑥스러워서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흘러서 저랑 사귀는 걸 그 교회 사람들 거의가 다 알고 슬슬 결혼 얘기까지 나오는데도 편하게 교회 근처 식당이나 카페에 가지 않고 이상하게 주일에 보기만 하면 계속 교회에서 멀리 가려고 하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때문에 제가 아내에게 내가 창피해서 그러냐고 농담 반으로 물었는데 전혀 뜻밖의 답을 들었습니다.

자기 교회는 주일에 절대로 돈을 쓰면 안 되는 교회라서 그랬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예전에 어떤 부목사님은 싱글이었는데 어느 주일에 사정상 교회 식당이 문을 닫아서 무심결에 근처 시장에서 점심 먹다가 걸려서 짤릴 뻔 한 적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정말 살벌하게 매운맛 합동 측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남자친구랑 있는 걸 보는게 문제가 아니라 남자친구랑 같이 주일에 카페 가서 돈 쓰는 걸 안 걸리려고 그랬다고 이해해 달라고 제게 말 해주었습니다.

물론 저는 다른 교단을 비하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주일성수에 대한 열심 자체는 충분히 존중하고 또 존경합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드는 아쉬운 마음은 과연 그렇게 열심히 주일의 규칙들은 지키지만 정작 주일의 정신은 올바로 이해하고 따를지 의문이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지켜본 바로는 쉽게 쉽게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평가하고 함부로 정죄하는 일에 더 익숙해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유월절과 칠칠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구속사를 기념하는 신약의 절기들이 그 모두를 온전히 대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 본문에 읽은 절기들의 핵심은 늘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쉼입니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을 잠시 멈추었음에도 우리를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해야 합니다.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리지 않아도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이끄시는 주님의 섭리를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 살아 숨 쉰다는 것을 항상 가슴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와 구원의 역사를 결코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온전히 전하기 위해 매 주일을 그리고 오늘 하루를 더욱더 복음의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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