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서울: 갈라파고스, 2007)
작성일: 2008년 5월 12일
콜론(:) 이후는 내 감상
한국어판 서문
북한의 2,300만 인구의 다수가 단백질, 비타민, 지방, 그리고 이른바‘미량 영양소’의 만성적인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다섯달 정도의 춘궁기에는 고통이 특히 심하다.
2004년 유니세프와 FAO는 북한 아동의 영양 실태에 관한 광범위한 조사에 착수했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15세 미만 아동의 37퍼센트가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수유모의 30퍼센트가 영양실조로 빈혈증세를 보여 아이들에게 충분한 젖을 줄 수 없는 형편이다. (19쪽)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2006년 5월 10일 평양에서 세계식량계획(WFP: World Food Programme)의 아시아 지역 책임자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약속한 일이다. 그 유효기간은 2년이다. (20쪽)
: 정확히 일주일이 지나면 그 유효기간의 만료일이 다가온다.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외교가 이와 같은‘인도적 지원’에 순순히 협력할 지 의문이다.
아프리카 53개국 중 37개국이 거의 순수한 농업국가. 그들의 농업은 유럽연합에 의해 체계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은 서서히 변화하는 공공의식에 있다. 얼만 전까지만 해도 수천만 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수억 명이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런 일로,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현재는 그 주범이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 경제 질서라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21~22쪽)
변화된 의식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참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 (23쪽)
1. 일상풍경이 된 굶주림
하지만 잘사는 서구 사람들에게 그런 끔찍한 장면은 별로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아.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소말리아인들의 참상은 우리에게 그냥 평범한 일이 되고 말았어.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은 소말리아가 겪는 끔찍한 굶주림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야. 소말리아 남부의 갈카스크, 콜바, 두기우마, 제릴라 일대에는 1년 전부터 극심한 기근이 계속되어서, 문자 그대로‘시체의 산’을 이루고 있다는 구나. 그리고 너는 이런 희생자들을 좀처럼 볼 수가 없어. 왜냐면 스위스의 TF1, RA1, 독일의 ZDF, 영국의 BBC 같은 서방 언론의 카메라들은 이런 현장에서 몇 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이테오피아의 오가덴에 세워져 있거든. 그러니까 네가 텔레비전에서 보는 사람들은 그나마 국경을 넘어 오가덴의 난민 캠프까지 이동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지. (27쪽)
자기 민족을 망치는 범죄자들은 바로 그 군벌 우두머리들이로군요?
그렇단다. (30쪽)
2. 8억 5,000만의 굶주리는 사람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라는 조직이 있는데, 이 조직은 1999년 한 해 동안 3,000만 명 이상이‘심각한 기아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어. 여기에‘만성적인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숫자까지 합치면 기아 인구는 8억 2,300만 명 정도가 된다는 얘기야. (31쪽)
시각 장애를 예로 들어볼까? 1980년 이후 영양실조나 저개발로 인해 매년 평균 700만 명이 실명하고 있어. 그 대부분이 아이들이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는 맹인의 수가 5,000만에 달하고, 1억 4,600만 명이 트라코마(눈의 결막 질환)에 감염되어 있단다. ~~ 그들에게 규칙적으로 비타민A를 복용시키기만 해도 그런 상태를 비약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구나.
1990년에는 8억 2,200만 명, 그 후 1999년에는 8억 2,800만 명(2005년에는 8억 5,000만 명)이 기아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어. 이런 수치는 두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어. 첫째는 기아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특히 남반구에서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극심한 영양실조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수를 인구증가율에 비교하면 기아인구의 비율이 약간 줄어들었음을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지. (32쪽)
동남아시아에서는 인구의 18퍼센트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단다. 아프리카에서는 인구의 35퍼센트,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지역에서는 약 14퍼센트가 굶주리고 있지.‘심각한 영양실조’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4분의 3은 농촌지역 사람들이야 나머지 4분의 1은 제3세계 대도시와 그 주변의 빈민촌 사람들이고. (33쪽)
부유한 나라 사람들도 굶주릴 수 있어. 러시아가 바로 그런 예야. 러시아는 세계적으로 금, 우라늄, 석유, 천연가스 생산을 선도하고 있지. 군사력으로는 세계 2위의 국가란다. 콩고의 경우는 더 심해. 콩고는 중요한 지하자원을 보유한 나라지만,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지. 지구상에서 곡물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인 브라질에서는 살인적인 금융과두제(금융 소수 지배제 : 소수의 거대한 금융 자본이 한 나라의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는 제도. 레닌은 이것을 제국주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 징후의 하나로 꼽았다.)가 모든 중요한 물품을 독점하고 있어. 그래서 이 나라 북동부에서는 영양실조가 만연하면서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는구나. (35쪽)
: 이명박 정부가 궁극적으로 원하거나 혹은 의식하지 않게 흘러가는 경제정책의 방향이 바로‘금융과두제’가 아닐까? 브라질의 모습이 남의 나라 일로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불안감은 부디 어리석은 기우이길 바란다.
3. 기아는 자연도태?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운명?
오늘날에는 19세기 같은‘물질적인 결핍’이 사라지게 되었지. 하지만 벌서 사라졌을 것 같은 기아문제는 아직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어.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굶주림은 비극적인 방식으로 더 심해지고 있어.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그런 식으로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매년 수백만의 인구가 굶어죽고 있는 거야.
그뿐 아니란다. 지구는 현재보다 두 배나 많은 인구도 먹여 살릴 수 있어. 오늘날 세계 인구는 60억 정도(세계 인구는 2006년 2월 26일 현재 65억 명을 넘어섰다)되지. 하지만 1984년 FAO 평가에 따르면, 당시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지구는 120억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거였어. 먹여 살린다는 의미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2,400~2,700칼로리 정도의 먹을거리를 공급할 수 있다는 얘기지. 물론 각 개인이 필요로 하는 칼로리의 양은 나이, 직업, 또는 거주지역의 기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이야. (37 쪽)
자연도태라. ~~ 그러니까 기아가 산아제한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는 거야.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자연도태설. 이 개념에는 무의식적인 인종 차별주의가 담겨 있어.
그런 엉터리 개념을 맨 처음 사용한 건 누구였나요?
18세기 말 영국국교회 성직자였던 토머스 맬서스라는 사람이었어. ~ 가난한 가정은 자발적으로 산아제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조나 지원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했어. (41쪽)
: 멜서스가. 성공회 신부라는 사실을 처음을 알았다. 성직자가 도리어.. 가장 하나님의 뜻을 반하는 일들에 앞장설 수도 있다는 건 역시 불변하는 역사적 진리인가?
맬서스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렸지만,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키거든. ~~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진정시키고,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분노를 몰아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맬서스의 신화를 신봉하고 있어. 끔찍한 사태를 외면하고 무관심하게 만드는 사이비 이론을 말이야. (43 쪽)
: 혹 나 역시, 치밀히 가증스럽고도 역겨운 사이비 이론에 매몰되어있지는 않을까? 섬뜩하다.
5. 생명을 선별하다.
이런 광경은 아빠도 텔레비전에서 여러 차례 본적이 있어. 그때마다“기아는 부드러운 죽음이다. 점차 쇠약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고통 없이 죽는 것이다.”이런 식으로 아빠 자신을 세뇌시키고 있었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단다! 누더기 속에서 일그러진 작은 얼굴들은 그들이 가공할 고통을 겪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어. 작은 몸들이 흐느끼며 오그라들고 있었지. 엄마나 누이들이 때로 숨진 아이의 얼굴에 가만히 수건을 덮었어. (52 쪽)
정말 무자비한 선별작업이었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모두에게 배급하기에는 식량과 정맥주사, 비타민제, 프로테인이 충분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몸과 뇌가 아직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되지 않은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구하고자 노력했어.
비쩍 마른 손목에 비닐밴드를 두른 엄마와 아기는 그 다음날 식량배급을 받으러 왔겠지. 하지만 간호사가 돌려보내야만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선별작업을 해야 하는 간호사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해볼 수 있겠니? 간호사는 엄마들에게 이렇게 말해야만 해.“댁의 아이는 너무 약하고, 우리의 배급량은 너무 빠듯해요. 그래서 아이에게 손목밴드를 줄 수가 없어요.”그럴 때 엄마의 마음은 어떻겠니? 아빠가 15년 전 아고르다드에서 본 이런 광경은 지금도 매일 아침, 차드에서 수단까지 시에라리온에서 소말리아까지, 아니 제 3세계 거의 모든 지역의 수백 개 병원과 난민 캠프 입구에서 되풀이되고 있단다. (55~56 쪽)
6. 긴급구호로 문제해결?
대개‘경제적 기아’의 희생자들은 뒤늦게 구호단체에 보고되는 경우가 많단다. 제3세계의 많은 정부들이 자신의 나라가 처한 상황을 오랫동안 외부에 알리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 쓸데없는 자존심에서 그러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은 행정기관이 사태파악을 소홀히한 탓이지. (57 쪽)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어. 긴급구호는 쉬운 일이 아니고, 아주 잘 훈련된 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영양불량이 심각한 상태에 있는 아이들은 면밀한 계획에 따라 신중하게 치료해야해. 굶주린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먹을 것을 주면 오히려 위험하단다. (58 쪽)
7. 부자들의 쓰레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먹을거리
‘구조적 기아’를 정의하기는 더 어려워. 굶주린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끝도 없이 헤매거나, 뼈와 가죽만 남은 여자들이 불상한 아이를 안고 난문 캠프 앞에 길게 줄을 서는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지. (60 쪽)
세계 곳곳에서 수백만의 빈민이 부자들의 쓰레기로 연명하고 있지. (62 쪽)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세계 어디서나 그런 광경이 연출되고 있지. 기생충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음식 쓰레기로 연명해야 하다니......
카림, 그런데 더욱 비참한 것은 배고픔의 저주가 세대에서 세대로 대물림된다는 거야.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린 수백만의 엄마들이 매년 지구 곳곳에서 수백만의 건강하지 않은 아이들을 낳고 있어. (63 쪽)
8.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무덤
1분에 250명의 아기가 이 지구상에 새로이 태어나는데, 그 중 197명이 이른바 제3세계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난단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곧 이런‘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 묻히는 운명을 맞는 거야.
레지 드브레(프랑스의 철학자)는 이들을 가리켜“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했어. (65~66 쪽)
9. 소는 배를 채우고, 사람은 굶는다?
카림, 너 혹시 전세계에서 수확하는 옥수수의 4분의 1을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72 쪽)
프랑스의 르네 두몽이라는 농학자가 연구한 바로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피드 롯의 절반에서 연간 소비되는 옥수수의 양이,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면서도 만성적인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잠비아 같은 나라의 연간 필요량보다 더 많다는 계산이 나왔어. (73 쪽)
또 다른 문제는 세계시장에 비축된 식량의 가격이 종종 인위적으로 부풀려진다는 데 있어. 세계시장에서 거래되는 거의 모든 농산품 가격이 투기의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은 알고 있니? 미국 시카고의 미시간 호숫가에는 위압적인 건물이 솟아 있어. 바로 시카고 곡물거래소야. 세계의 주요 농산물이 거래되는 곳이지. 이곳에서는 몇몇 금융 자본가들이 좌지우지하고 있어. 사실 거래는 몇 안 되는 거물급 곡물상의 손에서 결정돼. 그들은 몇 사람 안 되지만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 앙드레 S.A.(스위스), 컨티넨털 그레인(미국), 카길 인터내셔널(미국), 루이 드레퓌스(프랑스)등이야. 그들의 상업함대가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전세계 곡물의 매매가를 결정하고 있단다. (74 쪽)
11. 시장가격의 이면
국제적인 거래가격은 어떻게 정해져요?
물론 이른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정해진단다. 그러나 또한 일부 곡물 메이저와 그 밑의 투기꾼들의 조작을 통해서도 결정돼. 덤핑 전략이나, 또는 반대로 시장에서 상품을 거두어들이는 전략을 통해서 말이야. ~~ 가격은 단 한 가지 원칙에 복종해. 바로 이윤극대화라는 원칙이지. 시카고 거래소를 주름잡는 사람들은 차드, 에티오피아, 아이티 같은 가난한 나라의 정부가 높은 가격을 감당할 수 있을 지 따위는 눈곱만큼도 고려하지 않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매주 수백만 달러를 더 벌어들이는 것이지. 배고픈 자들의 고통? 맘소사, 그들을 위해서는 유엔이 있고 국제 적십자가 있잖아 하는 식이란다. (75~76쪽)
12. 세계에서 식량을 가장 쓸모없게 만드는 남자
피슐러는 왜 남아도는 식량을 아프리카나 브라질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지 않지요?
유럽연합은 나름의 논리를 따르고 있어. 자국의 농민들을 살려야 하고, 그 때문에 농산물 가격을 높게 유지해야 해. 배고픈 사람들을 돕는 것은 FAO나 WFP의 과제일 따름이지. 하지만 이들 국제기구는 우선적으로 긴급한 지역만 도울 수 있을 뿐이야. 8억 이상이 고통 받고 있는‘구조적 기아’, 심각한 영양실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식량의 가격이나 생산량의 결정, 그리고 식량의 공평한 분배 등에 대해 FAO나 WFP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야. 세계시장만이 힘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그 시장은 아무 잔인하단다. (80쪽)
15. 무기로 변한 기아
이따금‘기아를 무기로 삼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이지요?
그 말은 기아와 관련한 가장 끔찍한 면을 보여준단다. 몇몇 나라에서는 국민들을 폭력적으로 복종시키려고 식량을 의도적으로 끊고 있거든. (94 쪽)
이라크에서 유엔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다가 최근에 퇴직한 아일랜드 출신의 데니스 할리데이에 따르면, 1994년 이후 매년 6만 명의 이라크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의약품 부족으로 죽고 있다고 해. 상황은 계속 나빠져 가고 있어. 유네세프는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봉쇄로 인해 요즘 5세 미만의 아이들이 매달 5,000~6,000명이나 생명을 잃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어. 매일 200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셈이지. 할리데이는 1999년 1월 18일,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했는데,<리베라시옹>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기사를 맺고 있어.“이라크에서는 유엔이 민족살인의 주범이 되고 있다.”
16. 기아를 악용하는 국제기업
세계 제2위의 식품회사인 스위스의 네슬레와 관련한 유명한 이야기 한 가지만 들려주마. 1970년 1월 1일 칠레의 좌파정당과 노동조합이 연대한‘인민전선’이라는 동맹이 101가지 행동강령을 발표했어. 그 중 제 1항은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들의 후보가 승리할 경우,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겠다는 것이었지. 당시 칠레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가 많은 아이들의 영양실조였거든.
1970년 9월 드디어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고, 인민전선의 후보인 살바도르 아옌데가 36.5 퍼센트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어. 그리고 11월에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지명되었지.
아옌데는 소아과 의사 출신의 정치인이라서 유아기의 비타민 및 단백질 부족, 소년소녀들의 건강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었지. 그래서 그가 가장 우선적으로 내건 공약이 분유의 무상 배급이었던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분유와 유아식을 판매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던 다국적기업 네슬레가 당시 이 지역의 분유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지. 네슬레는 우유공장을 경영하며 목축업자들과 독점계약을 맺고 판매망도 장악하고 있었어. 그래서 아이들에게 분유를 무상으로 배극하기 위해서는 네슬레와의 원활한 관계를 필요했지. 아옌데는 결코 네슬레에 분유를 공짜로 달라고 하지 않았어. 제값을 주고 사려 했지.
그러나 1971년 스위스 베베이의 네슬레 본사는 칠레 민주정부와의 협력을 모두 거부했어.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그 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아옌데 정권의 사회주의적 개혁정책을 꺼리고 있었기 때문이지. 도 외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칠레의 자립성을 높이고 국내적으로 사회적의를 실현하려는 아옌데 정권의 개혁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면, 미국의 국제기업이 그대가지 누려온 많은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란다. 키신저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칠레의 민주정부를 괴롭히려고 했지. 칠레에 대한 지원을 끊어버리고, 운수업계의 파업을 뒤에서 조종하고, 광산이나 공장의 태업을 부채질했어. 서구의 많은 다국적 은행이나 기업, 상사들처럼 네슬레 역시 아옌데 정권의 개혁정책을 강하게 반대했던 것이란다.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매일 0.5리터의 분유를 배급하겠다는 아옌데의 공약은 수포로 돌아갔어. 아옌데가 추진한 개혁정책의 대부분은 엄청난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했지.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군부쿠데타를 도왔어. 아옌데와 그의 동지들은 대통령궁인 모네다궁에서 무력으로 저항했지. 오전11시, 아옌데 대통령은 라디오를 통해 대국민 연설을 마지막으로 했고, 오후 2시 30분에 살해되었단다. 피노체트의 무차별 탄압으로 많은 대학생, 기독교 성직자, 노동조합 간부, 지식인, 예술가 그리고 일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어. 그리고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기 전처럼 수 만 명의 아이들이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되었지. (99~102 쪽)
: 지독한 슬픔.
18. 사막화로 인한 환경난민
1991년 통계에 따르면 36억 헥타르의 땅에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어. 이것은 전체 육지의 4분의 1, 경작이 가능한 건조지대의 약 70퍼센트나 된다고 해. 사막화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서, 매년 약 600만 헥타르의 땅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단다. 아프리카 대륙의 3분의 2는 원래 사막을 포함한 건조지대라서, 경작이 가능한 건조지대의 73퍼센트 정도가 사막화의 영향을 받고 있단다.
그럼 아시아는 어떨까? 역시 경작이 가능한 건조지역의 71퍼센트, 약 14억 헥타르에 걸쳐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어. 지중해 남쪽의 건조지대는 이미 그 3분의 2가 심각하게 훼손 되었고 말이야.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약 10억의 인구가 가까운 장래에 사막화의 위협에 직면할 거라고 예측된단다. 수억의 인구가 이미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식량과 식수 부족을 겪고 있고, 수백만의‘환경난민’이 새로 거처할 곳을 찾아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야. (107~108 쪽)
23. 치유되지 않는 식민지정책의 상흔
특히 아프리카에는 또 하나의 까다로운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바로‘식민지정책’이란 거야. 식민지정책이란 20세기 전반까지 유럽 각국이 아프리카나 그 밖의 대륙의 나라들에 대해 강제해온 것이란다. 유럽은 그 역사를 돌아보면 그야말로 식민지 약탈자라고 할 수 있어. (131~132 쪽)
강력한 무기를 지닌 이런 약탈자들이 들이닥치기 전만해도 아프리카의 농민이나 목축민들은 현지의 권력자에게 상납하고 자신들이 소비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했어. 하지만 유럽인들이 도착하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고 말았지. 유럽에서는 공업이 발달하여, 대량의 농산물을 사들일 구매자들이 있었어.
그래서 식민지의 권력자들은 아프리카 농민들에게 유럽의 기업이 필요로 하는, 즉 유럽 시장에서 소비될 수 있는 작물을 경작하도록 했어. (132 쪽)
이런 식민지들은 1960년대에 들어 잇따라 독립을 이루었지만, 식민지시대의 상흔은 지금도 깊이 남아 있어.‘신식민주의’(독립 후에도 경제적, 정치적으로 구종주국이 구식민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 아래에서 성장한 식민지 엘리트들은 자국에서 어느 정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지. 하지만 실제로는 구종주국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단다. 유엔 총회나 그 밖의 국제기구에서 프랑스가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이런 사정이 배경에 깔려 있어 (133 쪽)
단일경작이란 게 뭐죠?
그것은 한 나라의, 특히 수출용 주요 농산물이 오직 하나의 작물에 편중되는 것을 말해. 종주국이 식민지를 상대로 자국에 필요한 산물만을 집중적으로 재배하게 하는 것이지. 가령 세네갈에서 생산된 땅콩들은 대부분 유럽으로 수출된단다. (134 쪽)
다시 말해서 세네갈은 해마다 식량의 외국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셈이야. 세네갈의 국민들은 무척 부지런해서 식량을 자급자족할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식량을 수입해야만 하는 시스템이 되어 있지. 게다가 식량 수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정부의 허가가 필요해. 그래서 고위 관리들이 식량 수입의 독점권을 가지고 막대한 재산을 모으고 있단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자국의 식량생산 증진에는 관심이 없지.
더구나 수출가격을 결정하는 세계시장에 대해서 세네갈 자신은 아무런 영향력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래서 전통적으로 매우 근면한 농민들과 비옥한 땅을 가진 나라에서 식량부족 사태가 확산되고 있는 거야.
24. 토마스 상카라와의 만남
아빠는 세계적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에서 친구들과 더불어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고자 노력했던 한 남자를 알고 있어. 바로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토마스 상카라라는 인물이지. 부르키나파소는 서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남쪽 가장자리에 있단다.
1983년에서 1987년에 걸쳐 부르키나파소에서 정치개혁 운동이 한창일 때, 아빠는 그곳을 몇 번 방문했어. 4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부르키나파소는 참으로 대단한 변화를 이루어냈지. 네게 그 이야기를 해주마. 부르키나파소의 예는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라도 스스로 기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단다. 아빠는 1984년에 처음으로 부르키나파소의 수도 와가두구를 방문했어. 특별한 인연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지.
1983년 크리스마스 때였어. 전화벨이 울렸지.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였어.“상카라 대위라고 하는데, 지글러 교수님 계십니까?”낯선 이름인데다 말투도 군대식이어서 아빠는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며“내가 지글러입니다.”하고 차갑게 대답했어.
그랬더니 상카라는“교수님을 급하게 좀 뵙고 싶습니다. 감옥에서 교수님의 책(Main basse sur l'Afrique)을 읽었습니다.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습니다. 오시겠습니까?”하고 물어왔지.
방학 기간이기도 했고, 어쩐지 만나봐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길을 나섰단다.
1984년 1월, 수도 와가두구에 도착했을 때가 기억나는구나. 사하라의 강한 바람이 거리에 붉은 회오리를 일으켰어. 4명의 젊은 장교들이 작은 집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들은 1983년 8월 4일 쿠데타를 일으킨 뒤로 이 나라의 국정을 맡고 있었어. 식사에 초대받았는데, 실내는 질식할 듯이 더웠지. 식탁에는 푸른 콩, 토마토, 조, 고구마에 고기 캔이 몇 개 놓여 있었어. 물 외에는 다른 마실 것이 없었지. 모시족과 풀라니족의 혼혈로, 무척 총명하고 쾌활해 보이는 토마스 상카라가 그들의 리더였어. 상카라 맞은편에는 그의 절친한 동지인 블레이즈 콤파오레가 앉아 있었지. 눈빛이 날카롭고 키가 훤칠한 사람이었어. 그 옆에는 앙리 총고라는 몸집이 크고 호감을 주는 사람이 앉아 있었고, 마지막으로 그들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래도 38세였지만) 과묵한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식탁 끝에 앉아 있었지. 국방장관인 장 밥티스레 링가이였지. 총고와 링가이와 상카라는 지금은 모두 저세상 사람이 되었어. 그들의 동지였던 블레이즈 콤파오레의 명령으로 모두 살해되었지.
부르키나파소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보자. 이 나라는 원래 프랑스령으로, 1960년에 독립한 당시에는 나라 이름이 오르볼타였어. 1984년에 부르키나파소(‘고결한 자들의 나라’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바꿨지. 국토는 27만 평방킬로미터에 인구는 1,100만(1999년)으로, 서아프리카의 주요 거점이야. 남쪽 사하라와 모시 평원을 이어주는 도로, 그리고 사헬 지방과 코트디부아르(상아 해안), 가나, 베닌의 열대 숲을 잇는 도로들이 이곳에서 교차하지. 모시족을 중심으로 보보족, 풀라니족 등으로 국민의 구성이 매우 복잡하단다. 유목민인 풀라니족이나 투아레그족, 그리고 북부나 서부의 초원지대에는 벨라족이 살고 있고. 남부와 동부에는 말링케족, 사모족, 고르만체족, 세누포족이 살고 있지.
이 나라의 중앙에는 지난날 모시 왕국의 영광을 뽐내는 건물도 있어. 모시 왕국의 황제는 모로 나바였는데, 그 당시의 오랜 사고방식이 오늘날까지도 이 당에 사는 농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았어. 모시족 귀족층의 젊은 혁명장교들이 몰아내야 할 중요한 적이었지.
부르키나파소는 구종주국인 프랑스에 휘둘리다시피 하면서 정부가 너무나도 무력했지. 게다가 정치부패까지 심각해서 나라 형편이 말이 아니었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무척 혼란스러웠고. 정말이지 비참했지.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국민총생산은 170개국 가운데 124위, 일인당 국민소득은 164위였어. 남부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국토의 대부분이 경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라버려서 소출을 내지 못했어. 경작 가능한 땅 중에서도 25퍼센트만이 실제로 경작되고 있었고, 곡물 수확량은 헥타르당 540킬로그램에 불과했지. 프랑스의 경우가 헥타르당 4,883킬로그램인 데 비하면 턱없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지. 1984년에 아동의 취학률은 20퍼센트에 불과했어. 마을은 7,000개가 넘는데 학교는 1,300개뿐이었지. 교사도 1만 8,000명이나 부족했어.
무역수지는 매년 적자를 보이고 있어. 예를 들어 이 나라 제2의 도시인 보보디울라소 동쪽 평원에서 생산되는 설탕은 수입 설탕보다 무려 18배나 비쌌지. 이웃 나라들이 그렇듯이, 부르키나파소도 부패한 관료들 밑에서 신음하고 있었어. 3만 8,000명의 관료가 국가 예산의 70퍼센트 이상을 자신들의 급여로 챙기고 있으니 더 말해 뭐하겠어. 그나마 매년 10월이면 바닥이 났어. 그래서 정부는 공무원 급여를 주기 위해 외국의 원조를 구걸해야 했지.
도리는 부르키나파소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 사헬 지방의 중심 도시로, 면적이 3만 평방킬로미터쯤 된단다. 사헬 지방은 9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30만 명 정도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어. 모두 유목민이나 반 유목민들이지.
부르키나파소의 중심부에서 도리까지는 260킬로미터로, 자동차로 6시간쯤 걸리지. 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렸어. 버려진 천만촌과 함께 도로 양쪽으로 흑소들의 뼈대가 보였지. 불에 탄 군용 트럭이 길을 가로막고 있기도 했고. 아마도 식량조달을 위한 트럭이었을 테지.
가끔은 아빠 일행을 태운 지프 앞을 피골이 상접한 사람들이 가로질러가기도 했어. 가만 보니 흰개미를 먹기 위해 개미집을 찾는 것 같았지. 흰개미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먹을거리였어.
풀라니족, 투아레그족, 벨라족 등 빛나는 고대문화를 이룩했던 유명한 민족들로 구성된 사헬 지방은 기아의 참상으로 얼룩져 있었어. 이곳 농민들은 보통 우기가 시작되는 6월에 씨를 뿌려. 그리고 두 번째 우기인 8월에 작물들이 잘 자라서 9월의 마지막 비로 여물게 된단다.
그런데 그해에는 6월만 해도 예년처럼 비가 내렸지만 8월에는 비가 한꺼번에 쏟아져서 엷은 부식토층에 심어진 어린 작물들이 모두 씻겨 내려갔어. 그리고 뒤이은 가뭄으로 대부분의 작물들이 말라죽어 수확량은 거의 바닥이었지.
1984년 사헬 지방의 펴균 강수량은 200밀리미터였어. 최소한의 수확을 얻으려면 400밀리미터는 와주어야 하는데 말이야.
목동들 역시 똑같은 일을 당했어. 물웅덩이가 급속히 말라버렸고, 지하수위도 점점 내려갔어. 15미터 넘게 파내려가지 않으면 물도 발견할 수 없었지. 사헬 지방에는 흑소가 약 40만 마리나 사육되고 있었는데, 고롬-고롬, 툼북투, 가오 등의 가축 시작에서는 흑소 가격이 곤두박질쳤어. 살아남은 투아레그족들은 와가두구의 프랑스계 호텔 입구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지.
국제적인 도움의 손길은 찔금찔금 주어지는 정도였어.
부르키나파소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도 아니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아니니까. 이 나라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그저 타는 듯 한 하늘과 돌과 덤불과 낙타, 그리고 사람 외에는...... 무엇보다 상카라의 정치는 프랑스와 그 식민지였던 나라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
상카라가 추진한 정치개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나요?
그는 어떤 나라가 자급자족을 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어도 사회적의가 이룩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래서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곧 근본적인 개혁에 나섰던 거야. 이미 말했지만, 당시 부르키나파소에는 공무원 수가 3만 8,000명에 달했어. 턱없이 많은 인원이었지. 더구나 대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어. 그들은 종래의 지연, 혈연 등으로 똘똘 뭉쳐 있었지.
사실 1960년대 들어 형식적이나마 독립을 이룩한 아프리카 나라들의 사정은 대체로 이와 비슷했지. 행정조직은 거대하고 비효율적이었어. 이런 거대한 산을 어떻게 헐어버려야할까?
이것은 젊은 혁명가들에게 정말 힘겨운 과제였어. 적은 월급으로 15~20명을 먹여 살리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았거든. 대안적인 일자리도 없었어. 민간부문이나 반관반민의 일자리를 합쳐도 3만 명 정도밖에 고용할 수 없었어. 상카라는 근본적인 해결의 길을 택했지.‘자주관리정책’을 채택하여 국내의 30개 행정구를 자치제로 전환하고는 주민들 자신이 그 지역을 다스리게 했단다. 관리도 직접 뽑을 수 있게 했고. 그래서 도로건설이나 수도사업, 보건의료사업 등 자신들의 실제생활에 필요한 공공 서비스를 실시해 나가도록 했지. 행정구역 설정은 대체로 각 종족들의 거주지와 일치하도록 고려했어.
그런 탈중앙집권화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매력을 제공했지. 자주관리정책은 종족들의 의식 속에 깃든 엄청난 힘을 활성화시켰거든. 하지만 그런 정책에는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어.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부르키나파소에도 역시 종족간의 해묵은 갈등이 존재했거든. 상카라의 주민주도형 정책은 그러한 갈등을 다시금 부채질할 위험이 컸던 거란다.
그래서 상카라는 국가 차원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착수했지. 그 하나가 수도 와가두구에서 탐바오까지의 철도를 건설하는 사업이었어.
아프리카에서 철도건설 프로젝트는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어. 과거 식민지지배 시대의 너무도 비참한 착취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느 사업이었거든. 블랙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하나같이 뼈아픈 역사를 경험했지.
일찍이 아비잔(코트리부아르 최대의 경제도시)에서 니제르까지의 철도를 건설했을 때는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어. 다카르(센갈의 수도)와 바마코(말리의 수도)를 잇는 공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마타디(콩고민주공화국의 주요도시)-킨샤샤(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노선, 그리고 포앙트누아르(콩고민주공화국의 해안도시)-브라자빌(콩고공화국의 수도) 노선 건설때도 수많은 시체들이 쌓였단다.
하지만 상카라가 추진한 철도건설사업은 이색적이었어. 금전적인 보수가 없는데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섰지. 물병과 몇 줌의 쌀만 지닌 채 말이야. 종착점인 탐바오는 부르키나파소의 맨 북부에 있는 반 사막 지역으로, 수도 와가두구에서 약 45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이야.
1987년 2월 25일, 아빠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첫 구간 선로공사에 착수하는 모습을 토마스 상카라와 함께 지켜보았어. 그해 말에는 카야라는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까지 선로가 놓였지.
상카라가 실행한 또 하나의 개혁은 바로 인두세(납세능력에 의하지 않고 각 개인에게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세금)를 폐지 한 것이었어. 1983년까지 부르키나파소의 모든 국민은 매년 현지 관청에 몇 천 프랑을 인두세로 내야 했어. 일부 도시 주민외에 대부분의 가장들은 그런 세금을 납부할 능력이 없었지.
그러면 마을의 징세 담당자는 소나 양, 비축해둔 곡식을 강제로 가져가거나, 때로는 미납분의 대가로 여성을 요구하기도 했지. 그렇게 돈이나 곡식으로 감당할 수 업는 농민들은 마을 우두머리의 토지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어.
인두세 폐지는 도시에서도 효력을 발휘했던 모양이야. 아빠의 친구인 테오도르 콘세이카라는 와가두구 우체국 직원은 이렇게 말했어.“나는 사포테 지방의 피시 마을 출신인데요, 인두세가 있던 시절에는 같은 마을에 친족들이 해마다 나한테 돈을 부탁했어요. 형제나 사촌, 심지어 먼 조카들까지요. 강제노동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나한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지요. 우리 집안에서 정해진 수입이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직무상의 수당이나 관사, 자동차도 제공되지 않고 급료까지 줄었는데도 나는 더 잘 살고 있어요. 인두세가 사라졌기 때문이지요.”상카라가 인두세 폐지에 이어 취한 조치는 개간 가능한 토지의 국유화였어. 그 전에는 마을의 운영 책임자들이 마음대로 땅을 할당해주었지. 그러고는 그곳에 무엇을 경작해야 할지 명령하고 농사 일정을 결정하는가 하며, 파종과 추수 의식을 주관하고 돈이나 수확물, 혹은 강제노동이라는 형태로 대가를 징수했어.
그러나 토마스 상카라가 권력을 잡은 뒤로는 농업부에서 토지 대장을 작성했어. 토지는 각 가정의 수요에 따라 재분배되었지. 그래서 어떠한 강제적 징수도 없이, 농민들은 안심하고 농사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단다.
개혁의 성과는 어땠나요?
정말 놀라웠지! 4년도 지나지 않아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었어. 국가지출도 줄어들었고. 그래서 자금이 도로나 상수도 건설, 농업교육의 보급, 지역의 수공업촉진 사업 등에 우선적으로 투자되었지.
부르키나파소는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고, 다민족의 복잡한 사회구성은 한층 민주적이고 정의로워졌지.
그럼 상카라는 아프리카 대륙의 귀감이 되었겠군요?
불행히도 그랬지!
불행이라뇨?
부르키나파소의 인구는 약 1,000만 명으로, 대부분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이지. 그런데 상카라의 개혁으로 불공평함이 없어지면서, 인간다움과 자부심을 되찾으며 웅대한 희망에 불타올랐던 거야. 이 희망은 서아프리카는 물론 중부아프리카 지역에 이르기까지 빛을 발했어.
부르키나파소가 경험한 개혁의 희망은 정치부패에 시달리고 있던 이웃나라들에도 영향을 미쳤어. 코트리부아르의 우프에 부아니 대통령, 가봉의 봉고 대통령, 토고의 에야데마 대통령 등의 부패한 권력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지.
이런 정권들은 하나같이 프랑스의 꼭두각시야. 프랑스 본국 정부의 일부 세력은 상카라의 개혁을 반기지 않았지. 예언자는 살해되어야 했어. 상카라는 결국 자신의 동지이자 참모였던 콤파오레에 의해 살해되었지. 콤파오레는 현재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이란다.
토마스 상카라의 죽음은 살바도르 아옌데의 죽음과 비슷해. 외국세력의 조종을 받은 자국 군부에 의해 살해되었잖니.
상카라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모양이야. 1987년 9월 어느 날 밤에 아빠는 에티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에서 상카라를 우연히 만났어. 상카라는 나라 일로 그곳에 가 있었고, 아빠는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을 방문하던 중이었지. 아빠는 그의 숙소인 호텔에서 그와 마주앉아 20년 전 볼리비아의 산 중에서 살해된 체 게바라(1928-1967. 쿠바의 혁명지도자. 1967년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 중 정부군에 의해 사살되었음)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했어. 상카라는“살해될 당시 그는 몇 살이었을까요?”하고 물었고, 아빠는“39세 8개월”이라고 대답했어. 그러자 생각에 잠겨 있던 상카라는“나도 그 나이까지 살 수 있을까요?”라고 하더구나. 만일 살아 있었더라면 상카라는 살해된 해 12월에 38세 생일을 맞이했을 텐데 말이야.
상카라의 죽음과 함께 사람들의 커다란 희망도 깨졌지. 콤파오레 치하의 부르키나파소는 다시 보통의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말았어. 만연한 부패, 외국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 북부 지방의 만성적인 기아, 신식민주의적 수탈과 멸시, 방만한 국가 재정, 기생적인 관료들, 그리고 절망하는 농민들...... (136~151 쪽)
: 이 땅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부르짖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필연적인 저항, 심지어 죽음을 야기하고야 만다. 상카라 역시 오늘날의 그러한 예언자중 하나였으리라.. 우리네 전태일, 문익환 등등 역시 마찬가지일테고.. 그렇다면 죽음을 각오하지 않은 걸음과 선포가 얼마나 유치하고 공허하단 말인가? 나의 호흡에 기대어진 예언적 시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28. 진정한 활로를 찾아서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아빠는 생각해. (152 쪽)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해.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신 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 (153 쪽)
에필로그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약 10년 전부터 일종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1991년 8월 소련이 무너지기까지 3분의 1정도의 인류가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잘못 불렸던 부패한 국가자본주의체제 아래 있었다. 냉전체제가 국제사회를 지배했다. 다국적성과 독점성에 대한 충동은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 존재했다. 하지만 그 충동은 양극구도(냉전체제)가 무너진 뒤에야 비로소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다. 거기에 내재하는 논리에 따라 자본은 단기간에 지구를 정복했다.
또 한 가지 패러다임 변화는 바로 글로벌화한 자본주의 내부에서 한 가지 자본, 즉 금융자본이 산업, 무역, 서비스 등의 자본들을 제치고 주된 자본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리하여 금융자본의 이윤극대화 법칙은 오늘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59~160 쪽)
그러나 유능한 물리학자들이 조립한 모든 컴퓨터 모델에도 불구하고 - 컴퓨터는 리스크를 줄이는 데 봉사한다. - 증시는 완전히 비이성적으로 돌아간다. 증시를 돌아가게 하는 엔진은 이윤 극대화, 손실에 대한 공포, 파산 리스크에 따르는 신경전, 그리고 정신착란과 황홀경을 되풀이 하는 무제한의 이윤추구 등이다.
1919년 막스 베버는“부란 일하는 사람들이 산출한 가치가 이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오늘날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 부, 즉 경제력은 다혈질적인 투기꾼들이 벌이는 카지노 게임의 산물이다. (160~161 쪽)
이런 투자가 집단과 이들에게 부의 운용을 맡기는 세계 부의 과점자들은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
남반구와 북반구의 비참한 세계, 너무도 골이 깊은 불평등한 세계. 오늘날의 세계의 주된 갈등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의 갈등이 아니다. 만성적인 실업난(유럽연합의 실업률은 12.5퍼센트)과 빈곤, 사회의 계층화, 영양실조가 지금은 북반구도 위협하고 있다. 북반구와 남반구 사람들은 같은 적을 마주하고 있다. 민족을 초월하여 활동하는 글로벌화한 금융자본의 과두지배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 몇몇 수치들이 있다.
세계 225명의 대재산가의 총자산은 1조 달러가 넘는다. 이것은 전 세계 가난한 자들의 47퍼센트(25억 명)의 연간수입과 맞먹는 수치이다. 빌 게이츠의 자산은 가난한 미국인 1억 600만 명의 총자산과 맞먹는다.
오늘날 개인들은 국가보다 더 부유하다. 세계 15대부호들의 총자산은 남아프리카를 제외한 사하라 이남의 모든 아프리카 나라들의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선다.
미국 제너럴모터스 사의 매출이 덴마크의 GDP를 웃돌고, 역시 미국의 석유회사 엑슨모빌의 매출은 오스트리아의 GDP보다 웃돈다. 세계 100대 글로벌 기업들 각각의 매출은 가난한 나라 120개국의 수출총액보다 많다. 또한 상위 200대 기업이 세계무역수지의 23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숫자의 배후에는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세계가 존재한다. 불평등이라는 부당한 역동성이 현재의 세계질서를 결정하고 있다. 한쪽에는 민족을 초월한 소수의 과두체제에 지배되는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학문적, 군사적 힘의 집중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미래가 불투명한 삶, 몇 억 인구의 절망과 기아가 있다.
금융과두제가 다수의 운명을 지배하는 가운데, 익명의 희생자들은 무기력하게 장기질환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이런 불평등을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오로지 사회 계급 구조와 차별 이데올로기, 그리고 폭력으로 지켜지는 특권에 기초한다. (161~162)
브레히트는“분노하는 것은 고통이다”고 했다. 제네바의 은행가들도 양심의 가책을 느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한다. 이 이데올로기가 바로 신자유주의(시장원리주의)라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특히 위험하다. 중심에 자유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규범도 가라, 규제도 가라, 국민국가도 가라, 장애나 될 뿐이다. 선거도 가라, 일치도 가라, 정권교체도 가라, 민족주체성도 가라. 지유! 자본을 위한 자유, 서비스를 위한 자유, 특허를 위한 자유만 남아라. 그것은 관료제나 모든 종류의 제한에 반대하는 것이다. 오직‘완전하게 리버럴한 시장’을 추구하는 시장원리주의(신자유주의)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정의를 논할 것인가? 이제 아무도 그럴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손, 세계시장밖에는..... 신자유주의 원리는 자본의 흐름이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그 유동성이 완전하게 용인되면 이윤이 가장 많은 쪽으로 자본이 집중된다는 것, 즉 자유로운 세계시장에 맡기면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런 시장원리주의의 주장은 그야말로 넌센스다. 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그런 주장이 자세히 검토되지도 않은 채 세계에 침투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이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 무엇이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를 따지지 않은 채, 그저‘경제 합리성’이라는 구호만이 난무하고 있다.
금융전략가들은 천문학자가 천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경제적 현상 앞에 서 있다. 천문학자는 자기장을 측정하여 별들의 궤도를 계산하고, 학문적 활동을 객관화한다. 오늘날 금융전략가는 천문학자를 빼닮았다. 그들은 자연법칙을 들먹인다. 그들의 눈에는 현실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헐뜯고, 민족주체성을 헐뜯고, 선거를 통해 확정된 제도, 그리고 영토적인 경계 짓기와 인간이 만든 민주주의적 규범을 헐 뜯으면서 계몽주의의 유산을 파괴하고 있다. (163~164 쪽)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기아에 의한 생명파괴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1) 인도적 지원의 효율화
우선적인 과제는 인도적인 구호조처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2) 원조보다는 개혁이 먼저
혁명적인 행동은 인도적인 구호를 뛰어넘는다. 모든 혁명의 목표는 희생자를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자로, 역사의식을 가진 주체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3) 인프라 정비
제 3세계 나라들의 인프라를 정비하기 위해 시급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자본, 도로, 적당한 종자, 비축식량, 농경 전문지식 등 모든 것이 부족하다.
이 모든 조처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세계 여론이 동원되어야 하며, 현재의 경제 지배자들의 각성과 연대의식이 있어야 한다. (164~168 쪽)
‘세계 기아행동’이라는 프랑스 비정부단체는“식량에 대한 접근이 지불능력에 달려 있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배불리 먹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돈이 있는 자는 먹을 것을 얻고, 없는 자는 굶주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방치되어서는 안 되는 정글 자본주의다. 세계경제는 식량 생산, 판매, 무역, 식량 소비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기아에 관한 한 시장의 자율성을 맹신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못해 죄악이다. 우리는 기아와 투쟁해야 한다. 기아 문제를 시장의 자유로운 게임에만 방치할 수는 없다.
이에 세계경제의 모든 메커니즘은 한 가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한 가지 대전제는 바로 기아는 극복되어야 하며 지구상의 모든 거주민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국제적 구조가 마련되어야 하고 규범과 협약이 마련되어야 한다.
장 자크 루소는“사회계약론”에서‘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라고 썼다. 시장의 완전한 자유는 억압과 착취와 죽음을 의미한다. 법칙은 사회정의를 보장한다. 세계시장은 규범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민중의 집단적인 의지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경제의 유일한 견인차는 이윤지상주의라는 입장, 신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두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허구에 대항하여 싸오는 것이 이 시대의 급박한 과제다.
시카고의 곡물거래소는 문을 닫아야 하며, 협의 등을 거쳐 제3세계에 대한 식량 공급로가 확보되어야 하고, 서구 정치가들을 눈멀게 만드는 어리석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폐지되어야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169~170 쪽)
“잘못된 것 안에 올바른 삶은 없다.”고 했던 아도르노(1903~1969, 독일의 철학자)의 말마따나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에 행복의 영토는 없다. 우리는 인류의 6분의 1을 파멸로 몰아넣는 세계 질서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지구에서 속히 배고픔이 사라지지 않으면 누가 인간성, 인정을 말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인류로부터 배제되고 남모르게 파멸해가고 있는 이런“고통스런 분파”(파블로 네루다)는 다시 인류 속으로 편입되어야 한다.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과 의미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기 전에는 지상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서로 책임져 주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171 쪽)
<전체 감상>
작년'슬픈 열도'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독서노트를 작성해 보았다.
우선 이 책이 나의 소유가 아닌 까닭도 있지만
철저히 인문학적인 나의 기질상 각종 수치와 통계가 자세히 언급된 이 책을
진득히 읽어나가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고된 작업이 필수 였기 때문이다.
그리 많지 않은 분량에 쉬운 문장과 편집들이었지만
이 안에 폭로된 가혹한 진실은 무척이나 짙은 두께로 내 가슴을 짓눌렀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이 컴퓨터와 인터넷 등, 수많은 나의'부'가
원하든 원치 않던 결국 수많은 기아 인구의 목을 죄는 또 다른 현실기제로
작용하고야 마는 이 서글픈 시대에, 내가 내 딛어야할 걸음과 표정들은
과연 무엇이어야 할지. 질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통 받는 이웃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나의 손짓과 외침들은 대체 얼마나 허무한 것일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하신 주님의 목소리가 참 생명의 말씀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을
여윈 고개를 숙이며 묵상해 본다.
나는 과연 기꺼이 나의 몸을 찢으며 나의 피를 붓고 있는것일까?
혹여 다른 이들의 몸을 쥐어뜯으며 그들의 고혈을 마시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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