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8일 수요일

요한복음 14장 15-17절 "진리의 영이 오신다"

성령강림주일(청년주일), 2016년 5월 15일, 부산진교회 청년예배 설교, 정대진 목사
요한복음 14장 15-17절 "진리의 영이 오신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오늘은 성령강림절이자 스승의 날입니다. 그리고 성년의 날을 하루 앞둔 날이면서 동시에 우리 교단이 정한 청년 주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예배 후에 우리 예담교회 안에서 성년이 된 지체들을 축복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그런 까닭에 오늘 설교역시 이제 갓 청년의 길에 들어선 이들에게 집중하며 준비하였습니다. 부디 바라기는 이 시간 함께 나누는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청년정신”을 회복하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영원히 우리와 함께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직전 제자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남긴 작별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두려워 떨고 있는 그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약속을 하십니다. 다함께 본문 16절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바로 여기에 청년의 때에 깨달아야 할 소중한 첫 번째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께서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결코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와 같은 복음의 핵심 개념들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생생한 배경이 되는 성경 속의 반대상황을 주의 깊게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막연함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관통하여 주님의 제자들에게까지 이어진 유대인들의 가장 고통스런 아픔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받음”입니다. 중동의 교통 요지에 위치한 이스라엘은 그 주변에 신흥 제국이 등장할 때마다 매번 비극적인 운명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굉장한 신앙적인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그러한 주님의 함께 하심을 부정하게되는 험난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우선 그들의 조상은 무려 430년간이나 이집트에서 포로살이를 했습니다. 게다가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 제국에, 남유다는 바벨론 제국에 의해 각각 무너지고 말았고 그 결과 유다사람들은 바벨론에서 비참한 포로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시간이 흘러 기적적으로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제국에 의해 점령당하는 수모를 겪은 지 이미 오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로마제국의 통치에 맞서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지역이 바로 “갈릴리 나사렛” 입니다. 그곳은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고향이자, 그들이 일으킨 하나님 나라 운동의 근거지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로마군대가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서슴없이 저질렀던 비극의 땅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 역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하나님의 부재(不在)”로 말미암아 존재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절망에 시달렸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님은 직접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대한 가장 생생한 증거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기꺼이 포기하고 그분의 제자가 되어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주님께서 자신들의 기대와 달리 왕의 자리를 포기하고 고난과 죽임 당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그때 제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자신들과 함께 하지 않으신다는 깊고 깊은 어둠이 섬뜩하게 그들을 덮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그들을 향해, 비록 당신은 이 세상을 떠나시지만 그를 대신해서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께서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그러하셨듯이 “보혜사”로서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곁에서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그들과 함께, 그들 안에 살아가겠다고 거듭 강조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말씀드립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제가 앞서 이 말씀을 드렸을 때와 지금, 여러분이 답하는 “아멘”의 질감이 혹시 달라지셨습니까?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분명히 대조되는 “떠나 계심”에 비추어 보며, 이와 같은 주님의 임재가 가진 의미가 더 생생히 다가오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는 다는 것은 늘 우리에게 순탄한 일만 일어남을 뜻하지 않습니다. 항상 신비로운 체험과 능력을 경험하는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와 정반대로 도무지 주님께서 더 이상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으시고 완전히 버리신 것과 같은 어둠의 순간에도 그 뒤편에 밝게 빛나는 태양의 존재를 믿으며 그 햇살이 변함없이 우리를 향해 비추어 옴을 믿는 것과 같습니다.

특별히 이제 성년이 된 20살 귀한 지체들에게 권면합니다.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여러분이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 해서 해방과 자유를 누리며 즐거운 일들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이상의 과분한 책임 속에서 숨을 허덕일 때가 더 많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분명 여러분에게 더 많은 좌절과 평생 지울 수 없는 모욕을 겪는 순간도 닥쳐 올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교회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젓개 되는 신앙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엄습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순간들 속에서도 아니, 그런 시간들을 지나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 주님의 함께 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곁에, 우리 안에 분명히 살아계시는 성령님과 더불어 내면의 깊은 호흡을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비록 항상 알고 깨닫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나왔고 지나갈 길들이 가장 합당한 여정으로 이어져 있음을 반드시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이처럼 여러분과 늘 함께하시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분명히 여러분의 젊음을 당신의 선하신 뜻 안에서 영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 진리의 영

다음으로 청년의 때에 본문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할 두 번째 진리는,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께서는 “진리”의 영이라는 사실입니다. 17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우리 안에 살아계신 성령님을 쉽게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성경 안에 기록된 그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직접 성령님을 가리켜 “진리의 영”이라고 정의하십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그 진리”의 “그 영”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님의 중요한 속성인 “진리”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그” 예수님의 삶과 선포에 근거한 역사적인 실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바로 이어지는 주님의 설명으로 더욱 구체화 됩니다. 즉, 성령님께서 품고 계신 진리는 세상이 받을 수 없고 또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세상”이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고 혐오한 끝에 마침내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당시의 정치, 종교 기득권들을 직접적으로 가리킨다고 이해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요한복음 19장 37절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심문하는 총독 빌라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그러므로 성령님과 동행하는 기독 청년은 마땅히 이 세상의 불의를 바로 잡는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결코 맹신을 말하지 않습니다. 반지성과 몰상식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더욱이 진리의 영을 가슴에 품은 기독 청년은 더욱이 그러해야 마땅합니다. 문제는 이 혼란스런 세상에서 올바른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 마다 우선 현실의 복잡함을 충분이 이해하고 인식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단순한 기준으로 답과 결론을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이 시대의 주류와 기득권에서 벗어나는 생각과 선택입니다. 이것은 특정 이념과 사상을 추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당장 완전한 비주류로서 기득권의 눈 밖에 나 궁핍한 삶을 살아가라는 극단적인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일상 속에서, 힘과 돈을 가진 이들을 옹호하는 체계로 부터 멀어지도록 노력하며 나아갈 때 비로소 진리에 가까워짐을 명심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낮고 어두운 곳을 향한 일관된 길을 걸어가셨듯이, 덜 부유하고 덜 높은 곳에 설 때에만 올바른 진리와 마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 추구를 위해 반드시 가져야 태도는 모든 전통들에 의심하고 질문하는 자세입니다. 특별히 우리 삶의 신앙의 여정에 있어서 건강한 믿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올바른 의심과 비판입니다.

우리가 흔히 절대 진리로 신봉하는 대다수는 사실 그 시대의 “익숙함”일 뿐 진정한 복음의 본질이 아닌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저 없이 질문하는 태도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낯선 하나님과 마주하는 용기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온갖 문제들의 참된 해답이신 주님의 새로운 얼굴과 마주하며 성령님과 더불어 온 세계를 변화시키는 기독청년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성인으로, 기독청년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날마다 쉼 없이 험한 산을 건너게 됩니다. 하지만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결코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저마다에게 가장 합당한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주님의 놀라운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바로 이와 같이 위대한 사랑을 완성하시기 위해 성령님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참된 진리를 깨달아 가게 하십니다. 이렇듯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오신 진리의 영과 더불어 청년다움의 푸르름을 풍성히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마음 깊이 소망합니다.


기도: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이 젊음과 청춘을 주님께 드립니다. 당신의 자녀들 곁에 동행하며 그 안에 머무르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내면 깊이 초대합니다. 주님의 진리로 우리를 다스려 주시고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걸음을 멈추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리의 영을 이 땅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봉헌기도 

진리를 알게 하시고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그 위대한 은혜를 높여 찬양하며 한 주간 구별한 삶의 예물을 드립니다. 기쁘게 받으시어 주님의 함께 하심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예담 지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몸과 마음 항상 건강히 지켜주시고 그 어떤 절망과 좌절의 순간 속에서도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올해 성년이 된 청년들을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저마다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젊음을 주님 앞에 드리며 의미와 가치로 가득한 시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보냄의 말씀

목사: 사랑하는 여러분 평안히 돌아가십시오. 복음의 말씀을 들었으니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 뜻을 따르는 제자로 살아가십시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곁에, 우리 안에 항상 함께 계십니다.


예담: 아멘,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임재와 뜻을 온전히 믿고 따르지 못했던 어리석음을 뉘우칩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함께하심을 신뢰하며 그 분의 진리를 바로 알고 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주어진 청년의 시간들을 더욱 소중히 가꿔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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