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8일 수요일

사도행전 8장 14-25절 "구입불가"(求入不可)

오순절 후 열 일곱 번째 주일, 2016년 9월 11일, 부산진교회 청년 설교, 정대진 목사
사도행전 8장 14-25절 "구입불가"(求入不可)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인간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구매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구약 성경과 역사 그리고 오늘날의 대표적인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구약성경의 한 장면을 떠올리시길 바랍니다. 출애굽의 장엄한 역사적 환희를 만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세 매우 심각한 위기 앞에 놓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을 광야로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의 언약을 수여받기 위해 산으로 올라간 이후 수십 일이 지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본 백성들은 매우 커다란 혼란과 불안 속에서 다함께 모여 대제사장 아론에게 강력한 음성으로 요구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거친 요구 앞에서 아론은 이렇게 응답합니다.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그러한 아론의 말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저 없이 자신들이 소유한 금붙이들을 아론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귀금속들을 모아 아론은 이집트에서 갈고 닦은 세공실력을 바탕으로 화려한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스라엘 군중 앞에 내보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그들이 원한 바대로 신(神)을 ‘협동 구매’하였습니다. 이때 그들이 외친 소리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값비싼 소유를 지불하며 구입하기 원했던 존재는 결코 새로운 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눈앞에 놓인 금송아지를 가리켜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해 낸 야훼 하나님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아론은 이를 확증이라도 하듯이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주님의 절기를 선포했고,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란의 잔치를 열고 즐겼습니다.


이 사건을 기억하면서 깊이 명심해야할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첫 계명에서 엄숙히 명하셨듯이 당신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매우 노여워하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보다 더욱 용납하지 못하며 격노하시는 죄는 바로 하나님을 우상화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처한 위기 앞에서 금덩이를 들이밀며 신을 구입하기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유한하고 상대적인 금송아지를 가리켜 무한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열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세는 그 끔찍한 광란의 현장 가운데 그가 산 위에서 들고 내려온 말씀 판을 집어 던짐으로써 왜곡된 예배를 종결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구입한 신, 곧 금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향해 나아온 레위 지파 사람들을 모아다가 심판의 명령을 내리고 그날 하룻밤에 성인 남자만 약 삼천 명 가량이나 죽임 당하는 참극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대체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끔찍한 하나님의 심판 앞에 무릎 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자신들이 가진 소유로 하나님을 구입하려는 무모하고 오만한 시도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들에게 구매당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인간이 자신들의 욕망으로 빚어낸 그 어떤 무엇도 하나님의 영광을 대체할 수 없음을 오늘날까지 여실히 드러내 보이십니다. 


다음으로, 역사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바티칸시에 위치한 성베드로 성당은 지금도 로마 가톨릭의 총본산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 대성당은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무려 25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349년에 완공된 이후 수많은 외침에 의해 약탈당하고 본래의 그 화려한 위용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1000년이 훨씬 지나서 1503년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을 모아 성 베드로 대성당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재건축할 계획을 세우고 거액을 들여 기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레오 10세가 즉위하였습니다. 그는 전임 교황이 세워놓은 계획에 따라 베드로 대성당 공사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막대한 공사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이때, 그런 교황 레오 10세와 독일 브란덴부르크의 ‘알브레히트’는 밀약을 맺습니다. 그가 마인츠와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좌와 할버슈타트의 감독 좌를 교황으로부터 얻어내는 대신에 그는 교황에게 일만 두캇이라는 거액을 지불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교황청으로부터 8년간 그의 관구에서 면벌부를 판매할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그는 판매금의 절반은 교황에게로 보내고 나머지 절반은 자신이 취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알브레히트가 특별 고용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도미니크 수도회에 속한 수도사 ‘테첼’입니다. 테첼은 화려한 언변으로 면벌부로 말미암는 혜택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묘사하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선전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돈궤 속에서 돈이 쩔렁 울리자마자 연옥에 있던 영혼이 나온다.”


이처럼 16세기 유럽 교회는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에 의해 심각하게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먼저 교황은 자신의 권력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대성당 건축을 무모하게 강행하였고 알브레히트를 비롯한 많은 상류층들이 이러한 교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생한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왜곡시키며 혹세무민 하여 엄청난 양의 면벌부를 팔아치웠습니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유혹에 넘어갔고 교황청의 선전에 동조하였습니다. 그들은 면벌부를 사면 죄로 말미암은 벌을 깨끗이 면제 받으며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비록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그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금송아지 앞에서 그러하였듯이 하나님을 구입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금송아지 대신 면벌부를 손에 쥐어들고 주님을 소유하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교회는 낱낱이 찢겨졌을 뿐만 아니라 개신교와 가톨릭이 각각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무려 30년간이나 치열하고 비참한 전쟁을 치러 냈습니다. 그리하여 유럽 전체 인구의 10%가 감소하였고 독일의 경우 1600만 인구에서 600만 명으로 줄고 말았습니다. 대체 무엇이 이토록 끔찍한 비극을 낳게 했을까요?


인간이 하나님을 구입하려고 할 때, 주님의 교회를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변질시키고 그분의 사역을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 시킬 때, 그로 말미암아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수많은 이들이 무고한 피를 흘려야했음을 역사는 이렇듯 우리에게 생생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대학 시절 제 고향 친구가 섬기는 교회에서 어떤 집회가 열렸습니다. 마침 교회가 저희 집과 무척 가까웠기에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 겸 해서 저는 그 집회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받은 안내지 중에 무척 인상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 제목이 이러했습니다. “‘긍정의 힘’과 함께하는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회” 저는 그 안내지를 받아본 순간 무척 서글퍼졌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그 거룩한 40일간 긍정의 힘을 묵상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이 너무나 마음 아팠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2005년 5월에 출간된 이 책은 미국에서만 400만부 넘게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2005년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 정도로 기독교 서점과 일반 서점을 통틀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 서적 판매 순위에서 지금까지 계속 10위권을 지키고 있고 심지어 일반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고순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출판사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은 시리즈를 출판하였습니다. “긍정의 힘 실천 편”, “긍정의 힘 묵상 편”, “긍정의 힘 성경공부 편”, “어린이를 위한 긍정의 힘”, “긍정의 힘 365 Daily Calender”, “직장인을 위한 긍정의 힘 성공 편” 뿐만 아니라 다른 출판사에서 유사 상품들을 출판 했는데 “긍정의 힘을 키우는 셀프 코칭 39”, “성공을 부르는 긍정의 힘”, “긍정의 힘을 믿어라”, “100% 인생을 사는 긍정의 힘”등이 그와 같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지난 십 년 전 한국 교회는 그야말로 “긍정의 힘 신드롬”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책에 열광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한마디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 안에 긍정적인 이상을 품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실현하도록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네 인생의 희비가 단순히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로 나누어 질 수 있을까요?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 과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분일까요? 아쉽게도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많은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위로의 음성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복음은 아닙니다. 단지 복음을 위장한 변형 심리학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긍정적인 삶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의 ‘진정의 삶’이며 그것은 곧 참된 헌신으로써 자기 부정과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살려고 발버둥 쳐봐도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가난과 고통가운데 절망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끔찍한 상처를 주면서까지 이러한 책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욕망을 성경이란 이름으로 가려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를 포함한 수많은 성도들이 자기들의 입맛에 따라 마음에 드는 성경 구절 몇 군데를 단편적으로 뽑아서 이것을 자기 편한 데로 이용하는 오류를 긍정의 힘은 생생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소유로 삼으려는, 그리하여 하나님을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드러난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오늘날 부패한 한국 교회를 향한 이 세상의 끝없는 비난은 바로 이러한 죄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구약 시대는 물론이고 역사이래로 하나님을 구매하고 소유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수도 없이 반복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실제로 수없는 우상들을 만들어 내고 그것들을 자신들의 욕망의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주님을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들에게 구매당하지 않으셨고 인간의 오만한 도전 앞에 매번 자신의 의로움을 생생히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이처럼 하나님을 구매하려 했던 인간의 어리석음과 그에 대한 응답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에 매우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오랜 세월 민족적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소외당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로 파송하였고 그곳에 도착한 두 사도는 성령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그곳에 있는 단 한 사람에게도 지난날 오순절 다락방에서 나타난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간절히 기도하며 그들에게 안수 하였는데 놀랍게도 그들 가운데 성령님께서 임재하시는 역사가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이 신비한 사건을 목격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이한 마법으로 사마리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마술사 시몬으로서 얼마 전 빌립에 의해 복음을 영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 날, 막대한 돈을 사도들에게 지불하며 이상한 요구를 하였습니다.


18, 19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마술사 시몬은 지금 분명히 사도들에게 돈을 건네며 나 역시 당신들처럼 누군가에게 안수할 때 성령님께서 임재 하도록 거래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주의해야할 성령님에 대한 흔한 오해를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하나님에 대한 무언가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과 더불어 동등한 위격을 지니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이십니다. 


따라서 지금 마술사 시몬이 돈을 내밀며 성령님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것을 요구한 것은 곧,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입하려는 어리석은 시도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예담 청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떨까요? 혹시 우리도 성경과 역사 속에 무수히 등장하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님을 구입하고 소유하려는 미련한 요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거액을 헌금하여 복을 받아 좀 더 많은 재물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까? 남들보다 성경을 더 많이 읽고 기도를 더 오래 하며 봉사를 더 많이 한 덕분에 화려한 성공을 거두고 소원했던 많은 것들이 더욱 쉽게 실현되리라고 착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이처럼 우리가 가진 그 무엇으로 그리고 신앙이라는 이름 안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노력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해 욕망의 성취를 요구할 때 그것은 흡사, 시몬이 은전을 들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취했던 행동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다름 아님 하나님을 구매하고 소유하며 조종하려는 어리석은 죄입니다. 그런 오늘날의 시몬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20~21절 말씀 다함께 읽겠습니다.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욕망에 찌든 손으로 때 묻은 은전을 들이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은 끊임없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소유하고 조종하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결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그와 같은 인간의 어리석은 시도들을 매번 그 ‘은’과 함께 헛수고로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인간이 결코 하나님을 소유할 수 없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미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소유하셨기 때문입니다. 태초 이래로 우리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너는 내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당신의 소유됨을 확증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것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위에서 바로 자기 자신을 지불하여 우리를 완전히 소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렇게 온 세상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신앙고백의 핵심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을 구입하고 소유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며 주어진 인생을 허비하며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미 우리를 소유하시고 붙잡으시는 주님의 손을 신뢰하며 사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구입하려는 어리석은 손짓을 향해 내리는 심판들을 이제 종결하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억지로 끌고 가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아닌 이미 자신을 붙잡고 계신 주님의 손길을 따라 기꺼이 하나님 나라를 넓혀가는 이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우리 손에 움켜쥔 모든 빛바랜 은전들을 가만히 내려놓길 원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빈 손을 그 분께 내어 맡길 때 주님께서는 두 손에 가득히 그 분의 은혜와 평화를 가득히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라는 책망 대신, “이미 너는 내 것이라”라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 온전히 모든 삶을 내어드리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설교 후 기도 

우리 모든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
때때로 지난날 금송아지 앞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면벌부를 손에든 중세 유럽 교인들처럼 그리고 마술사 시몬처럼 하나님을 구입하고 소유하려는 어리석은 잘못을 저지르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미 주님께서는 우리를 소유 하셨기에 결코 사람들에게 매이지도 조종당하지도 않으심을 믿습니다. 손에 움켜진 모든 헛된 은전들을 내려놓으며 그 위에 따사로이 포개진 주님의 손길을 따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자기 스스로를 지불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봉헌기도 

우리의 모든 존재를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
우리를 구하시려 아들을 내어주신 놀라운 은혜를 높여 찬양하며 한 주간 삶으로 구별한 예물을 드립니다. 기쁘게 받으시어 돈을 숭배하는 어리석음을 깨우는 일에 소중히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예담 청년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저마다 겪는 여러 모양의 가난으로 괴로워하며 흘리는 눈물을 닦아 주시고 돈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이번 추석 연휴를 통해 몸과 마음의 쉼과 회복을 주시며 보다 넉넉한 미소로 곁에 있는 이들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보냄의 말씀
목사: 사랑하는 여러분, 평안히 돌아가십시오. 복음의 말씀을 들었으니 돈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십시오. 우리를 소유하신 주님께서 모든 삶을 책임지시며 항상 신실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예담: 아멘! 돈으로 신앙을 증명하고 평가하며 하나님을 소유하려 하였던 죄악을 회개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 삶의 주인이심을 늘 명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주님! 욕망의 유혹에 벗어나 복음 안에 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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