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후 세 번째 주일, 2017년 1월 22일, 부산진교회 청년예배 설교, 정대진 목사
마가복음 1장 14~20절 "버려두고 따르기 전에"
기원
우리의 구원이시며 빛이신 하나님
이 시간 드리는 예배를 통해 주님의 능력 안에서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리길 원합니다. 진심으로 고백하며 회개하는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주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성경 – 마가복음 1장 14~20절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설교 전 기도(성령님의 조명을 구하는 기도)
진리의 하나님.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성령님께서 비추시는 빛을 따라 생명의 길을 올바로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설교 - “버려두고 따르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없이도 얼마든지 당신의 때에 원하시는 일들을 마음껏 이루어 가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혼자 일하시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그 사랑의 대상을 찾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누릴 대상인 온 우주와 생명체들과 사람들을 태초에 만드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홀로 살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든지 마음 편히 혼자 지내고 자유롭게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수 있으셨지만 손해와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며, 사람들과 더불어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지내며 말씀을 듣고 살아갔던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는 ‘제자’라고 부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바로 그러한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이 잡힌 후 고향 갈릴리에 오셔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다함께 14, 15절 읽겠습니다.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주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외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마침내 예수님을 통해 사람들 가까이 왔으므로 삶을 주님께로 돌이키라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전하시고 살아내신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을 구체적으로 함께 실현할 제자들을 갈릴리 호수에서 찾기 시작하셨습니다. 바로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입니다. 이 두 형제들은 모두 어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 모두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똑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먼저 17, 18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이어서 20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복음서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제자들 모두가 “버려두고 따라갔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염두에 둬야 하는 점은 그들의 직업이 “어부”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에 대해 아무것도 배운 것 없이 무식하고 가난하게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본문 속에서 드러나는 여러 정황과 당시 사회상을 봤을 때 그것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당시 “어부”는 많은 돈을 버는 매우 인기 높은 직업이었습니다. 특별히 본문 속에 등장하는 네 명의 어부들은 모두 자신들의 배와 그물을 직접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야고보와 요한의 경우는 일꾼들도 따로 고용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배와 일꾼들을 가졌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부유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앞으로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충분한 경제적 여건을 가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자들은 자신들을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그 모든 것들을 버려두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희생과 손해를 의미합니다.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일하는 회사에서 갑자기 퇴직 당했다고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부모님께서 경영하는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고,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수입이 갑자기 끊긴다면 어떨 것 같으십니까? 그것은 곧 즉각적인 가난과 결핍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시몬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많은 돈을 벌어다주는 배와 그물과 품꾼들을 기꺼이 버려두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불안정하고 불편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실제 제 주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을 포기하고 어려운 환경을 묵묵히 감수하며,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의 길에 들어서신 분들이 여럿 계십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본문 속 제자들을 대하듯이 존경심이 자연스럽게 솟아오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듯 오늘 본문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는 첫 번째 제자도가 바로 “버려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물론 이것은 지금 당장 가족, 친척 다 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선교지로 떠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본문 속 제자들의 행동 자체는 분명 일반적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러한 그들의 선택에 담긴 의지와 태도를 가만히 곱씹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과 반대되는 불의와 부정들로부터 얻는 편안함보다 예수님의 뜻을 따르며 겪는 불편함이 우리를 참으로 살리고 평화롭게 한다는 진리를 항상 명심해야합니다.
그리고 이를 마음에 새기며 작은 실천들을 옮기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자기 소유를 손에 꽉 움켜쥐는 인색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을 주위의 약하고 어려운 이웃들과 조금씩 나누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을 조금씩 떼어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동조하는 불의에서 벗어나 정의와 공평의 길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어 보길 바랍니다. 그러한 작은 “버려둠”들이 한데 모일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들이 선택한 진리의 여정에 오롯이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본문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제자들의 행동은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소유들을 버려두기만 한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앞서 읽은 본문 18절과 20절 모두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려두고 따라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지금껏 누리던 안전한 모든 삶의 울타리를 버려두었다는 것 이 자체만으로도 우리가 앞서 살펴본 대로 굉장히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그런데 그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님을 따라 그분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 이상의 어마어마한 결단이자 헌신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곧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버려둠의 연속”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예수님과 함께 불안정하게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을 향해 몰려든 많은 무리의 사람들을 맞이하고 질서를 정리하는 것을 비롯해 무척 어렵고 피곤한 여러 일들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주님의 존재 그 자체가 당시 힘 있고 돈 많은 기득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었기에 예수님의 제자로 공개적으로 알려졌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 한 일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생활보다 ‘정신’입니다. 주님께서는 단순하게 가난하고 불편한 삶 그 자체만을 추구하신 것이 아니라 본문 14, 15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결코 뜬 구름 잡는 낙원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스라엘의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짓밟는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실체적이고 폭력적인 체계에 맞서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다스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그렇게 이 세상 가운데 구체적으로 이루어져 가는 주님의 통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의 고백과 실천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제자의 삶은 단지 남들 보기에 깨끗하고 검소하게 사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때때로 안계신 듯 보이지만 주님의 손길이 지금, 이곳에서 분명히 살아 움직이고 계심을 믿으며 그 위대한 뜻에 함께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크고 화려한 곳에만 눈길을 뺏기지 않고, 초라하고 그늘진 곳에서 눈물 흘리는 이들에게 하나님과 더불어 늘 함께 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려 부르신 제자들이 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행동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버려두고 따르는 삶”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 때때로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과 돈과 시간 등을 포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을 따르며 온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전에 반드시 짚어봐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 이스라엘에서는 제자들이 먼저 스승에게 찾아가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본인이 직접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시며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앞서 살펴 본 제자들의 ‘버려두고 따름’은 그러한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과연 어떤 이유로 그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을까요? 그들의 어떤 모습들이 예수님의 마음에 들었을까요? 본문 16절과 19절 다함께 읽겠습니다.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흥미롭게도 오늘 읽은 말씀에 등장하는 두 형제들은 부르심에 대한 반응뿐만 아니라 그전에 주님께 보인 모습까지도 매우 비슷합니다. 먼저 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먼저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19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배에서 그물 고치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반드시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제자들이 많은 소유를 버려두고 주님을 따르기 전에 보인 행동들은 바로 자신들의 일상에 충실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명의 어부들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열광적으로 예배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기도하거나 성경을 많이 읽는 모습을 보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열정적으로 전도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그 대신, 그들이 어부로서 매일 반복하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들, 그물을 바다에 던지는 모습 혹은 그물을 고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주님을 위해 우리가 가진 것을 버리고 따르기 전에 곱씹어야할 제자들의 모습이자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저마다 힘겨운 한 주를 보내고 다른 약속과 휴식을 포기한 채 이 시간 매주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너무나 소중한 일입니다. 또한 이 자리에 함께 찬양하고 기도 하는 것 또한 주님께서 너무나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여러 모양으로 열심히 봉사하는 것 역시 정말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을 주목하신다는 사실 또한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신앙 혹은 건강한 제자도에 대해 단순히 교회 생활을 열심히 잘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착각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듯이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삶은 결코 교회 안에서의 생활만으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교회만이 아니라 모든 일상의 시간과 공간을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우리 삶의 진정성과 성실함 역시 항상 교회를 넘어 가장 사소한 생활 속으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눈길을 주실 때, 교회에서의 모습만을 보지 않으시고 가정에서 부모님과 자녀들 그리고 형제, 자매들에게 어떻게 대하는 지를 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예배 모습만을 보지 않으시고 직장에서의 행동을 보십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 곁에 있는 가까운 이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섬기며 일상을 소중히 가꾸지 않는다면 주님의 부르심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게 됩니다. 오히려 아무리 대단한 것을 버리고 거창하게 예수님을 따른다고 해도 하루하루의 삶을 등한히 한다면 그것은 도리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더럽히고 일그러뜨리는 것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몇 달 전에 제 아내의 교회 동생들이 부산으로 여행을 왔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반가운 만남을 가지고 수다를 떨고 온 아내가 그 내용을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세상 속에서 신앙을 지켜가며 살아가는 일이 매우 힘겹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 중에서도 계속 제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교회 동생 중 한 명이 다니는 회사의 팀장이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출근할 때마다 성경을 펼쳐 읽으며 묵상하고 큐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매번 큐티 책을 덮을 때마다 팀원들에게 트집을 잡고 격하게 신경질을 낸다고 제 아내에게 하소연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이름 모를 팀장님의 신앙을 함부로 부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 제가 판단할 영역이 아닙니다. 그렇게 매일 마다 출근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곱씹어 읽는 마음 자체는 분명 너무나 소중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 마음을 아프게 하고 답답하게 한 것은 만약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생활만이 아닌 일상생활도 주목하고 눈 여겨 보신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과연 그렇게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대신에 자기와 가장 가까이에서 제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부하직원들에게 더욱더 사랑을 쏟고 낮아지고 섬겼다면 그 분이 믿음이 더욱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영향력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제 가슴 깊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제자로서의 저의 삶을 돌이켜 보며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가 당신께로 나아가기 전에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마음의 귀를 언제나 주님께 바짝 기울이며, 우리를 부르실 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기꺼이 버려두고 따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전에 우리가 늘 만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우리가 항상 하는 일상의 일들을 통해 주님 눈에 기쁨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올바른 제자들로서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다스림과 은혜와 평화를 널리 전하는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설교 후 기도
늘 한결같은 눈길로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우리가 집착하고 욕망하며 의지하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것들을 더욱 소중히 지키고 가꾸며 일상 가운데 먼저 주님의 뜻을 실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삶의 자리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봉헌기도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신 하나님
삶 깊숙이 직접 찾아오시어 진리와 평화의 도구로 부르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한 주간 삶으로 구별한 예물을 드립니다. 기쁘게 받으시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세우는 일들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예담청년들을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고단한 일상 중에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노력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어려운 관계 속에 인내하며 포용하며 겪는 상처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여러 미숙함과 실수들로 인해 자책하며 스스로를 원망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대신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은 참된 위로와 능력 가운데 몸과 마음의 건강을 누리며 밝고 행복한 나날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파송의 말씀
목사: 사랑하는 여러분 평안히 돌아가십시오. 복음의 말씀을 들었으니 일상을 가꾸며 욕망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살아가십시오. 우리와 함께 사귐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시고 생명의 길로 불러 주십니다.
예담: 아멘! 일상을 소홀히 하며, 부르심 앞에 머뭇거린 어리석음을 뉘우칩니다. 주어진 작은 일들과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며 살아가겠습니다. 주님! 참된 제자로 우리를 바르게 세워주시옵소서. 아멘.
축도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여러분을 지켜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얼굴을 여러분을 향해 비춰 주시고,
여러분을 은혜롭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얼굴을 여러분을 향해 드시어,
여러분에게 평화 주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사귐이
일상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가며
복음을 위해 욕망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르는
예담 청년들과 항상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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